1979년 12월 12일.
역사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12·12 사태, 군사반란, 쿠데타
12·12 사태라는 역사적인 단어를 수십 년을 듣고 산거 같은데... 무관심했다.
그 일이 1979년에 일어났다는 것도 부끄럽게 영화를 보고 다시 인지했다.
영화를 보고 난지 한주가 지났는데 900만이 넘었다.
무거운 정치영화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흥행영화는 꼭 봐야 하기에 동료들과 극장으로 향했다.
12·12 군사반란의 결과는 세상 모두가 알고 있다.
그날의 역사를 팩션으로 다룬 '서울의 봄'
관객은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팩트와 픽션' 사이를 오고 가면 이야기에 빠져 든다.
1979년 12월 12일 9시간 동안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으로
관객은 영화 속의 9시간과 러닝타임의 141분의 시간으로 편집하며 빠져든다.
뻔히 아는 역사를 손에 땀을 쥐고 보고 있다.
결과를 궁금해하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날 그 역사의 순간에 대한민국 위정자, 국방의 수뇌부 등을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을 했는지를 따라간다.
'성공하며 혁명'이 되어버린 결론을 알기에
관객은 분노한다. 위정자의 태도와 말 한마디로 세상이 너무 쉽게 바뀌는 것을 스크린에서 목도한다.
아~ 그렇게 된 거였구나...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과 특정 사조직의 이익을 위해 일으킨 군사반란
그런 혼란의 시기에
명분과 군인으로서의 사명과 군인으로서의 명령 복종으로
북한도 아닌 대한민국 군인끼리 서로에게 총질을 했던 역사적인 현장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스포일러>
최후의 담판을 짓기 위해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은 청와대를 향한다.
광화문을 지나면 이순신 동상을 바라보는 이태신의 비장함을 느낀다.
이순신장군의 구국의 정신을 가슴에 담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보안사령관 전두광 일당이 친 바리케이드 앞에서 대치하며
반란군을 향해 포를 조준하며 기선을 제압하는 이태신
그러나
국방부장관이 명령 한마디로 군사반란은 혁명이 되어 버린다.
국방부장관의 명령으로
이태신을 지지했던 군인들은 떠나고, 그리고 자신의 부하들도 떠나보는 이태신...
허무하게 끝나버린 대항!
속수무책이 된 이태신의 모습에서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떠오른다.
일본 왜군을 무찌른 이순신장군을 기리기 위해 광화문에 당당히 서있는 그 동상은
이태신의 시간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반란군과 대치하며 당당하게 서있던 이태신의 마지막장면은 결국 구국은 못하고
이순신장군과 겹치며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에필로그>
영화를 분노에 차서 보기는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너무나 쉽게 나라가 망하고 팔리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요즘 배우 정우성에 대해 팬심 가득하게 빠져있다.
정우성 배우가 요즘 너무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사심이고
나이가 들었는지 군복 입은 배우들을 매력적으로 보이고
대한민국의 이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가 많구나를 알게 되고
그래서 멋진 배우들에게 감사하고
그러나
생뚱맞게
이혼과 관련된 소송 중인 노소영관장에 대한 지지를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