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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스토리텔러 Dec 12. 2023

Chapter 2. 언론을 칼로 써라

퍼블리싱 콘텐츠 기획론 ; 부실공사 140일간의 기록 

미시공 하자, 숨길수록 손해다

관청을 '방패'로 삼으라고 한 것처럼 시행사와 건설사가 두려워하는 존재는 수분양자가 아니라 관청과 담당 공무원, 그리고 언론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더 두려운 존재는 이를 묵인하려는 일부 소유주들이다. 괜히 입소문이 잘못 나서 집값이 떨어지면 어쩌나, 오피스텔의 경우 세입자가 안 들어오면 잔금을 치르기 어렵다는 등 자산의 가치가 하락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그러나 건설사는 이런 수분양자들의 심리를 역이용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당장 들어가 살 집을 고치는 것보다 
팔지도 않은 '집 값'이 더 중요해?



제대로 지어지면 다 들어온다

칼을 뽑기 전 아군들 먼저 설득해야만 했다. 이렇게 복잡하고 볼 것 많은 세상에 그 많고 많은 서울 집들 중에 관심을 가져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만일 이슈가 된다고 하더라도 대중의 관심은 금세 사그라들 것이며 몇 년 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한 단지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지. 아니 오히려 그렇게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은 곳들이야 말로 지금 한 지역의 대장 아파트로 호가를 견인하고 있는 게 부동산 업계의 룰이었다.

당시 하자 관련 기사와 최근 해당 아파트 매매값 그래프를 찾아서 소유주 단톡방에 여러 번 띄웠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사람들의 부동산은 아직 '사는(LIVE)'게 아닌 '사는(BUY)'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에 큰 딜레마에 빠졌음을 미리 고백한다. 그러나 한 손엔 방패(관청), 한 손엔 칼(언론)을 쥐어야만 비로소 전쟁에 나갈 준비가 된 것이다. 



자, 생각이 달라졌다면
이젠 칼을 뽑을 차례다.




사회부 기자를 만나라

일을 하기 전에 늘 "왜?"라는 질문을 한다. 일을 왜 하는 것인지에 대한 타당한 이유나 목적이 있어야 차질 없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을 의뢰하거나 검토하는 대상, 즉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부동산 기사는 경제부나 부동산팀 기자에게 제보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언론사 부동산팀은 시행사, 건설 회사와 한 패다.

방송, 언론사 등 미디어 회사는 대부분 광고 수익으로 운영된다. 그 운영비는 광고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데 대기업이나 건설사가 보통 일 년 치 광고비를 먼저 기부하는 형태로 운영된다고 보면 된다. 메이저 신문사 지면에서 손바닥 만한 지면의 광고를 낼 때 최소 천만 원의 비용이 지불된다고 가정해 보자. 일반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게는 부담스러운 비용이지만 건설사들은 막대한 자본력으로 일 년 치를 한 번에  내는다는 말씀. '협찬'이라는 명목으로 낸 광고비는 순수 광고 제작에 쓰일 뿐만 아니라 애드버토리얼, 부동산팀이 기획한 르포 기사에서도 유리한 쪽으로 노출하겠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심지어 건설회사의 자본으로 운영되는 신문사도 있기 때문에 언론이 대형 광고주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 때문에 부실시공 이슈를 제보하기 전 기자 리스트를 추린다면 경제부나 부동산팀은 과감하게 삭제해도 좋다. 대신 각 언론사의 '사회부'나 방송 3사의 사회 고발 프로그램을 리스트업 하는 것을 추천한다. 사회부 기자 리스트를 정리할 때 아파트, 오피스텔이 속한 지역의 경찰서의 출입기자 명단도 확보하면 취재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 또 그중에서도 건설사 홍보팀 출입등록이 되어 있는 기자가 아닐수록 좋다. 컨택을 하면 보통 실제 취재를 나오는 기자의 연차는 출입기자부터 3~5년 차로 아직은 사회 부조리와 비리와 맞설 힘과 분노가 남아있는 청년 세대다.



