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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상갑 Oct 18. 2020

우리는 또 성장했고 더 공감했다

2개월의 재택근무를 마치며

지난 8월의 중순쯤으로 기억한다.

짧은 여름 휴가기간을 끝내고 나니 코로나가 급격하게 확산되어 프로젝트팀이 전체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출근하지 않기 때문에 좋아했다. 눈치봐야 할 시선이 없기에 편해졌다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무실에서는, 9시전에 출근 눈도장 한번 찍고 커피를 사러 나가도 괜찮았고..

노트북을 켜놓은 채 화장실 몇번이고 가도 그리 눈치 보이지 않았었다.


(예민한 나의 성격 때문일까) 8시만 조금 넘어도 메신저를 켜놓아야 할 것만 같고,

도착한 메일에 바로바로 답장 및 해당되는 업무를 처리하지 않으면 근투태만으로 비춰질까봐

더 조급하게 바로바로 처리할 수 밖에 없었다.

누가 쳐다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누가 시스템으로 모니터링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사무실에서도 보다 더 강도 높은 근무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는 보통 11시반 부터 점심식사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었는데,

재택에서는 12시전에 메신저가 ‘자리비움’으로 바뀌지 않게끔 지키고 앉아 있었고,

밥을 먹는 중에도 급한 메일이 와 있을까봐 입안에 음식을 씹으면서도 가끔 노트북 앞에 가서 쳐다보는 짓을 하게 되었다.

화장실도 후다닥...

점심시간도 채 30분도 쓰지 못하는 것 같은..

커피도 항상 노트북 앞에 앉아서 마시게 되었다..


하...이게 재택근무의 실상이구나,


저녁 6시가 넘어서 자리에 일어나면, “아이구구 아이구구.. “ 하는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러면서도 과감하게 노트북을 끄지 못했다. 저녁먹고 조금 쉬었다가 또 노트북 앞에 앉아서 저녁 일을 했다.

밤 10시에도 프로젝트 멤버들 간에 메신저 Communication 이 자연스러워 지는 일상이 계속 되었다.


 


아이들도 학교 등교가 아닌,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큰 아이도, 일찍 학교를 등교하던 둘째도 모두 재택-온라인 수업으로 2학기를 시작했다.

여기에 나까지 포함해서 거실에 근무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초반에는 7시반에서 8시쯤 다같이 모여서 아침식사를 했다. 마치 등교를 하고 출근을 하던 때 처럼..

날이 갈수록, 아침 식사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간편식으로 먹고 싶어했다.

같은 빵을 선호하는 큰 아이와 나도, 그 빵을 먹는 스타일이 달랐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스타일로 각자가 아침을 챙겨먹는 것으로 변화되어 갔다.  

각자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재료는 냉장고에서 꺼내 각자의 원하는 스타일로 간편하게 준비를 해서 아침을 먹는다,

그 대신 아내에게 조금의 아침 늦잠 시간을 허용해 준거다.


점심시간도 쉽지 않았다.

12시부터 1시 사이가 점심시간 이라는 것은 오래된 직장인 아저씨의 고정관념이었다.

난 11시반부터는 가능했었는데, 큰 아이는 12시 50분, 둘째는 12시 30분부터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다.

각각에 맞추다보면, 아내는 점심상을 세번 차려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했고.. 실제로 일정 기간은 그렇게 세번의 점심상이 차려졌다.


독립된 업무공간이 아닌, 거실에(8월에는 큰 에어컨이 설치된 거실이 가장 시원하고 좋았기에) 내 근무공간이 있다보니..

점심을 준비하는 부엌의 음식냄새가 11시도 전에 나기 시작했다. 업무 집중에 방해요인이 되었다.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는 손길에 별로 탐탁치 않는 표정이 응수되는 아주 위험한 시간들 이었다.


최소한 9시부터는, 집에 아무도 없는 것 처럼 각자의 방과 거실에서 온라인 수업과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아내도 수업과 근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안방에서 조용히 지낼 수 밖에 없었다.



거의 그렇게 한달이 되었을까?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재택 근무를 하는 것에 서로들 익숙해 진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아침 식사를 해 먹는 것으로 적응하듯,

세번 차리던 점심상은..

내가 12시 30분까지 기다리는 것으로 1차 양보가 이루어져서 둘째와 같이 식사를 시작하면,

12시 50분에 첫째가 식사에 동참하고 1시 전까지 겸상하며 잠깐의 Lunch Talk를 나누게 된다.

