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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 Sep 10. 2016

소설 #1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영원한 이별을 앞둔 가여운 세 사람의 네 개의 발소리

1986년 가을로 접어드는 명성 마을의 밤. 연속극 한편 보는 것으로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내던 사람들의 집집마다 하나 둘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짧아진 탓도 있겠지만 요즘 마을의 밤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어둡고 공기마저 매우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예로부터 밝은 별을 볼 수 있다 해 지어진 명성(明星) 마을은 이름처럼 서울 땅에서 가장 밝은 별을 볼 수 있는 달동네로 이 곳 사람들 중 별똥별 한번 못 봤다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 곳에서 보는 별은 사람들의 넋을 잃게 만들곤 했다. 언젠가 이곳을 방문한 유명한 시인별이 수를 놓는다는 표현은 명성 마을의 밤하늘을 보고 만들어진 표현이 아니겠냐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에 살고 계신 분들에게 명성 마을은 밤하늘 별처럼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듯했다. 나라의 큰 행사를 앞두고 서울 곳곳에서는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곳곳에서 재개발이 진행되었고 집을 지키려는 자와 부수려는 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피를 보는 싸움이 일어났다. 명성 마을 역시 그들이 말하는 미관을 해치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나마 마을에서 형편이 나은 집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떠났지만 대부분의 집들은 그렇지 못했다. 듬성듬성 생겨난 빈 집들을 보며 남은 사람들은 겨울까지만이라도 이곳에서 버틸 수 있길 간절히 바랬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갈등. 그 속에 한 껏 예민해진 사람들은 이웃이 보내는 아무 의미 없는 눈빛에도 시비가 붙거나 싸움이 났다. 어느 순간부터 마을 사람들은 저녁 이후 집 밖 외출을 자하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진 시각. 마을 안쪽으로부터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찌나 다급한지 그들의 발소리는 어둡고 무겁게 가라앉은 명성 마을 밤공기에 고스란히 드러다. 무게가 다른 두 사람의 발소리. 하나는 태어난 지 두 달된 여자아이를 등에 업은 젊은 여성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제 다섯 살 난 남자아이의 것으로 지금 이 순간 영원한 이별을 앞둔 가여운 세 사람의 네 개의 발소리였다. 


달리는 곳으로부터 얼마나 정신없이 달려왔는지 남자아이의 턱에는 흙이 지저분하게 묻은 빨간 피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떼를 쓸 법 도한데 아이는 여자의 손을 놓칠 새라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달리고 있었다. 갓난아기를 업고 있는 젊은 여자도 상태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창백한 얼굴의 그녀는 자신의 얼굴과 목덜미로 흐르는 땀조차 닦을만한 여력이 보이지 않았다. 땀에 절은 그녀의 보라색 남방 색이 더욱 진해져 갔다.


한참을 달리고 보니 그들 눈 앞에 낡은 건물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명성원이다. 한국전쟁 시절, 부모를 잃고 거리를 방황하던 전쟁고아들을 하나둘씩 거두며 시작된 명성원은 50년대 지어졌을 당시 건물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려운 시절, 부모 잃은 고아들을 위해 근사한 집을 지어주기에는 모두가 가난한 때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난 후에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명성원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해 보이지 않다. 마을이 재개발이 된다면 명성원도 함께 없어질 것이다.


여자는 눈앞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명성원을 바라보고는 잠시 주춤했다. 아이들을 이곳에 보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진 것이다. 그러나 생각도 잠시 여자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자기 손에 있다가는 악마 같은 그들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한 아이들이었다. 차라리 이곳에 잠시 있다 좋은 곳으로 입양되어 모든 걸 다 잊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는 것이 자식들에게 더 나은 삶이 될 것이라 여자는 생각했다. 등에 업힌 어린 딸이 깨지 않도록 여자는 조심스레 한번 들썩하고는 꼭 잡은 아들의 손을 놓칠세라 마지막 힘을 다해 명성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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