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인장 Jan 01. 2017

부랴부랴 한 해를 정리하며

2017년의 첫 날에 쓰는 글

2016년이 끝났다. 일기를 꾸준히 써보리라 다짐했으나 뭐나 그리 바빴는지, 아니면 가만히 앉아 일기쓰는 것보다 재밌는 게 너무 많아서 그랬는지, 이 공간을 버려둔 지가 꽤 됐다. 그러다 해가 넘어가 버렸으며, 해넘이에 큰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지만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참 많은 감정을 느꼈던 2016년은 어떤 식으로든 정리를 해두고 싶어서.


1.올해의 절반은 비슷하게 흘러갔다. 아침에 일어나 공부를 하고 다시 잠들고 또 일어나 공부를 하고의 무한 반복. 난 그 시기를 이렇게 정의했다. 오롯이 하루를 나를 위해서만, 내 뜻대로 계획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시간들. 오직 나만 생각했고, 어떻게 해야만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지만 고민했다. 나 자신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게 노력했고,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지 않아도 됐다. 그때문인지 어쩌면 고통스러울 수도 있었던 수험의 나날들이 나는 꽤 좋았다. 언제 다시 하루를 몽땅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날들이 올까.


2.결과가 좋았으니 아름답게 기억되는 거겠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계획했던 일들을 모두 이뤘고, 그 이후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공부하면서 가장 바랐던 점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매일 혼자만 지내다 보니 그동안 못본 지인들도 너무 보고싶었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도 맺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올 하반기는 수많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이 되었고, 그간 연락을 끊고 지냈던 사람들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며 또다시 새로운 친구들을 잔뜩 만날 기회가 있을까 걱정했었다. 왠지 사회에선 진짜 친구를 만나기 힘들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건 괜한 걱정이었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3.그리고 좋은 사람을 잃었다. 2년 간 만나온 사람과 이별했다. 더할나위 없이 좋은 사람이었다. 이별 이유는 간단했다. 누군가 잘못을 한 것도 아니다. 그사람이 나쁜 사람이어서도 아니고. 더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내 마음이 아무리 노력해도 되돌아오지 않아서. 가끔 놀라울 정도로 잔인한 내모습을 발견한다. 그날도 그랬다. 평소엔 그토록 우유부단하면서 그런 상황에선 소름끼칠정도로 이성적으로 변하는 걸까. 잘 지냈으면 좋겠다. 열심히 해서 바라는 것도 이뤘으면 좋겠고, 나보다 훨씬 따뜻한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사람과 헤어진 건, 연수원에 들어간지 3주차 주말이었다.


4.늘 여러사람과 함께 북적대는 곳에 있어 다행이었다. 이별을 인식할 틈이 없었다. 그가 혼자 사는 집에 돌아가 그 시간을 감내할 동안, 나는 여러사람들과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낼 수 있었다. 일주일 중 7일을 같은 사람들과 놀았다. 일과시간동안엔 수업을 듣고-중간중간 잡담을 하고, 졸며- 일과가 끝나면 저녁을 먹고 술을 먹었다. 탁구를 치고 배드민턴을 쳤다. 자전거를 타고 수만평의 연수원을 누비기 참, 좋은 가을날씨였다. 주말엔 시내에 나가서 놀았고, 또 저녁엔 한 방에 모여 술을 먹고, 컵라면을 끓여먹었다. 블루투스 스피커에 아무 음악이나 틀면서 노래 맞추기를 했고,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매일 밤을 지샜다. 아침이면 퉁퉁부은 눈으로 강의실로 향했고, 술이 덜깨 오전 내내 얼굴이 새빨간 적도 많았다. 처음엔 모든게 걱정됐던 연수원 생활이었는데,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시간을 붙잡고 싶었다. 일주일만 아니면 이틀만 더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5.꿈같은 시간이 끝나고 곧바로 첫출근의 날이 밝았다. 모든게 어색한 미생의 첫 발걸음이었다. 서초역 7번출구에서 옹기종기 모여 딱딱하고 무서운 건물로 들어가던 그날의 아침을 기억한다. 배치받은 부서에 가서 어색하게 자기소개를 하던 순간도 떠오른다. 점심은 어떻게 해야하나, 퇴근은 해도 되나, 사람들 이름도 몰라서 어수룩하게 굴었다.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신입사원의 얼굴을 한 나였다. 어느덧 두달이 흘렀다. 첫 회사생활인데 너무 힘들기도 하고, 너무 즐겁기도 했다. 기자들이 잔뜩 줄지어있는 회사 입구에서 업무용택시를 기다리며 전화기를 붙들고 눈물을 펑펑 흘리던 날이 있었다. 예쁘게 정리된 열손가락의 손톱이 몽땅 까지고 부서질 때까지 네일샵에 들릴 시간도 없이 일했던 때도 있었다. 말도 안되는 일로 혼나고 회사를 나서서 집까지 걸어가며, 또 전화기를 붙잡고 서럽게 울었던 날도 있었다. 왜 난 이렇게 운이 없을까. 왜 하필 내가. 그럴때마다 내 볼멘소리를 다 들어주고 힘을 주던 사람이 있었다.


6.요즘 가장 친하게 지내는 사람일게다. 한두시간씩 통화하는 건 예사일이 되었고, 일과 시간 중엔 메신저로, 일과가 끝나면 전화나 카카오톡으로 늘 연락을 한다. 그와 나의 사이가 대체 무엇인지 고민했던 때도 있다. 이 애매한 관계를 무어라 정의내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며칠 고민하다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사실 아무렴 상관없다고. 그와 나의 관계가 무엇이든 난 지금 네가 필요하고, 너는 스스로 말했던 대로 캄캄한 길에서 만난 촛불같은 존재였다. 같이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즐겁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른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나와 성격이 닮아있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저런 모양이었을까 싶을때가 있다. 하지만 다시 연애를 시작해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 속으로 굳이 발을 들이고싶지도 않다. 모르긴 몰라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겠지.


7.2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2016년에 느낀 점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사람이든 무엇이든-에 마음을 조금만 소홀히 하면, 금세 마음이 저만치 멀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참 좋아하는 사람과 벌어진 거리를 다시는 좁히기 힘들어졌고, 참 좋아했던 취미들이 시시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다면 이제 누굴 좋아하고 어떤것에 관심을 쏟아야할까, 어차피 다시 식어버리고 멀어져버릴텐데. 하는 마음을 가졌을 수도 있다. 옛날의 나라면 말이다. 사람의 성격도 자꾸만 바뀌나보다. 정말 정성들여 재료 하나하나를 넣고 끓였던 국이라면, 그 국이 차갑게 식은 후에도 다시 불을 켜 따뜻하게 데워서 맛있게 먹게될거다. 차갑게 식어버려도 다시 데우고싶은 마음이 들면 된다. 난 좀 긍정적으로 변한걸까. 아직 1월 1일이 끝나지 않았다.


8.작년은 정말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말이다. 어쩌다보니 개인의 이야기만 구구절절 써내려갔지만,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도 잊지못할 한해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그 소용돌이의 핵심에서 사건을 바라봤으니, 먼 훗날 자손들에게 할머니가 이런저런일 했다고 이야기해줄 에피소드는 잔뜩 생긴 것 같다. 올해는 더 기억에 남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몇년째 이어진 혼란에 그리고 비정상적인 모든것에 종지부를 찍었으면 좋겠다. 역사는 언제나 나선형으로 나아간다고 믿는다.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새해 복 많이 받고. 늘 건강하고. 작년에 미처 못봤던 사람들도 얼른 만나서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세상이 어지러워도 최선을 다해 행복합시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듣고싶은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