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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현 May 03. 2020

Happy End 1.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

나의 고등학교 시절, 입시지옥에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내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던 시기임에도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을 굳이 소환하고 싶지 않다.      


그 시기를 지나고, 덮는 것이 20대의 일이었다.    

  

그때를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싶다고 

몇 번이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서른 살이 될 때까지도 이어졌다. 

그리고 이미 십 년이 지나 버렸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에야, 

겨우 놓아버릴 수 있었다.      


그 시기는 동굴에 있고 싶었지만, 광장에 있던 시기다.

광장에 있고 싶었지만, 동굴로 가야 했던 시기다.      


나는 어디에서도 안정을 찾을 수 없었고 

소리 없이 발작했다.

수많은 책과 그것을 묵묵히 읽는 친구들의 등판을 보면서 

목이 메어왔다.


바둑판 모양의 똑같은 교복 뒤에 서서, 

나도 그 사이 어딘가에 레고 블록처럼 

갑갑하게 끼워 넣어져야 한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애벌레들이 높은 하늘을 향해 

친구의 몸뚱이를 밟고 위로만 향하던 시기. 

위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부여잡고 매달리는 것이 

그때의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인간성은 피폐해졌다.

주변의 기대는 목을 조였다.


누군가는 내게 무심히 성적표 꼬리를 쥐여주었고, 

나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내 이마에 ‘실패자’라는 글자가 무수히 각인되었다.     


그때를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내 몸에 다시 생채기를 내는 일이다.

성장소설인 줄 알았지만, 

목에 족쇄를 차고 수렁으로 끌려가는 노예의 이야기였다.


다르게 살았어야 할 시간이었는데, 

그러지 못한 순간을 

머릿속에서 무수히 반복 재생해본다.

이제는 소용없는 변주곡.      


그때의 내게 몇 마디 건넬 수 있다면. 

뭐라고 해줄 수 있을까.

위로될 말을 찾을 수 있을까.      


그저 곧 지나간다고 되뇌며 서 있을 것이다.


행복하게 끝났다기보다는 

끝이 나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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