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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The F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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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Eun Mar 17. 2016

The Flight_14

<14> 가장 잘못한 일

<14>


 기분 좋아진 나에게 그는 내일 아침을 함께 먹자 했다. Cafe Medina는 브런치로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는데, 벤쿠버에 오기 전부터 그가 추천했던 곳이었다. 다음 날 아침 9시에 우리는 까페 메디나로 향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우리가 들어서고 얼마 안 되어 레스토랑 안은 많은 대기자들로 가득 찼다.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손님이 북적북적한 인기 있는 곳이었다. 활기찬 분위기에 맛있는 오믈렛, 라벤더 라떼는 특히 일품이었다. 생각해보니 평일 아침이었는데도 그 곳은 그렇게 붐볐다. 폴은 이게 벤쿠버라고 했다.


"Here are many people who moved in after retirement. Or there are many people who have rich parents and don't need to work."

"여긴 은퇴 후에 이사 온 사람들이 많아. 아니면 부자 부모가 있어서 일할 필요가 없든가."


 종종 그는 벤쿠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가 말하는 벤쿠버 사람들은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고,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레스토랑에만 관심이 많다 했다. 그리고 토론토와는 달리 수트를 입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했다. 그는 그 점들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물론 그는 그가 태어나 지금껏 자란 벤쿠버를 너무나 사랑하고, 그 곳을 떠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어쨌든 그가 말하는 벤쿠버 사람들은 그랬다. 그래서 자신은 토론토에 가면 그 곳 사람들이 수트를 입고 다니는 모습이 너무 좋아 자신은 휴가차 토론토에 간 것인데도 불구하고 수트를 입고 나가기도 한다 했다.

 내가 벤쿠버에 와서 느낀 건, 그는 생각보다 겉치레를 중시하는 사람인 거 같다는 것이었다. 그게 나쁜 것인지 좋은 것인지에 대한 가치 판단은 배제하고서 그는 보이는 것을 꽤 많이 중시하는 사람이었고, 돌이켜 기억해보면 많은 부분에서 '잘 보여지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는 사람이었다. 웬일인지 나는 벤쿠버에 와서 그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마냥 설레고 떨리고 좋기만 했던, 말이 너무나 잘 통하고, 혹은 나와 다른 점이 있을 때도 그 다른 점 역시 매력으로 다가왔던, 이러나 저러나 너무 좋기만 했던 그런 마음이 아니었단 말이다. 너무 그의 일상이었고, 너무 그의 현실이었기에 그의 '진짜'를 보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까지도 무엇이 '진짜'인지는 쉬이 단정지을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환상적인 아침이었다. 그 날은 특히 그의 회사에서 아트쇼를 여는 날이었기에 그는 회사로 들어가야 했고, 저녁 때 나는 그 아트쇼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게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그는 아트쇼가 무척 흥미로울 거란 얘기만 해 주었다.


"There might be a lot of people. I invited about 50 people including my clients, and friends. You will meet all of my clients, friends, and co-workers!"

"이따 아마 사람들이 엄청 많이 올꺼야. 나는 친구들이랑 고객들 50명 정도를 초대했어! 내 친구들, 고객들, 동료들 다 만나겠다 너!"


 불편했다. 50명을 강조하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신나하는 것도. 나와는 달랐다. 만약 내가 그였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초대하기 보다는 정말 친한 소수의 친구들과 진짜 아끼는 고객 몇몇만 초대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떤 행사인지도 잘 몰랐기에 그저 나 또한 신나하는 척 연기했다. 아마도 그와 함께하면서 처음으로 기쁜 '척'을 했던 때였다. 그 전까지는 내 모든 감정에 솔직했다. 좋은 것, 싫은 것, 기쁜 것, 슬픈 것. 하지만 이 날부터는 그렇지 않았다. 싫어도 좋은 척 하기도 했고, 슬퍼도 그렇지 않은 척 하기도 했다. 사회적 표정과 사회적 감정을 그에게도 갖기 시작한 때였다.