제보를 두려워하지 마라

'제보(提報)'는 사전적 의미로 정보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SNS의 발달로 정보가 넘치는 데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도 각 언론사 제보하기 방이 있을 정도로 예전보다 언론사와의 접촉이 쉬워졌다. 온라인 뉴스 말미에서 기자 메일을 수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제보는 용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 제보한다고 해서 모두 보도되는 것은 아니다. 언론사 역시 수분양자의 말만 편파적으로 보도할 수 없기 때문에 보통 제보자의 신분은 비밀로 보장해도 추가적인 정보(연락처, 주소) 등을 받는다. 기자는 제보 내용을 바탕으로 시행사, 시공사, 관청을 취재해 종합적으로 기사를 쓰는데 보통 이렇게까지 하는 과정이 쉽지가 않다. 그들에게 들어오는 제보가 다 뉴스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이슈 거리라도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외압으로 인해 데스크에서 잘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보도자료나 제보 사진, 영상 등을 준비한다면 현재 하자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부분을 부각해야 한다. 대중이 관심을 가질 정도로 파급력이 있어야 된다는 얘기다. 

우리 오피스텔의 경우, 무리한 호실 쪼개기 때문에 옆집 실외기실과 우리 집 실외기실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리스크였다. 하도 기상천외해서 이해가 안 된다면, 예전 대학교 때 하숙방-화장실(공용)-하숙방 이런 구조로 생각하면 쉽다. 이게 과연 2023년, 서울 한복판에 평당 6천만 원 오피스텔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분양 당시 홍보 책자를 찾아보니 도면에는 있었지만 건설사에 다니는 남편 눈에도 띄지 않을 정도였고, 심지어 모델하우스를 보러 갔을 때도 듣지 못했다. 게다가 실외기실을 같이 쓴다는 것은 상식 밖에 일이었는데 실제로 목도해 버렸다(이후에 이 현장에서 상식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게 됨) 이 밖에 누수, 외벽 마감, 사전점검 3일 전 새시가 없는 집 등 최근 인천 검단자이처럼 안전에 대한 이슈를 제보해야 세상에 알려질 수 있다.

조선일보 부동산 채널 - 땅집고 유튜브
"옆집과 대화? 여긴 통행도 가능"… 공용 실외기실, 사생활 침해 우려되지만 법으론 문제없다?
https://youtu.be/pKBqJ5HEt1M?si=6Q1jKcF-Hxx6sZAZ

한 온라인 커뮤티니에 오피스텔 원룸에 있는 실외기 문을 열자 한 여자가 서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이 집은 옆집과 실외기실을 공용으로 쓰는 구조로 지어졌다. 실외기실을 통해 옆집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제보자는 “사람이 거뜬히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이다”며 “문을 열면 옆집을 갈 수 있는 공용 실외기실이 대체 어딨냐”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노려라

만일 언론 컨택이나 보도자료 작성이 어렵다면 온라인 커뮤니티에 내용을 올리는 것도 언론 보도에 도움이 된다. 보통 기자들은 취재, 제보 등으로 기사를 꾸리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블라인드나 보배드림, 디시인사이드 등도 수시로 모니터링하기 때문이다. 위에 내용은 다른 소유주가 블라인드에 사진과 내용을 올리게 되어 크게 보도되었는데 이후 Jtbc, MBC, SBS 등에서도 많은 연락이 왔고 이 중에서 단순히 화제나 웃음거리를 위한 기획 빼고는 취재에 응했다. 이렇게 언론을 통해 공동 실외기실이 세상에 일파만파 알려지고 나서야 꿈쩍 않던 시행사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했고 실외기실 보안책 4개를 가져와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현재 실외기실은 아연강판을 제작해 양쪽을 막아두었으며  원하는 세대에 한 해 이중잠금장치를 달아주었다.(이것도 온전한 해결방법은 아녔으나 건물을 다시 지을 수 없었기에 의견을 모았다) 관청은 이 과정에서 실외기실 강판 발주서, 세금계산서, 입금내역서를 받은 후에 사용승인을 내주었다. 아마 이렇게까지 언론에 이슈가 안 되었다면 옆집과 통할 수 있는 위험한 오피스텔로 낙인찍혔을 것이며 입주자도 사는 내내 불안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불편한 사실도 투명하게 오픈하고 알려야 자산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힘을 모아 법과 사회를 바꿔라

