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의 파사드- 조각가 수비라치 타계
2015.4.8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가 타계했다. 성가족 성당 수난의 파사드를 조각했던 수비라치. 죽기 전까지 성당의 예술 감독을 맡았던 그였기에 타계 소식이 더 안타깝다. 처음 수비라치가 수난의 파사드에 조각품을 만들었을 때 사람들 반응이 엇갈렸다고 한다.
평소 가우디는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라고 말했었고 그걸 증명하듯 그의 건축물에는 곡선의 아름다움이 많다. 가우디가 자연의 곡선과 부드러움을 조각에 그대로 사용했다면 수비라치는 직선과 날카로운 각들로 예리하고 투박한 조각들을 선보였다.
개인적인 취향은 가우디보다 수비라치다. 요즘은 탄생의 파사드보다 수비라치의 수난의 파사드가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더 많다고 한다. 그의 단순함과 빼기(-)의 철학이 통했다고나 할까? 수난의 파사드 조각들은 개인의 해석이 들어갈만한 여지가 무한하다. 보이는 조각 너머를 상상하게 만든다. 수난의 파사드는 둥근 선을 최대한 자제하고 굵은 선과 투박한 각으로 작품을 표현해 놓고 있다. 마치 돌을 뚜걱 뚜걱 깍두기 썰어놓은 듯하다.
위로부터 아래도 곧게 뻗은 기둥은 인간의 정강이 뼈를 나타낸 것이란다. 아래서 올려다본 수난의 파사드는 근육과 뼈를 더욱 사실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수난의 파사드 쪽 입구 천정에는 예수가 아래를 보고 철근 빔에 매달려 있다. 마치 문을 나오는 사람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길을 기억해야 할 것처럼. 조각가의 깊은 의도를 엿볼 수 있겠다.
수난의 파사드는 왼쪽 아래부터 거꾸로 S자 모양을 따라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최후의 만찬 때 가롯인 유다가 주먹을 쥐고 아래를 보고 있다. 사진에는 없지만 조각 아래에 충성을 상징하는 개가 엎드려 있다. 아이러니한 조합으로 마치 유다를 조롱하고 있는 듯했다.
예수는 늘 12명의 제자들과 수많은 무리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는 친절하게 그에게 키스함으로 자연스럽게 예수를 로마 병사들에게 넘겨줬다. 조각 아래에는 사단의 상징인 사악한 뱀이 새겨져 있다.
좌측으로 보이는 마방진은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쪽으로 더해도 숫자 ‘33’이 나온다. 이는 예수의 생애를 말해주는 숫자다. 원래 마방진은 같은 숫자를 겹쳐서 표현하지 않는다. 이 마방진에는 14가 두 번 10이 두 번이나 사용됐다. 이는 또 다른 상징을 말해준다. 10+10+14+14를 모두 더하면 48이 된다. 48은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를 뜻하는 단어인 INRI를 구성하는 알파벳 순서의 합이다. (I-9, N-13, R-17, I-9) 코드를 숨겨둔 폼이 마치 책 다빈치 코드를 읽는 듯했다.
위 조각은 예수의 옷을 누가 가질 것인가를 놓고 의논하는 세명의 병사들의 모습이다. 아래엔 말을 타고 천정을 창으로 찌르는 병사가 있다. 십자가 상의 예수가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그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던 사건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단다.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예수의 물음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신앙을 고백했던 제자 베드로. 그에게도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었다. ‘수탉이 울기전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는 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실행한(?) 베드로가 마당에서 부끄러움과 슬픔의 얼굴을 하고 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모습이다. 가운데는 성녀 베로니카가 있다. 그녀의 얼굴은 표현되지 않고 있다. 고난의 슬픔을 인간의 표정으로는 표현할 수 없어서 비워뒀다고 한다. 대신 골고다 언덕을 오르던 얼룩진 예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았더니 수건에 얼굴의 형상이 그대로 찍혔다. 예수의 고통이 고스란히 수건에 새겨져 있다.
베로니카 뒤에 서 있는 병사들 모습은 가우디의 또 다른 건물 ‘까사 밀라’의 굴뚝 환기통을 그대로 가져와 표현했다. 그 옆에 뭔가를 기록하기 위해 서 있는 사람이 바로 가우디다. 회화에서는 화가 스스로를 그림에 그려 넣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조각품에선 처음이지 싶다. 신앙심 깊은 가우디가 예수의 수난을 목격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를 보더라도 수비라치가 가우디를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조각품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 수난의 파사드가 공개됐을 때 신성모독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수비라치를 엄청나게 비난했단다. 십자가는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H빔 철근을 그대로 사용했다. 심지어 축 늘어진 예수님의 하반신은 맨살이 그대로 노출됐다. 예수의 나체상은 유례가 없다고 한다. 그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예수의 고난을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인간 삶의 고난을 상징하는 해골과 부활을 상징하는 우측 상단의 둥근달이 대조적이다.
처음과 끝을 의미하는 알파와 오메가가 문 위에 보인다. 그 아래 밧줄에 묶여 채찍질당하는 인간 예수를 투박하고 거칠게 만들어 둔 수비라치. 예수도 인간인지라 이 길을 얼마나 피하고 싶었을까?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신다면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의 고뇌를 담은 말씀이다.
가우디 사후 그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쪽지에 수난의 파사드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단다. 그래서 그 쪽지대로 조각가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가 1976년 수난의 파사드 조각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우리나라 서울 올림픽공원에도 그의 작품 ‘하늘 기둥(The Pillars of the Sky)’ 이 세워져 있다. 물론 수난의 파사드나 몬세라트에 있는 그의 조각과는 차이가 좀 있지만. 1987년 그가 대한민국에 조각품을 남겨둔 건 큰 인연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