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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희 May 21. 2023

유통기한이 있는 교포스러움

영어 교육에 너무 목매지 마세요


“Teacher! Where are you from?”

학생들은 내게 종종 묻는다. 나는 사립 초등학교에서 영어 전담 교사로 8년째 일하고 있다. 학교에서 나의 본명을 아는 학생은 많이 없다. 그저 엘리나 티처로 불린다.


나를 보면 분명 한국인인데 유창하게 영어만 쓰니까 특히 저학년 학생들은 혼란스러워한다. 처음에는 외국 선생님인가 싶다가도 가끔 담임 선생님과 한국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발견하면 “엘리나 티처 한국말하고 있다!!!” 흥분하며 내 옆에서 떠나질 않고 신기하게 쳐다본다. 야, 엘리나 티처 한국말 할 줄 알아! 학생들은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 것 마냥 반으로 돌아가서 쩌렁쩌렁 소리치며 말한다. 몇 번 당하고 난 다음부터는 담임 선생님한테도 나는 교포스러움을 유지한다. 담임 선생님도 멋쩍게 웃으시면서도 끝까지 나와 영어로 대화하신다.


처음 사립 초에 일하러 갔을 때, 나는 밝은 연갈색으로 염색한 상태였다. 사립 초라서 TEE (Teaching English in English) 영어로만 수업하는 나에게는 연갈색으로 염색한 것이 꽤 편리했다. 덕분에 학생들은 전부 내가 외국인이라는 걸 찰떡같이 믿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한국 생활보다 해외생활이 더 편한 상태였기에 나의 교포스러움은 꽤 강했다. 나의 제스처, 말투, 스타일, 분위기 등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이 나한테 혹시 한국인이 아니냐고 묻는 횟수가 늘었다. 그럼에도 나는 늘 “I am 교포”라고 대답한다.


교포. 사실 나는 사람들이 속히 말하는 교포 2세는 아니다. 교포 1.5세. 매우 어중간한 사람이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난 대한민국 국민이다. 어릴 때 외국으로 이민 갔다. 그러니까 교포 1.5세는 나처럼 토종 한국인이 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한테 지칭하는 단어다. 외국인도 교포도 한국인도 아닌 그 사이에 있는 사람인 셈이다.


물 온도를 보면 미지근한 온도는 끝까지 유지되는 법이 없다. 미지근한 ‘순간’은 있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뜨거움은 사라지고 차갑게 식는다. 그러니까, 미지근한 건 과정 중에 속한 온도라고 할까나. 나의 교포스러움도 마치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 9살 때 과테말라로 이민을 한 건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부산 사투리가 사라지고 초등학생 수준의 어눌한 한국어만 남는 대신 영어와 스페인어를 할 줄 알게 됐다. 그 과정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엄마의 치맛바람은 해외에서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얼떨결에 3개 국어를 하게 되었지만, 나는 꽤 혼란스러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잡종인가. 완벽하게 외국인들과 어울리고 싶어도 나의 한국인의 뿌리가 벽이 될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한국인들과 지내고 싶어도 나는 그들에게 그저 외국물 먹은 사람 취급당했다.


결국 나는 검은색도 아니고 흰색도 아닌 회색이다! 나는 나여!

회색으로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교포 1.5세? 괜찮아. 넌 그냥 너야.   


그렇게 회색으로 한국에서 꽤 오랜 시간 보냈다. 부모님은 여전히 외국에 계지시만, 나는 10년 넘게 한국에 지내는 중이다. 그 사이에 나의 제2고향과 같았던 과테말라 영주권은 사라졌다. 이제 과테말라에 갈 때, 여행 비자로 입국절차를 따라야 한다. 입국 심사대에서 내 여권을 보고는 나한테 영어로 말을 건다. 유창하게 스페인어로 대답하면 엄청나게 놀란다. 그들 눈에는 나는 토종 한국인이니까.  


온전히 나의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유통기한이 넘으니 서서히 사라졌다. 대표적으로는 나의 이민 생활의 흔적, 즉 나의 ‘교포’스러움이다.


이제는 나의 제스처, 말투, 스타일, 분위기가 더는 교포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나의 회색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나 미지근한 걸 싫어했으니까 이제 좋아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전혀 기쁘지 않다. 이도 저도 아닌 정체성 때문에 꽤 혼란스러운 청소년기를 보냈음에도 막상 나의 일부가 잘라나간 기분이 든다.   


나의 교포스러움도 유통기한이 있을 줄 몰랐다. 앞으로 조금 더 있으면 한국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은 스페인어는 아예 다 까먹을 것 같다. 그나마 영어는 학교에서 사용해서 유지 중이지만, 이것도 언젠가 사라지지 않을까?


내가 소비되는 식품도 아니고, 왜 나는 나의 모습과 능력을 유지할 수 없을까. 나의 생각도 나의 가치도 왜 변할까.


여전히 학교에서는 나 자신을 교포라고 한다. 한국말 모르는 외국인 척해야지만 학생들이 나한테 한국어로 말을 하지 않고 한 단어라도 영어를 쓰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교포가 아니라 교포인 척해야 하는 한국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학생들한테 영어를 가르치고 있긴 한데, 한국에 있는 수많은 부모님께 말해주고 싶다.  


너무 무리해서 영어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 영어 ‘매우 좋음’ ‘A+’ ‘최우수상’ 안 받아도 돼요.


자녀가 스트레스받으며 배우는 영어도 유통기한이 있어요. 언젠가는 자녀한테서 사라질 거예요.

언젠가 사라질 것에 목숨 걸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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