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련 작가의 소설 <마르타의 일>
이 소설은 제목과 표지 덕분에 들추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소설인데, '마르타'는 누구고 이 사람의 일은 뭘까. 표지에 있는 저 여자는 내 또래로 보이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저런 표정일까. 저 사람이 '마르타'인가? 그 앞엔 술이 놓여 있고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옆에 엎드리고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상황일까. 무엇보다, 왜 누군가가 멀리서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는 듯한 구도인 거지?
소설의 주인공 수아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입니다. 수아는 동생 경아가 갑자기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흰 천으로 덮여 있는 시신을 확인했지만, 동생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수아는 경아가 절대로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순간 경찰이 잠깐 돌려준 경아의 핸드폰으로 ‘이준서’라는 이름의 부재중 전화가 오고, 경아의 SNS 계정에는 빈소를 찍은 다이렉트 메시지가 도착합니다. 아무 정보가 없는 빈 계정으로부터요. 같은 계정이 보낸 다음 메시지. "경아 자살한 거 아닙니다"
"경아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기쁨과 슬픔과 열등감과 우월감과 애정과 경멸, 그 밖의 여러 감정으로 얼룩져 있다. 그 마음의 역사는 경아의 생애와 똑같이 시작되었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연년생 중 언니로서, 기억도 안 나는 젖먹이 시절부터 나는 경아와 경쟁하고 경아에게 사랑받고 경아를 지켜왔다."
경아는 수아를 유난히 따르는 동생이었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성격도 칼같은 언니를 항상 좋아했죠. 수아도 경아를 아꼈지만, 착하고 예쁜 것에 있어서는 항상 수아가 뒤처져서 사람들에게 ‘예쁜 경아의 언니’ 취급을 당하기도 했고, 부모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했던 장녀로서의 서러움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동생의 의심스러운 죽음을 그냥 받아들일 만큼 사이가 멀거나, 그를 미워했던 건 아닙니다. 수아는 임용고시라는 인생의 중요한 터닝포인트에서도 경아가 죽은 이유를 밝혀내기로 마음먹습니다.
"1차 발표 직전 경아가 그렇게 된 것을 나의 불운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는데 내가 불운하다고 말하는 건 웃기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계속 살아야 하고, 나의 목표는 변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보상받을 수 없는 손해는 구덩이처럼 남아 있다. 막막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고시를 준비한 적이 있거나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알겠지만, 수험생은 분 단위로 계획하며 하루하루를 효율적으로 살아갑니다. 하물며 운동도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도록 지구력을 기를 수 있는 유산소로 하고, 운동하면서 리스닝이나 인강 파일을 보고 들을 정도로요. 모든 것을 시험 준비에 최적화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수아는 동생의 자살 아니, 살인까지 밝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아는 이미 빡빡한 하루 계획표를 쪼개어 낮에는 공부를, 밤에는 경아의 과거를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죽음의 원인을 이 글에서 밝히지는 않겠습니다만, SNS에서 ‘얼굴도 마음도 예쁜 봉사녀’로 떴던 경아는 여성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사이버상 언어폭력뿐만 아니라 실제 인간관계에서도 상처를 받았죠. 경아는 평소에 우울증 약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약을 먹고 있었습니다. 수아는 직감적으로 이 약이 경아의 죽음과 연관이 있겠구나, 짐작하고 서서히 들추어냅니다. 수아는 진상을 알게 될까요? 그리고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마르타의 일>은 여러 겹의 주제를 매끄럽게 포용합니다. 묘한 질투와 끝없는 애정을 동시에 느끼는 자매의 관계, 여성이라는 이유로 쉽게 흠집 나는 인격, 청년으로서 이겨내야 하는 현실의 빡빡함을 모두 잘 보여주지요. 게다가 장르적 재미까지 담아냈습니다. 죽음을 파헤치면서 겪는 서스펜스에 시험으로 인한 긴장감까지 더해져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달까요.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서 공부와 추리를 병행하는 수아의 압박감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달려가면 제목과 표지를 보고 떠올렸던 의문점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경아가 왜, 어떻게 죽었는지도 분명하게 매듭지어집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난 뒤에 여운이 강하게 남습니다.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일부러 이 소설을 피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엔 너무 의미 있고 또 재미있는 작품이니까요.
이 글이 실린 틈틈이 뉴스레터가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틈틈이 보고 듣고 읽은 것 중 좋은 것만 모아 나눠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