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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 Mar 10. 2016

내가 당신과 헤어진 이유

곁을 내주기 위한 이야기 2

곁을 내주지 못한 그녀의 이야기


1. 연애를 하면 본인도 모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에 나는 그에게 있어 '신비로운 여성' 이었다. 언젠가 그가 나를 그렇게 표현했다. 좋게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이 있는 나에게 그의 말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가 나에게 "변했다"라는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말이 앞뒤 구분되지 않고 머리가 멍해졌다. 

그에게 완벽한 연인이 되고 싶었던 내게 변했다는 말은 좋은 포장지에 잘 감싸 졌던 좋지 못한 나, 내가 숨기고자 하는 나의 진실된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그가 나에게 변했다고 말한 후, 부자연스러워진 나의 연애 태도로 인해 결국 그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와 헤어진 이유를 그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바짝 다가온 그에게 줄 수 있는 곁은 없었다. 

 

2. 사회인이 되기 위해 면접을 봤다. 3차까지 진행되는 긴 면접에 떨리기도 했지만 다행히 2차 면접까지 통과하고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다. 잠깐, 갑작스러운 인사담당자와의 1대 1 면접이 있다고 한다. 면접관과 낮은 테이블을 하나 놓고 마주 앉았다. 물어보는 질문은 내가 예상한 질문과 다르지 않았다. 수도 없는 반복으로 이미 외워버릴 것 같은 자기소개와 마치 나 이만큼 준비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내놓는 야무진 답변들 그리고 짐짓 여유로운 미소까지 면접관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생각했다. 

면접시간이 다 되어간다는 안심이 들 때쯤 면접관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한다. "어떤 질문을 해도 답변 잘하네요. 준비 많이 했나 봐요? 근데... 아까부터 느낀 건데 왜 저는 당신의 진심이 안 느껴지죠?" 그의 말에 내 표정이 어땠을지 지금도 궁금하다. 


3. 직장동료 중 무뚝뚝한 동료 Y가 있었다. Y는 다른 동료들과의 관계도 무뚝뚝했다. 나는 언제나 웃는 얼굴로 Y에게 말을 걸었고 매번 그녀의 안부를 챙겼다. 어느 날부터 그녀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와 가까워졌다 생각이 들었는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도 서슴없이 했다. 

하루는 업무로 고단했던 내게 그녀가 퇴근하고 둘이서 밥을 먹자고 말했다. 집도 같은 방향이라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나는 그러자고 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Y는 나에게 서운하다고 말을 한다. "나는 우리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항상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 같아요" 나는 말없이 젓가락질만 이리저리 해댔다. 


누군가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솔직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래... 당신 말이 맞았다. 두려웠던 것 같다 나는. 좋은 사람 또는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여겨지는 모든 것을 부정적이라 취급하고 그것들을 가둬둔 채 사람들 앞에서 밝고 좋은 면만 드러내려 욕심을 부렸다.  




그녀가 몰랐던 이야기


1. 연애를 시작하고도 좀처럼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그녀가 신비로워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신비로움은 때론 나를 외롭게 만들었고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지 조차 헷갈리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와 전화통화 중 가벼운 감기 증상을 언뜻 내비쳤다. 일부러 걱정시킬 생각은 아니었는데 잠긴 목소리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다음날 그녀는 나를 찾아와 감기약을 주고는 아프지 말라고 걱정해주었다. 너무 놀랐다. 헷갈리던 그녀의 마음이 확실해졌다. 그녀가 점점 변하고 있다.

 

2. 갑작스러운 1대 1 면접 안내로 면접자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덜덜 떨거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리는 면접자들을 그동안 수도 없이 보아왔기 때문에 오늘은 그런 일이 없길 바랐다. 낮은 테이블 앞에 앉아서 면접자를 맞이했다. 1대 1 면접이라 가볍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웃으며 말을 건넸다. "많이 떨리죠? 물이라도 한잔 마시고 시작할까요?" 그러나 면접자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니요. 긴장되지 않습니다."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연습을 많이 했는지 입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은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면접자는 내가 하는 몇 가지 질문에 멋들어진 답변을 내놓았다. 누가 봐도 성실한 면접자였다. 그러나 면접 시작 전 떨리냐는 가벼운 질문에도 방어적으로 답변하는 그녀의 태도부터 나는 계속 이 사람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3. 매일 웃는 얼굴로 사람들에게 친절한 그녀는 짜증을 내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통화를 끝낸 그녀가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면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얕은 한숨을 내뱉었다. 업무에 착오가 있었나 보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괜찮아요?"라고 물었지만 그녀는 이내 표정을 고치며 "네, 괜찮아요. 아무 일 아니에요."라고 웃으며 말하고는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나 때문에 힘들어할 새도 없이 다시 일하게 만든 것 같아 되려 미안했다. 그리고 문득 매번 그러는 그녀에게 서운한 감정이 일었다. 나는 힘들 때마다 그녀에게 위로받곤 했는데 그녀는 마음을 열듯 하면서도 딱 거기까지다. 그만큼의 거리가 항상 좁혀지지 않는 느낌이다. 오늘은 저녁을 먹으면서 얘기를 좀 해봐야겠다.



곁을 내주는 데 인색하다 

다른 사람에게 곁을 내준다는 건 나에게 있어 물리적 공간의 곁이 아니었다. 차라리 물리적 공간의 곁은 내주기가 쉬웠다. 그러나 나에게는 나 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곁이 있다. 심리적 공간의 곁이라고 설명하면 쉬울까. 나는 심리적 공간의 곁을 한 뼘 내어주는 것에 인색했다. 실컷 물리적 공간을 내어주어도 상대가 심리적 공간의 곁으로 들어오려고 하면 외롭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에 대해 처음과 다르다, 변했다, 거리를 둔다, 솔직하지 못하다 등으로 결론지었다. (그래서 나는 변했다는 말에 민감할지 모른다.)


덕분에 외로움이 많았다. 심리적 공간의 곁을 내주지 않는 이는 철저히 혼자가 될 때가 있다. 내가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첫 번째 이유가 스스로에게 솔직 하자였다면 두 번째 이유는 스스로 자초한 혼자됨, 이따금씩 찾아오는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이 필요했다. 글 쓰는 행위를 통해 비어있는 내 심리적인 곁을 채워 넣고 싶다. 넘칠 듯 가득 해지는 나의 심리적 공간의 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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