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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 Mar 18. 2016

1화. 거제도에는 같이 걷고 싶은 [길]이 있다.

당신과 같이 걷고 싶은 길 이야기

스무 살 갓 서울에 올라온 나에게 고향이 거제도라는 것은 나를 조금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무언가 였다. 평범한 얼굴만큼이나 더 평범한 이름을 가진 나는 평범하게 자기소개를 시작했다가도 거제도에서 왔다 로 소개가 끝나는 순간 사람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첫 번째, “어머~ 나 지난여름에 가족들이랑 거제도 갔었는데 거기 너무 예쁘더라. 너 거기 가봤어?”
두 번째, “어? 내 친구 중에 거제도 사람 있는데, 너 혹시 K라고 알아?”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거제도라고 해서 이름만 대면 다 알고 지내는 동네라 생각하는 사람의 질문에 종종 웃음이 난다. )
세 번째, "나 거기 알아. 거기 조선소 큰~거 있지?"

    

자기소개에 대한 질문들치고는 나하고 크게 상관이 없는 내용들이었다. 내 이름은 까먹어도 "아~ 그 거제도에서 온 애"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건 이 질문들 때문일 것이다. 나에 대한 관심은 아니지만 거제도가 고향이라는 것만으로도 '내가 꽤 특별한 곳에 살았구나' 생각이 들곤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쭉 거제도에서 살았다. 남해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바다와 잘 가꾸어진 작은 섬들 덕분에 이 먼 거제도까지 오는 외지 사람들과 달리 나는 거제도가 지루했고 평범했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대학을 지원했고 내 나이 스무 살, 드디어 이 답답한 거제도를 벗어나 화려한 서울로 입성하게 됐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서울에 산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스스로를 서울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듯이 나 또한 서울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쫓아왔던 서울의 화려함은 수 천, 수 만 불빛들의 모임이었고 나는 그 불빛들 중 하나 정도에 지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이 곳에 반드시 있어야 하나? 그렇지 않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이 생각에 울컥하기도 했다.


나는 한동안 서울을 밝혀주는 불빛 하나'쯤'이 되어 내 안의 어두운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서울을 밝혀주는 불빛하나 쯤,


외롭고 혼란스러웠던 순간 나는 갑자기 거제도가 떠올랐다. 사실 거제도가 떠올랐다기보다 어렸을 때 다녔던 학교 가는 길이 생각났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거제도의 유명한 관광지로 가는 길들 중 하필 6년을 걸었던 그 학교 가는 길이 생각났는 모르겠다.


그 길은 정말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학교 가는 길이다.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갈 거리가 아니라 나는 이 길을 늘 걸어 다녔다.


동네 친구들이 늘 그렇듯 "야! 같이 가"라는 말에 뒤를 돌아보면 친구가 날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둘이 한참을 걷다 보면 또 다른 친구를 만나 셋이서 등교하게 되는, 약속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그런 학교 가는 길이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길 중턱쯤 간이의자에 앉아 물끄러미 등교하는 우리를 쳐다보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어떤 날은 큰 대야에 설거지할 그릇들을 담아 놓고 앉아 계시기도 했고 어떤 날은 (키우시는 개인지 동네 돌아다니는 개인지 구분 안 되는) 개들에게 먹을 것을 주며 앉아 계시기도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대부분 학교 가는 우리를 구경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하시는 듯했다.       



    

나는 내가 걸었던 길이 다시 걷고 싶어 졌다. 그 길 끝에는 이미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지만 기억 속 길을 걷다 보면 가야 할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      


나는 내가 걸었던 그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공간을 통해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거제도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닌데 제가 걸었던 길이 거제도에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거제도 길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거제도라는 글을 보고 여행후기라 생각하고 들어왔을 분들에게 살짝 핑계를 대자면 원래 서울 사람들이 더 서울 지리를 모르고, 거제도 사람들이 더 거제도를 모르는 법이라고 하네요. 하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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