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구와 재연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고
남은 삶도 얼마 남지 않은 이들.
자신이 죽을 날이 언젠지 뚜렷히 느끼게되면
본연히 가장 소중히 여겼던 가치에 집중하게 된다고 하지만
증오하는 쿠토 삼촌 외 가족을 모두 잃은 재연에게는 그저 자포자기, 두려울 것이 더이상 없는 상태, 삶에 대한 미련을 반 쯤 놓아버린 상태에 불과했다. 삼촌 역시 위험한 장사를 하다가 목숨을 잃는다. 재연은 극한의 슬픔에 빠진다.
태구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따르던 양 사장이던, 경쟁 조직의 도 회장이던, 누가 그랬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자신의 마지막 남은 가족들은 이기심에 가득찬 이들에 희생되어야했고 자신 또한 벗어날 수 없었다.
태구의 블라디보스토크, 재연의 미국은 세상이 그들에게 제시한 미래, 하지만 그들은 그 곳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죽을 텐데 괜찮아 같이 자자
-나도 취향이란게 있어서.
재연은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린 채 말했지만
태구는 그러고싶지 않았다. 아직 블라디보스토크와 조직에서의 삶이 남아있어서 남아있어서 그런걸까.
그 자리에서 욕망에 못이겨 동침했다면 영화는 그 둘에게 남은 삶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그 둘은 물회를 떠 먹고 해안도로의 풍경을 달린다. 태구도 직감적으로 조직에 배신당해 목숨이 위태로움을 감지한다. 완벽하게 세상에 홀로 남은 남녀는 마지막이 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즐긴다. 오히려 그것이 블라디보스토크나 미국에 가는 것보다 더 그들이 원했던 것일지도.
사랑이었을까. 가족같은 친구였을까.
태구가 죽자, 재연 역시 더이상의 미련을 남기지 않고 자살한다.
낙원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