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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 Mar 22. 2016

딸아, 엄마는 놀이공원에 가보고 싶단다.1

곁에 있는 사람 이야기 [엄마]

수화기 너머 엄마로부터 뜻밖에 말을 듣게 됐다. 


"엄마 놀이공원이 가보고 싶은데.. 데려가 줄 수 있어?" 
"으응? 갑자기 무슨 놀이공원이야"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 웃음은 미소가 아닌 실소에 가까웠다.


나는 놀이공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 때 발가락 온 끝마디가 간질간질 거리고 내려올 때 온몸이 서늘해지는 그 느낌을 안타깝게도 즐기지 못한다. 학교 다닐 때 놀이공원으로 소풍이나 여행을 간다고 하면 좋아서 난리가 나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또 놀이공원이냐며 매번 울상이었다. 


친구들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동안 아래서 가방을 맡아 기다리기를 자청했던 나는 고3 졸업여행으로 간 놀이공원에서 "이게 마지막이야. 앞으로 내가 내 돈 주고 다시는 놀이공원에 오나 봐라"며 다짐했다. 그런 딸의 상황을 알리 없는 엄마가 놀이공원에 같이 가자고 아니, 데려가 줄 수 있냐고 한 것이다. 

 



엄마는 요즘 어린 조카를 보느라 늘 지쳐있었다. 바쁜 언니를 대신해 어린 조카 녀석을 돌보는 나이 든 엄마는 귀여운 손주 재롱 덕분에 웃을 일이 많아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손주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자식 다 키워놓고 이제 좀 쉬려나 했더니 또다시 시작된 자식의 자식 뒷바라지에 엄마도 적잖이 황당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라는 이름에 애잔함 같은 게 있는 것처럼 나 또한 그렇다. 나의 엄마는 언제나 자식이 먼저인 분이셨다. 뭘 먹어도, 뭘 입어도, 뭘 사더라도 항상 자식에게 좋은 걸 주어야 만족하던 분이시기도 했다. 


자식을 많이 낳던 시절, 육남매 중 어중간한 다섯째로 태어난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위에 언니와 오빠로부터 물려받는 일이 당연했던 동생의 숙명과 네 살 터울의 막내 동생에게 양보해야만 했던 손위 사람의 숙명까지 안고 자랐다. 


온전히 본인만을 위한 것을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던 그녀는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어 자식이 생기고도 여전히 그 습성이 남아있었다. 뭘 먹어도, 뭘 입어도 또는 뭘 하나 새로 사더라도 자식이 좋은 걸 가져야 만족했다. 




어른이 되고 자식을 위한 엄마의 배려와 양보 그리고 희생을 눈치채기 시작한 나는 때론 그녀의 모습에 눈물이 났고 감사하기도 했다. 엄마처럼 살기 싫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처럼 살기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그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완벽히 엄마를 이해하기엔 나는 엄마의 '딸'이라는데 한계가 있었다. 여전히 엄마의 배려와 양보를 바랐고, [고마워]라는 말 한마디로 그녀의 희생을 못 본 척 눈감기도 했다. 그런 엄마가 놀이공원에 데려가 줄 수 있냐고 부탁한 것이다. 그건 '놀이공원에 같이 갈래?'처럼 제안도 아니었고, '놀이공원에 나를 데려가'와 같은 명령도 아니었다. 

나이 든 엄마는 이제 자식들에게 명령이나 제안이 아닌 부탁을 한다. 




이제 손주까지 본 나이에 무슨 놀이공원이냐 싶지만 엄마는 자식들이 소풍이다 졸업여행이다 뭐다 해 놀이공원 갈 때마다 용돈 쥐어준 적은 많았지만 정작 본인은 가본 적이 없었다. 나 역시도 엄마에게 놀이공원이 어떻다고 얘기해 준 적이 없었고 같이 가보자 제안한 적은 더더욱 없으니 아마 젊은 애들이 놀이기구를 타고서 신나게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라고 엄마는 생각해 봤을 것 같다. 


손주까지 본 나이의 엄마에게 그곳은 한 번도 밟은 적 없는 미지의 세계인 셈이었다. '엄마'와 '놀이공원'을 한 번도 같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뜬금없긴 했지만 놀이공원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못 간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조카 보느라 바쁜 엄마의 이번 일탈은 이유 있는 일탈이었다. 엄마가 시간을 낼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언니가 조카를 데리고 시댁에 가 하룻밤 자고 온다고 했단다. 손주 때문에 그 좋아하던 주민센터 노래교실에도 못 가시던 분이 갑자기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고 하나 했더니 역시나 엄마 같은 이유였다. 


그러나 신나 하시던 것도 잠시, 서울로 오기 전까지 엄마는 몇 번씩 마음이 바뀌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생긴 휴가에 들떠 멀리 서울에 있는 딸에게 전화를 하긴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괜히 바쁜 딸 시간 뺐는 거 아닌가 싶었을 것이다. 

역시나 이 또한 엄마 같은 이유였다.



얼마 후, 엄마는 새벽 첫 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서두르느라 식사를 거른 엄마를 위해 먼저 식당으로 향했다. 비싼걸 사드리고 싶어도 엄마는 늘 그렇듯 순두부찌개와 비빔밥을 주문했다. 엄마는 성격만큼이나 좋아하는 음식도 소박하다. 




우리 모녀는 식사를 빨리 하지 못하는 편이다. 엄마의 약한 소화기관을 닮은 나는 식사 속도가 빠른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면 다 먹지 못해 버리거나 체하기 일 수였다. 내가 체기(滯氣)가 있어 식사를 잘 못할 때면 엄마는 늘 본인의 못난 부분을 닮아 그런 거라며 안쓰러워했다. 


나는 엄마와 단 둘이 앉아 느긋하게 식사하는 걸 좋아한다. 우리의 식사 시간이 늦는 데는 수다가 한 몫했다. 엄마와 나의 수다 진행 패턴은 주로 내가 이야기를 하는 편이고 엄마는 듣는 편이었다. 


엄마는 내 이야기가 매번 재밌다고 했다. 별 얘기 아닌 것 같은데 엄마는 마치 몰랐던 걸 새로 안 것처럼 내 이야기와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이야기 그리고 내가 경험한 세상 이야기를 좋아했다. 말재주가 없는 자신을 닮지 않은 딸을 엄마는 내심 부러워 하는 듯 보였다.   




나는 놀이공원까지 가는 길에 일부러 버스를 타자고 말했다. 지하철이나 택시도 있지만 시내 여기저기 둘러가는 버스를 이용하고 싶었다. 서울에 처음 와보신 것은 아니지만 늘 집안 똑같은 일상에 지친 엄마에게 새로운 광경들을 많이 보여 드리기 위해서였다. 


새벽에 온 비가 오후에 다시 온다고 하더니 창가로 보이는 서울 시내가 청량감 있게 보였다. 버스 창가에 기대앉아 스쳐 지나가는 배경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유난히 맑아 보였다. 우리는 한참 버스를 타고서야 놀이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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