 그렇게 설레는 '척'을 하며 나는 저녁 시간에 맞춰 그의 회사로 갔다. 가기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동료들이 궁금했고, 그가 설레하는 행사에 함께 가고 싶었고, 그의 친구들 또한 만나보고 싶었다. 그저 그의 그런 태도가 아쉬워 덜 설렜던 것 뿐이었다. 그렇게 들어 선 폴의 회사 안에 들어서 벽에 걸린 많은 작품들을 감상했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모티브로 한 그림이 가장 큰 크기였다. 나중에 그는 어떤 작품이 가장 좋았냐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은 그 작품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동물 농장을 알고 있는 것을 신기해했다. 어떻게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모르겠는가. 우리 나라에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하지만 그의 주위 사람들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 말대로 벤쿠버 사람들은 예술에는 심하게 관심이 없는 것인지 어쨌든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 작품을 내가 알고 있는 걸 알 때마다 신기해했고, 나는 그런 나를 신기해하는 그가 신기했다.


 그 아트쇼에서 나는 폴을 만나지 못했다. 인산인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가서 보니 폴이 일하는 이 부동산 중개 회사는 일년에 두 번 이렇게 아트쇼를 열었다. 몇몇 작품들을 전시해놓고, 직원들은 친구들이나 고객들을 초청해 함께 작품을 보고, 루프탑에서는 와인과 샴페인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여는 것이었다. 폴은 아마 아트쇼동안 자기가 정신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던 터라 나는 굳이 그를 찾지 않고, 작품들을 둘러보고 루프탑으로 올라가 화이트 와인을 한 잔 받아 밤공기를 마셨다.


 나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지만, 진심으로 나는 외롭지 않았다. 그 날 내가 다시 한 번 느낀 것은, 사람이 많은 곳에 혼자 있다 해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것. 나에게 있어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그렇게 주위 상황에 의해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기도 했고,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미친듯이 외롭기도 했으며, 또 어떤 때는 혼자 있기에 말할 수 없이 외롭기도 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그렇게 복잡하고도 미묘했으며, 주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었다.


 루프탑에서 마신 와인은 내가 몇 년 만에 마친 술이었다. 알콜에 자주 반응하는 피부 때문에 그냥 아예 술을 입에도 대지 않은 게 몇 년 째였다. 술자리를 그리 즐기는 편도 아니었기에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와인을 한 입 마시니 벌써 취기가 알딸딸하게 올라왔다.


"Hello?"

"안녕하세요?"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You came here by yourself?"

"여기 혼자 오셨어요?"


"Yes.. and you?"

"네.. 그 쪽도요?"


"Yes. Who did invite you?"   

"네.. 누구 초대로 오셨어요?"


"I'm invited by Paul Wong."

"Paul Wong 초대로 왔어요."


"Oh, I see. I'm invited by Brandon but he might be too busy under there.."

"아 네. 저는 브랜든 초대로 왔는데, 아마 밑에서 바쁜 거 같아요."


"Yes, Paul too!"

"네.. 폴도요!"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굳이 나는 폴을, 그는 브랜든을 찾아가 내가 왔노라 알리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밴쿠버 HSBC에서 일하고 있는 회사원이었고, 폴처럼 벤쿠버에서 자란 중국계 남자였다. 그러나 그는 폴만큼 좋은 영어 발음은 아니었고, 그래서 나는 몇 번쯤 그에게 다시 말해주기를 부탁하기도 했다. 명함을 받았고, 메일을 보내라 했다. 나는 그러겠노라 그렇게 우리는 나름 잠깐의 친구가 됐다.


 그렇게 몇 십분쯤 이야기를 했을까, 아트쇼가 곧 끝난다는 공지가 있었고, 그는 취기가 오른 내가 폴을 찾는 것을 보고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2층으로 내려왔고, 폴은 자신의 친구인지 고객인지 모를 사람들과 인사중이었다. 그는 나를 보고 인사했고 아마도 함께 있던 그 남자를 내가 벤쿠버에 같이 왔다고 말한 영균이로 아는 모양이었다. 우리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고, 또 몇 명쯤에게 굿바이 인사를 하고 우리에게 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새로 만난 친구에게 먼저 가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는 뻘쭘한 내 옆에서 함께 폴을 기다려줬다.


 내가 폴에게 이 사람은 이 아트쇼에서 만난 친구고, Brandon의 친구라고 말해줬고 폴은 예의 그 미소를 띄며 친절하게 인사했다. 그렇게 Brandon의 친구는 꼭 메일을 보내라는 말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Paul의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러 주위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Your friend, Mike is strange!"

