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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희 Sep 02. 2023

교포가 한국에서 영어 교사를 하게 된 사연

인생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돌아간다.

요즘 나는 학생들과 여름 방학을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한다. 초3 남학생이 너무 행복해하면서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저는 캐나다에 갔어요!


스포츠 캠프였거든요? 엄마는 제가 거기서 영어 공부 조금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저 진짜 운동만 하고 왔어요! 힛힛!


부모가 영어 조금이라도 더 배우라고 캐나다에 보냈는데 정말 놀기만 했다니! 진짜 진짜 공부 하나도 안 했어? 네! 정말 하나도 안 했어요. 히히힛. 뒷목 잡은 학생 어머니 모습이 상상이 되면서 그 상황이 너무 웃겼다.


역시 외국은 외국이구나. 한국이라면 운동은 그저 미끼고 핵심은 영어일 텐데. 기대와 다른 캠프를 보낸 학생 부모님은 아마 허탈하게 웃으면서 그래도 저리 좋아하니 네가 행복하면 됐지!라고 하실 것 같다. 안 그랬으면 학생이 해맑게 웃으며 자랑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처럼 생각했던 것과 다른 현실을 마주한 적 다들 있기 마련이다.


나는 과테말라에서 12학년(고3)을 졸업하고 2일 뒤에 비행기 타고 한국에 왔다. 내 꿈은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며 영어를 가르치고, 그 경험으로 작가가 되는 거였다. 그래서 당연히 내 상식으로는 미국에서 영어 교육학과에 진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보스턴 대학교를 포함해서 미국 / 캐나다 여러 군데에서 입학 허가서를 받았지만, 심지어 부분 장학금도 받았음에도 경제적인 어려움 탓에 갈 수 없었다. 아직도 미국 캐나다 대학교 합격 통지서들 못 버리고 간직하고 있다.  


할 수 없이 한국으로 가야 한다고 부모님께서 이야기하셨을 때, 나는 소리 질렀다. 나 한국 가면 인생 망친다고!!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 엉엉 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에서 영어 교육학과를 나와서 아프리카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이건 너무 말이 안 됐다. 인생 망쳤구나. 한국에서 영어라니. 그것도 내 한글도 초등학교 수준에 머물러있는데 적응할 수는 있을까.


너무 안 좋을 것 같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한국 생활이 잘 맞았다. 생각과 너무 달랐다. 내가 원하던 것을 못해서 불행 가득할 줄 알았는데,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았다.


내 생각대로 안 돼서 인생 망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생은 그렇게 쉽게 망가지지 않더라.

입시나, 직장이나, 다 마찬가지다.


결국 가르치는 일도 하게 됐고, 글도 쓰고 있고. 내 꿈이 이뤄졌다. 그리고 인생의 목표도 뚜렷하게 세우게 됐다. 직업이 목표가 되는 인생만큼은 살지 말자.


다만 너무 치열하게 살다 보니 긍휼함이 뒷전이 된 것 같아 그 부분은 아쉽다. 아프리카여 바이바이?


시간이 흐른 뒤 부모님이 계신 과테에 가서 용서를 빌었다. 너무 죄송했다. 내가 미쳤었지… 한국 가면 인생 망친다고 소리 질러서 미안해. 한국에 억지로라도 보내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그래,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생각한 것과 다른 일이 벌어져도 오히려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멋지게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 친구들이 영어 말하기나 쓰기 대회에서 금상 안 탔다고 항의하는 부모님한테 제발 영향을 받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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