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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희 Nov 09. 2019

내 곁에 누가 없어도 괜찮다

홀로 걷기

17살 때 나를 좋아해 준 남학생이 있었다. 내가 살았던 중남미에는 화산이 많았다. 마침 대사관 영사님이 한인 십 대들을 데리고 화산 등산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셨고, 나도 그 남학생도 같이 참여했다.


살면서 그렇게 높은 산은 처음 보았다. 화산이 아니라 거대한 나무가 우거진 숲 같은 산이었다. 몇 시간을 걸어도 앞과 위는 나무밖에 보이지 않았다. 숨넘어가는 줄 알았다.


그는 나와 함께 걸어주었다. 그는 달리기도 잘하고 농구도 좋아했다. 그런 그가 날 기다려주고 나를 바라봐 주니 나사 빠진 사람처럼 자주 웃었다. 정말 고마웠다. 다만 기분이 좋은 건 좋은 거고 등산이 버거운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생각보다 속도를 내지 못했고 금방 그리고 자주 지쳤다.


체력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치안이 좋지 않은 나라여서 이민 생활하는 동안 길거리를 걸어 다녀본 적이 손에 꼽았다. 기껏 걸어봤자 한인 교회에서 조금 떨어진 한인 슈퍼 정도였다. 그것도 그 짧은 거리를 걷다가 핸드폰을 봉고차에서 의도적으로 내린 현지인들한테 빼앗긴 적도 있었다.


중남미에 살면서 운동을 전혀 안 했다. 학교 체육 수업 때 매일 운동장 뛰라고 하면 건성으로 뛰다가 체육 선생님이 볼 때만 뛰는 척하곤 했다. 그러니 하도 높아서 앞에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 화산을 몇 시간 등산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곳을 등산하면서 나를 좋아해 준 친구를 다시 보게 됐다. 정말 괜찮은 친구구나. 온몸을 땀으로 샤워를 하고 머리는 떡지고 몰골이 엉망이 되어도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날 좋아해 줘서 고마웠고 그의 마음을 받아줘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산 중간쯤 왔을까. 몇 시간을 등산했는데도 정상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지나쳐 먼저 올라간 친구들도 제법 많았다. 반대로 나는 등산하다가 멈춰 쉬는 횟수가 늘었다. 나도 그도 지칠 대로 지쳤다.


“나 먼저 가도 될까?”

결국 나중에는 그가 먼저 가겠다고 했다. 달리기도 잘하는 그가 지금까지 참은 것도 대단했다.


“응 당연하지 어서 가!”라고 웃으며 대답해줬다.


그는 대답을 듣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빠른 속도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혼자가 됐다.


그제야 눈에 안 들어오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렸다. 나를 좋아해 주는 것과 답답한 것은 별개였다. 그 당시 우리는 어렸다. 십 대. 좋아하는 풋풋한 감정 하나로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는 그런 나이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바보처럼 행동했다는 생각에 머리를 쥐어짰다. 그 친구가 답답해하는 걸 모르고 바보처럼 실실 쪼개기만 했으니 얼마나 못 생기게 보였을까. 속으로 먼저 가도 되냐고 물어볼 타이밍을 얼마나 많이 생각했을 까.


단순히 나를 좋아해 준다는 그 감정 하나 믿고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건 아닌지.


혼자가 되니 제일 먼저 나를 향한 그의 마음부터 흔들렸다.


‘정말 나를 좋아해 준다면 끝까지 함께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이기적인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분명 출발은 다 같이 했지만 어느 순간 나 혼자 그곳을 걸었다. 보통 산을 등산하면 정상이 보여서 어느 정도 걸으면 된다는 감이 오는데 그곳은 나무가 너무 커서 그런지 아님 화산이 심각하게 높고 가팔라서 그런지 정산이 안 보여 답답하기도 했다.


혼자 남으니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자칫 잘못하면 길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무조건 앞만 보고 걸었다. 중간에 납치범이 나타나서 나를 잡아가면 어떻게 하지 라는 두려움도 조금 더 속력을 내는데 한 몫했다.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이 안 났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었다.


정상 근처에 갔을 때는 거의 기었다.


헉헉거리며 정상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호수와 조화를 이룬 마을을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가슴이 뚫리는 듯했다. 사람들이 왜 힘들게 등산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정상에 오르자마자 제일 먼저 그를 찾았다. 주위를 보니 그는 나보다 훨씬 빨리 도착해서 쉬면서 편하게 김밥 먹고 있었다.


아무리 날 좋아해 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어도 결국 인생길은 스스로 걸어야 한다는 걸 어쩌면 이 날 알게 된 것 같다.

내 길을 남이 대신 걸어줄 수 없다. 상대방도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의 역량을 모두 끌어올려 걸어야 하는 그 길을 말이다.




목적지까지 함께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소중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함께 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길을 걸은 세월 수가 높아질수록 곁에 남는 사람의 수가 적어질수록 외로워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않기로 했다.

내가 걷는 길을 함께 걷는 건 의무도 아니고 당연한 것도 아니다.


내 곁에 누가 없어도 괜찮다.

그러나 이왕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으면 할 뿐이다.

그럼 각자 길을 걸어도 결국 함께 걷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 곁에 누가 없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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