"네 친구 마이크라는 애 이상해..!"


응? 순식간에 그 남자는 내 친구가 되었고, 폴은 또 왜 그 남자가 이상하다는 건지.  


 그는 자기를 만나자마자 자기는 마이크고, 브랜든 친구이라고 소개하며 자기 명함을 주면서 폴에게도 명함을 달라고 하는 그가 무척 공격적으로 느껴졌으며, 자신의 사회적인 모습이나 직업같은 것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 같았고, 너무 적극적이어서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폴 자신 역시도 그런 부분에 큰 가치를 두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고, 마이크는 마지막에 나와 폴을 기다리며


"He knows so many people."

"폴 아는 사람 진짜 많네.."


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많은 사람을 알고 있고, 또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인데, 마이크를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을 보니, 다들 자신의 모습은 자각하지 못한 채 남의 허물은 잘만 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나도 그냥 그의 그런 면이 별로인 거 같다는 그에게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아니 오히려 긍정에 가까운 제스쳐와 반응을 하며 넘어갔다. 굳이 그런 부분에 대해 다른 생각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아마도 이 날 나는 폴의 많은 부분에 실망 했었던 것 같다.    


 폴의 아트쇼에는 Peter도 함께 했다. 타이페이에서 잠깐이지만 얼굴을 봤던 터라 반가웠다. 하지만 폴이 Peter에게 내가 벤쿠버에 왔다고 얘기하자 무척 놀랐다는 반응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조금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Hi! It's a little crazy that I'm here, right?"

안녕!! 나 여기 온 거 좀... 웃기지?


"Hi! It's not crazy,, Vancouver is common city to visit as traveling!"

안녕!! 아니, 전혀.. 밴쿠버는 여행으로 사람들 많이 오는 도시잖아!


 역시 다른 사람의 기분을 배려해주는 그였다. 하지만 폴에게 나중에 이 대화를 이야기했을 때, 그는


"That's Peter. He never shows his real thinking.. He is too considerable to other's feeling.."

그게 피터야.. 그는 속마음을 잘 내보이질 않아. 남의 기분을 너무 신경써..


 역시 또 의아했다. 이 날 나는 폴의 너무 많은 면을 보았다. 혼란스럽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 깊이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아니 실망스럽다기보다는 안타까웠다. 그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남자였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피터가 그렇게 말해줘서 너무나 고마웠다. 그가 속으로 진심으로는 이 여자 미쳤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더라도 저렇게 말해주는 편이 나에게는 훨씬 좋았다. 그가 부드러운 돌려 말하는 화법이 아니었다면, 어 나 솔직히 니가 벤쿠버 왔대서 엄청 깜짝 놀랬잖아.. 라고 말했다면 나는 그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폴, 피터, 그리고 폴의 또 다른 친구 그렉과 저녁을 먹고 10시쯤 됐을까 우리는 자리를 일어났다. 밤늦게까지 술 마시지 않고, 피곤해하며 집에 들어가는 것은 폴 친구들의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벤쿠버 사람들의 특징인지는 몰랐지만 나는 좋았다. 나는 아침형 인간은 아니지만, 밤 늦게까지 밖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저녁에 방에서 음악을 듣고, 향초를 켜고 스트레칭을 하고, 일기를 쓰거나 사진을 정리하거나 책 보는 걸 좋아하지, 시끄러운 곳은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나는 벤쿠버가 더욱 좋았다. 적막하지만 전혀 쓸쓸하지 않은 그 느낌과 냄새가 좋았다.


 아직 10시였다. 폴은 나에게 다음날 일정을 제안했다. 휘슬러에 가자는 것이었는데, 그 곳은 스키어들의 성지라고 불린다는 것을 블로그에서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도 폴도 스키나 스노우 보드를 즐기는 모험심 강한 스타일은 아니었기에 거기에 가서 구경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오자고 했다. 하지만 승용차로 2시간 정도가 걸리는 곳이고,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기에 내일 입을 옷가지 같은 간단한 짐을 챙겨 자신의 집에 가서 자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했다. 나는 그러자 했고 그렇게 짐을 꾸려 함께 폴의 집으로 갔다. 벤쿠버에서 한 일 중 가장 잘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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