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기 Sep 10. 2016

소설 #2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은수, 엄마의 나라로 돌아오다

“우리 비행기는 잠시 뒤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도착을 알리는 기내 안내방송 흘러나오자 좌석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오랜 비행시간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기분 좋은 안내방송은 없을 것이다. 잠든 옆 사람을 흔들어 깨우는 사람, 비행시간이 너무 길다 투덜거리는 사람, 손님들에게 벨트 착용을 안내하는 승무원 등 하늘 위의 사람들은 지상을 밟을 준비로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줄 곧 안대를 끼고 있던 소피아가 천천히 안대를 벗으며 동시에 뒤로 한 껏 뉘인 의자를 일으켜 세웠다. 그 움직임을 따라 옆자리에 앉아있던 젊은 여자 눈이 한 껏 커졌다. 여자는 미국에서 출발하고 13시간 동안 아무 움직임이 없는 소피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 가 내내 노심초사했다. 심지어 너무 불안한 나머지 소피아의 얼굴을 덮고 있던 안대를 벗겨볼까 손을 뻗었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도로 집어넣기도 했다. 


그런 그녀의 불안한 마음을 전혀 알 리 없는 소피아는 오히려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여자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내에서 나눠준 담요를 마치 미라처럼 온몸에 감고는 겨우 얼굴만 내민 여자가 소피아를 빤히 보고 있었던 것이다. 소피아의 기억이 맞다면 비행 내내 여자는 승무원에게 여러 차례 담요를 요청했고 담요가 한정되어 있다는 승무원의 친절한 설명에도 계속해서 담요를 요구했다.

  

‘뭐야, 내내 저러고 있었던 거야?’       


소피아는 여자를 보자마자 미간이 찌푸려졌다. 평소에도 수면제를 달고 살았던 소피아는 역시나 비행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더구나 옆자리에서 내내 뒤척이던 여자가 이런 해괴한 꼴로 자신을 보고 있다니 미간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한 달 전 소피아는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작업실에서 쓰러진 적이 있다. 다행히 작업실에 들린 출판사 직원에게 발견되어 빨리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녀의 주치의는 수면제를 앞으로도 계속 복용하게 되면 글 쓰는 일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 경고했다. 그것은 미국에서 떠오르는 스타 작가인 소피아에게 가장 무서운 협박이자 탁월한 처방이 되었다. 한국에 가면 수면제부터 끊어야지 다짐을 했던지라 일부러 가방에 넣지 않았는데 역시 금방 끊는 것은 무리였던 모양이다.


수면제 생각이 간절한 소피아 옆에서 여자는 어느새 덮고 있던 담요를 개기 시작했다. 소피아는 무심코 담요를 개는 여자의 손을 보다 그녀의 배를 향해 시선이 움직였다. 담요가 벗겨지고 드러난 배는 그녀가 임신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살짝 불러있었다. 여자가 마지막 담요를 개며 소피아에게 말했다.


“제가 추위를 워낙 많이 타요. 저희 엄마가 비행기 안에서도 따뜻하게 하고 있으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야 배 속에 아기한테도 좋다고. 오해하실까 봐하는 말인데 저 막 담요 몰래 챙겨가고 그런 사람 아니에요.”


기내 물건을 몰래 챙기는 사람으로 오해하지 말아달라는 여자의 뜻을 이해한 소피아가 손을 절래 절래 흔들었다.  


“그런 뜻으로 본 거 아니에요. 기분 나쁘셨다면 미안합니다."


소피아의 사과에 그녀는 웃음으로 답했다. 그제야 소피아도 편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엄마가 이렇게 수고스러운 걸 아기가 꼭 알아주면 좋겠네요.”


임신한 그녀를 위해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다. 소피아는 여기서 대화가 끝나길 바랬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몰라도 상관없어요. 저도 아기 갖기 전까지는 몰랐는걸요. 나중에 얘도 자기 아이 가져보면 알겠죠. 엄마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마음만 알아주면 전 그걸로 됐어요.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다는 말을 소피아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웠다. 


“엄마라고 다 같은 엄마는 아니죠. 똑같이 열 달을 품고도 아기를 버리는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낳자마자 버리는 건 물론 몇 년을 키운 자식을 버리는 엄마도 있는걸요. 그 자식들의 마음은 엄마가 알아줄까요? ”


소피아는 마치 남의 이야기하는 것처럼 여자에게 자신의 친엄마를 소개했다. 열 달을 품고도 어린 자식들을 버린 매정한 엄마. 그 엄마는 바로 소피아의 친엄마이기도 했다. 소피아의 물음에 여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소피아는 처음 만난 여자에게 너무 심각한 이야기를 꺼낸 것만 같아 곧바로 후회했다. 재빨리 주제를 돌리기 위해 다른 말을 꺼내려했지만 여자의 대답이 한 발 빨랐다.


“그 엄마도 많이 아팠을 거예요. 그 기억 때문에 오랫동안. 갑자기 자다 일어나 배 한번 만져보고는 펑펑 울었을지도 모르죠. 그러다 지쳐서 잠들고. 어느 날은 자궁이 막 당기는 기분이 들기도 할 거예요. 그렇게 울다가 또 잠들고. 열 달 동안 품었던 내 노력이 허무하고 답답해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은데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죠. 또다시 조용히 잠들고. 자고 일어나고, 자고 일어나고 그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는 사이 엄마도 많이 아팠을 거예요."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여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것은 답답해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었지만 그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었던 엄마의 이야기였다. 


제가 그랬으니깐요. 사실 배 속에 아기 가지기 전에 아이 한 명을 더 나은 적이 있어요. 열 달 잘 품고 세상에 태어난 아이였는데 몸이 많이 약한 아이였죠. 집에도 한번 못 가보고 병원에서 두 달 내내 울기만 하던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내던 날, 제 욕심에 아픈 아이 붙잡고 있는 것보다 편한 곳으로 보내주는 게 더 나은 거다 그렇게 각하기로 했어요. 근데 막상 집으로 돌아오고 보니 아기가 여기 없다는 게 마치 내 손으로 그 아이를 버리고 온 것만 같아서 참을 수 없었죠"


여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고백에 소피아는 무슨 말을 해야 난감해했다. 그런 소피아의 표정은 읽은 여자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사랑이었을 거예요. 아이를 버린 엄마요. 아이를 낳은 것도 사랑이었고, 아이를 보낸 것도 사랑이었을 거예요.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열 달을 버텼겠어요."


소피아는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이런 대답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식을 버린 부모를 비난하거나 버림받은 아이의 불쌍함 그 두 가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것들 은 소피아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소피아는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친엄마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난 것이었다어쩌면 오랫동안 이 말을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자신의 친엄마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 #1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