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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Jan 11. 2018

그냥 사랑하는 사이

그냥 살아가는 한해

새해 첫 주말, 회사 동료들과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목요일 퇴근 후 출발해 3박4일을 꽉 채운 여행. 이제 정말 체력이 바닥나 버린걸까, 추위 탓일까, 여행지에서 과음한 탓일까. 우린 모두 감기를 달고 돌아왔고 아직도 회복하지 못한 채 골골대고있다. 이렇게 해가 바뀌고도 열흘이 넘게 흘렀다. 사실 해가 바뀐다는 것, 결재서류에 2017을 2018로 바꾸어야한다는 것 외에 특별한 의미를 느끼진 못하겠지만, 이렇게 억지로라도 한해를 정리하지 않고 한해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짧지만 여행을 자주 다닌 해였다.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여행기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고, 다이어리 한켠에, 에버노트 한페이지에 짧은 단상들이 이리저리 기록되어있을 뿐이다. 그치만 내가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은 변치않고, 작년 한해를 힘차게 살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돈을 벌게되면 1년간은 애써 저축하지 않고 펑펑 쓰고싶다고 생각했었다. 정말로 작년엔 양심의 가책을 안느낄 정도의 최소한의 돈만을 저금하고, 펑펑 썼다.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홀로 다녀오기도 했다. 뭐든 혼자서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막상 다녀오니 그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혼자만의 여행을 자주 떠나보고 싶다.


이뤄낸 건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술을 정말 많이 마시고, 술로 인한 실수도 많이 했다. 건강은 망가지고, 살은 엄청 쪘다.. 올해의 유일한 결심이라면 정신 못차릴정도로 술을 먹지 말자는 것. 그 뿐이다.. 이 다짐은 새해 첫날부터 깨지긴 했지만 노력해볼 셈이다. 일기를 꾸준히 쓰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못했다. 그렇다할 취미생활도 없다. 요즘 말하는 '워라밸'이 최상인 직장에 다니면서도 퇴근하고 나서 뭔가를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출근길은 여전히 고역이다. 일년을 다녀도 익숙해지지 않는 지옥철이다. 열차 안에 있는 시간은 정작 오분남짓이면서, 그동안 오만생각을 다한다. 아침마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 지옥철 안에선 영혼을 지워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지워지지 않는다.


자극적인 한해였다. 이른바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인 한해였다. 완전히 무너질 것 같이 사랑을 했고, 감당안되는 행복과 감당안되는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이제 그런 감정은 느끼고싶지 않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 다음 사람은 많이 사랑하지 않고 하지 않고 잘 사랑해내고싶다. 자극이 크지않고 편안했으면 좋겠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해질녘의 바다처럼 고요했으면 좋겠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했으니.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퇴근하고서 남지않은 체력을 아득바득 그러모아 쓰고있다. 오늘 친구에게도 털어놨듯, 난 인생리셋(혹은 리프레쉬) 중독에 걸린것 같다. 다른곳으로 적을 옮겨도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일은 없다는 걸 알지만서도,  이미 아쉬움과 부족함을 느껴버린 생활에 안주하고싶지 않다고 해야하나. 혹은 그냥 목표점과 성취할 대상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하는 거다. 살다가 보니 큰 이유가 필요해서, 큰 뜻이 필요해서 하게 되는 일은 그닥 많지 않은것 같다. 올해도 그냥, 내앞에 주어진 일을 하고, 내가 해야할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가면서, 그냥 살아가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건강하게. 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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