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 작가 단편 소설집 <어떤 물질의 사랑>
가족은 하나의 우주와도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행성의 구성 성분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태양계의 강력한 힘 때문에 공전하는 것처럼, 우리가 모두 고유한 사람이어도 가족이라는 ‘계’를 이루어 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SF 소설에는 ‘우주’와 ‘가족’ 그리고 ‘사랑’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하고 변주됩니다. 천선란 작가의 소설도 그렇습니다.
천선란 작가의 단편집 <어떤 물질의 사랑>의 첫 문을 여는 소설은 <사막으로>입니다. ‘나’의 어머니는 예고 없이 희귀병에 걸려서 혼자 시간을 거꾸로 유영하듯 몸도, 정신도 아이가 되었습니다. 우주비행사인 ‘나’는 살아왔던 시간을 거꾸로 거스르는 어머니처럼, 문명과 기술이 인류보다 백 년 정도 늦은 생명체를 조우할 예정입니다. 그들은 지구와 달리 맑고 푸른 하늘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외로움을 잊어버리고 구김살마저 사라진 어머니의 얼굴처럼요.
<사막으로>는 천선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되기 전, 그의 어머니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치매 판정을 받았다고 해요. 소설 속 ‘나’는 아이가 되어 가는 어머니를 두고 “엄마는 외로움을 잊은 신인류였다. 신인류는 가히 지구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존재였다.”라고 표현합니다. 아마 치매에 걸린 어른을 둔 가족이라면 이 표현에 공감하겠지요. 저도 해사하게 웃던 외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그의 머릿속에 생긴 큰 구멍이 부디 힘들었던 기억까지 빼앗아 갔기를 바랐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또 다른 소설 <레시>의 제목은 어느 행성에서 발견한 바닷속 생명체에게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바이러스 때문에 생명체가 사라진 바다를 살려내기 위해 우주로 나온 승혜가 붙였습니다. 승혜와 레시는 서로 소통할 수도 없지만, 마치 이미 만났던 것처럼 서로를 느낍니다. 승혜는 레시에게서 자신이 잃어버린 딸을 떠올리고, 레시는 자신의 방법으로 승혜에게 말을 건넵니다. 레시는 과연 승혜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요?
SF 소설 속에는 우주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담겨 있습니다. 외계 생명체를 정복해야 할 존재로 보거나, 인간이 절대 덤빌 수 없는 대자연처럼 묘사하기도 합니다. 천선란 작가는 외계 생명체를 '한참 망가진 지구를 조금이라도 되돌리게 해 줄 수 있는 존재'로 그립니다. 잘못을 깨달은 인간들이 지구를 다시 회복시키도록 도와달라고 절박하게 손을 내밀 때, 너그러이 그 손을 잡는 존재 말이에요. 너무 낙관적일 수도 있지만, 천선란 작가의 관점이 녹아든 <사막으로>와 <레시>의 결말이 저는 좋았습니다.
천선란 작가의 소설은 무척 서정적입니다. 마치 아름다운 색이 수없이 합쳐져 검정색으로 되기 직전의 찬란한 무지개를 보는 것 같습니다. 고유한 색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캄캄한 우주를 이루는 것처럼요. 무한히 넓은 우주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작디작은 존재이지만, 우주보다 더 넓은 자신만의 경험과 감정을 갖고 있으니까요. 우리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 SF 소설이 필요한 요즘, 천선란 작가의 소설은 어떠신가요?
• 천선란 작가의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수상작 <천 개의 파랑>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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