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Take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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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거의 자지 못하고 뒤척였다. 생각보다 감기가 심하게 든 모양이었다. 계속 뒤척이면서 밤을 거의 지새고 새벽쯤 잠이 들었고, 이내 곧 비행기 시간 때문에 우리는 일어나야만 했다. 몸이 아프면 머리도 새하얘지듯, 나는 차라리 아파서 다행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만큼 헤어짐이 조금 두려웠다. 그와 체크 아웃을 하고 아침을 먹으러 갈 때까지만 해도 아파서 오히려 그런 느낌을 못 느낄 수도 있겠다 머리는 오히려 깨끗할 수도 있겠다 생각한 것이다. 물론 크나큰 오산이었지만.
그는 공항 버스를 타고 타오위안 공항으로, 나는 시내에 위치한 가까운 공항으로 가야했기에 우리는 같이 아침을 먹고 공항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그를 보내고 나는 호스텔에 들러 짐을 챙겨 시내 송산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한 샌드위치 집에 들어갔고, 우리는 어제 그렇게 찾아 헤매던 콘수프가 메뉴에 있을 걸 보고 또 한 번 웃었다.
공항 버스 티켓을 사고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우리는 딱히 아무런 진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 나이에 청승 맞은 신파 영화같은 장면을 연출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힐끗 힐끗 쳐다보는 우스운 원숭이는 더더욱 되고 싶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상황을 가볍게 생각하려고 했고,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버스가 왔고 그가 떠날 시간이 10분도 채 남지 않자 이제는 정말 작별 인사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를 버스에 태워 보내고, 창문 밖으로 인사를 하며 우는 장면은 더더욱이 싫었다. 그냥 버스가 떠나기 전에, 웃으면서 인사하고 그를 보내고 싶었다. 쿨한척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 번 감정선이 터지고 나면 주체할 수 없는 나를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얘기하자 그러자고, 지금 인사를 하자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둘 다 뭐라고 인사를 해야할 지 몰랐다.
"I will be missing you."
보고 싶을꺼야.
정말이었다. 나는 그를 정말 그리워 하리라.
"Me, too."
나도.
그 또한 진심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젯밤 그는 이야기 했었다. 우리 이야기를 글로 꼭 써놓고 싶다고. 그리고 자기가 나중에 많이 나이가 들어서 생각했을 때도 자신은 우리의 이 이야기를 기억할 거 같다고. 그리고 이야기할 것 같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나도 그럴 거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사랑을 할 때도, 연애를 할 때도, 항상 감정에 솔직한 나인데, 왜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우리가 나이가 들었을 때 서로 까마득히 연락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 벤쿠버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남남처럼 살고 있는 그 상황을 상상하기가 싫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그는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우리의 관계를 현실적 관점에서 보고 있었다면, 나는 그걸 인정하기가 싫었던 게 아니었을까.
"Take care."
잘 지내.
"Take care."
잘 지내.
"See you soon."
곧 만나.
"See you soon."
곧 만나.
그렇게 잘 지내라는 마지막 인사를 서로 건네고, 슬프지만 따뜻한 키스를 끝으로 나는 서둘러 승강장을 빠져나왔다. 차오르는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눈물은 새나왔고 나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하지만 씩씩하게 돌아섰다. 그리고 그 쨍쨍한 타이페이 시내를 눈물 흘리며 씩씩하게 걸었다. 햇살이 너무 좋아서 더욱 내 눈물이 슬프게 보였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작별을 했다. 어떤 확신도, 미래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은 채로.
공항에서 서울까지 오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겠노라 다짐했지만, 그 3시간여동안 나는 쓰러져 있었다. 그 독한 감기를 달고 한국에 도착해 나는 한 달 내내 앓았다. 한 달 동안 병원을 4번을 가고, 조금 나아졌다 다시 아팠다 하는 통에 나는 태어나 가장 긴 감기를 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