실외기실 이슈로 한차례 곤욕을 치른 후, 진짜 하자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오피스텔의 공기가 늘어난 것은 코로나19 여파와 러우전쟁으로 인한 원자재값 상승, 인건비 상승 그리고 다른 현장 보다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은 도심 현장이기 때문이었다. 도심 현장의 경우 주변 밀집도가 높아 소음이나 공사 분진에 대한 기준도 높고 주변 오피스, 상권, 거주민들의 민원도 비교적 많은 곳이다. 심지어 오피스 옆 아파트는 관청 공무원들에게도 소문난 악성민원인들이었다. 악조건 속에서 건물을 올린 시공사 현장소장과 직원들의 노고는 알겠는데 내 집의 '누수'를 너그럽게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심지어 오피스텔 구조상 각 호실의 경계는 모두 방화용 석고보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한 호실에서 물이 새면 해당 호실의 전체층이 뚫린다. 하필 입주장이 7월 장마철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집에 물이 샌다는 것은 절대 안 될 일! 

게다가 하청업체 인부 중 한 명이 무슨 원한인지 몰라도 한 호실의 싱크대와 욕실 배수구를 막고 밤새 문을 틀어놓는 일이 발생했다(아직도 이 일이 사실인지 모름). 아무튼 고층부의 경우 그 물이 전체 호실을 따라 내려갔서 누수가 있었고, 반대편 호실에서는 배관 접촉불량으로 물이 샜으며 또 다른 몇 호실에서는 급수문제로 인해 온수가 새는 집도 있었다. 이러니  '누수'라면 지금도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다.


'워터파크'도 아니고, 이러다 시행사, 시공사 모두 사업을 접고 나면 모든 수리비와 누수는 우리의 몫이 될 것 같아 두 번째 기사 준비는 우리와 비슷한 수도권 부실시공 현장의 사람들과 머리를 맞댔다. 아직도 공사가 멈춰있는 경기도 고양시의 한 오피스텔 현장과 청계천에 있는 대형 건설사의 오피스+아파트 현장이었다. 청계천 H오피스텔 입주자 예정 협의회 부회장은 콘크리트 타설을 하는 날에도 현장을 지키며 건설사가 여름철 타설 규정을 어겼다며 성명성을 낸 바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협력 제안에 대해 반가워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건축공사표준시방서에는 콘크리트 타설 시 외부 기온이 25도 이상일 경우 90분을 넘겨선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평균 30도가 넘는 날 현장을 지켜본 바 2시간 30분이 지나도 레미콘 차량이 계속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는 것. 법과 규제가 있는데도 감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어디 그런 현장이 한 두 곳일까? 그래서 두 번째 보도 준비는 단순히 어느 한 오피스텔의 하자가 아닌 현재 건설업계 전체가 처한 문제로 포커스를 잡았고, 결국 총 3부작이 넘는 기사를 만들었다(*메일로 별첨)



감사하게도 이때 만난 기자님의 눈이 굉장히 반짝였고, 이 시대 찾아보기 어려운 기자 정신을 가진 사람이었다. 기획기사 하나를 위해 여러 번의 취재를 나왔고 매주 열리는 소유주 회의에도 참석했다. 우리는 주말에도, 저녁 늦은 시각에도 만났는데 그녀는 매 순간 자기 일 마냥 함께 분노해 주었다. 첫 번째 기사가 나간 이후에는 시공사 홍보팀이 회사 이름을 빼달라며 데스크를 압박하는 일도 있었는데 만일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모든 취재를 열심히 할 의미가 없다고 부장님을 향해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결국 시공사 홍보팀의 지긋지긋한 공세에 3일 만에 S건설로 수정되었다) 3년 간 그 매체에서 객원기자로 일을 했기 때문에 편집부장에게 대드는 주니어 기자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강단이 있고 고마운 사람이었다. 기사가 나올 때마다 공유해 주며 토닥여줬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 한편이 찡해진다. 왜냐하면 그도 결혼한 지 얼마지 않은 신혼부부였으며 집을 마련하고 싶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30대였기 때문일 리라. 그러니 용기를 내서 제보하라. 처음엔 막막할 지 몰라도 어디선가 여러분을 도와줄 사람이 나타나고 하늘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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