점심에는 요란한 음식냄새가 나지 않는 메뉴를 정하도록 가능하면 노력하고,

음식 냄새가 조금 방해될 때는, 최대한 표정을 변화시키지 않으며 거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게 된다.


점심을 먹고나면, 각자가 먹은 그릇을 싱크내까지 다 옮겨 놓는 것도 자연스레 익숙해졌다.

그것이 맛있는 음식을 차려준 아내와 엄마에게, 맛있게 잘 먹었다는 최소한의 감사표시임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게 된 것이다.


저녁식사를 되도록이면 간소화 하려고 노력한다.

각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것이 라면이건, 특별한 메뉴건 각자가 해먹을 수 있는 것은 해먹으려 시도해 본다.

매일 점심과 저녁까지 온가족의 식사를 챙겨야 하는 아내와 엄마의 수고를 조금씩 덜어주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


아내는 가족들의 이런 마음과 상관없이 항상 최선을 다해 음식을 준비했다.

코로나로 인해 외식의 위험함을 가장 크게 염려하고 정말 헌신하며 장을 봐와서 매 끼니마다 홈메이드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코로나로 인해 좋아진 점이 있다면 대중교통을 타고 퇴근하는 시간이 절약되었다는 점이다.

밤 12시까지 노트북을 두드리던 날도 있었지만,

어떤 날에는 “아휴~ 더이상 못하겠다, 오늘은 칼퇴근이야!” 하며 6시에 그냥 자리에서 일어난 날도 있었다.

(물론 메신저와 메일 확인을 위해서 노트북을 꺼버리지는 못했지만)


그런 날에는 간단히 저녁을 먹고 동네 한바퀴 산책을 했다.

매 끼니를 챙기던 아내도, 코로나로 인해 Gym을 못가던 나도.. 모두가 운동 부족상태가 계속 되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옆 동네까지 돌아오는 코스는 약 8km정도가 되었다.

어떤 날에는 부부 둘이서, 어떤 날에는 딸 중 한 명만 합류, 또 어떤 날에는 온가족이 다 같이..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의 산책시간은.. 육체적인 운동이외에도 하루종일 있었던 얘기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부부간에도, 아이들간에도, 그리고 부모자식간에도..



온라인수업+재택근무 의 2개월 시간은.. 우리 가족에도 서로를 공감하며 한층 더 성장한 시간이였다 말할 수 있다.


남편과 아빠가 하루를 어떻게 일하는지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노트북을 눈으로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종일 모니터를 째려보며 초집중하고 얼마나 키보드를 오래 두드리고 마우스질을 많이 했는지 손등과 팔목이 저릴정도 임을 이해하게 된다.

늦은 밤에도 머릿속에 남은 일꺼리로 늦은 밤에 노트북 앞에 앉아서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클릭 하는 이 남자를 보게 된 것이다.


두 딸과 아빠가 각자 온라인수업과 재택근무로 모드를 전환하고 나면,

남은 아침 식사의 설거지와 이제부터 시작해야 하는 집안 청소와 정리가 매일 매일해도 크게 티나지도 않는 힘든 노동임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하루 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매일 매일 반복되지만 육체적으로 쉬워지지 않는 노동임을 서로 알게 된다.

가족 구성원 하나가 조금씩 나눠서 한다면 훨씬 그 일거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도 스스로 알게 된다.


그래서 잠깐의 짬이 생기면, 씽크대에 쌓이 먹고난 그릇들을 간단히 헹궈서 식기 세척기에 넣는 것에 주저하지 않고,

또 잠깐의 짬이 나면, LG무선 물걸레겸용 청소기를 들고 재빨리 어느 한 공간이라도 청소를 해보려 노력했다

(실제는 마음만큼 실천을 많이 못했다)



지난 금요일에 재택근무 해제 조치가 떨어졌다.

월요일 부터 다시 사무실 출근을 시작한다. 언제 또 재택근무를 다시 해야 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높은 업무강도의 힘든 재택의 시간이었지만,

근 4년간 지방 프로젝트로 남편과 아빠를 주중에 볼 수 없었던 우리 가족에게는,

온 가족이 하루종일 한 공간에 머무는 특별한 시간에 서로를 근거리에서 자주 지켜보고 서로를 공감하게 된 의미있는 시간이라 평가하고 싶다.


월요일 부터, 각자의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더라도.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집에서 가사일을 하고 있을지 상상하여 미소지을 수 있으리라.


2개월간의 재택근무,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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