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담희 Nov 18. 2019

스물아홉 생일, 모든 것이 시작된 날

수면 위로 드러나 버린 나의 인간관계


스물아홉 생일, 단 두 명한테 연락을 받았다.

나는 1월 6일이 달력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1월 6일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날이지만 가장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날이다. 핸드폰을 꺼놓고, 각종 SNS 생일 알림 기능을 꺼놓고 아무도 내 생일인 것을 모른 채 조용히 지나가고 싶다. 그날이 나의 날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으면. 차라리 그게 덜 아플 것 같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생일이 되면 전혀 새롭지 않은 전형적인 생일축하 문자 일지라도 뭐라도 주고받는 날이다. 그 속에 진심이 담겨있든 형식으로만 하는 말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우리가 초등학생 시절 때 자기 생일이라고 반 친구들 모두를 초대하는 그런 친구가 한 명씩 꼭 있었다. 그런 집에 가보면 치킨집과 피자집에 주문한 치킨과 피자 빼고 나머지는 친구 어머니가 떡볶이나 잡채나 탕수육 등 어린 친구들이 안 좋아할 리가 없는 메뉴로 직접 요리해서 상이 부러질 정도로 선보인 기억이 난다. 분명 음식이 남을 걸 알면서도 푸짐하게 생일상을 차리셨다. 어머니들끼리 경쟁심이 붙으신 건 아닌가 싶다가도, 단순히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할 리가 있을까 싶다.


나도 생일을 과하게 보내는 반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생일 초대장 하나하나에 친구 이름을 쓰고 내가 좋아하는 남자애한테는 특별히 작은 캐릭터도 그려서 따로 표시했다. 그렇게 당사자도 모르는 아주 소심한 초등학생다운 고백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애만큼은 꼭 와야 된다고 얼마나 속으로 신께 빌었는지 모른다.


내겐 생일은 다수의 사람에게 축하를 받으며 좋은 추억을 쌓는 그런 날이었다. 늘 북적거리며, 편지 시절에는 수많은 편지를, 문자 시절에는 수많은 문자를, 그리고 SNS 시절에는 수많은 알림을 받는 날이었다. 그랬었다.


올 초에 남동생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했었다. 한 주일가량 내가 좋아하는 제주도 바다를 보며 생일을 보낼 계획으로 갔었다.


생일 당일, 내 카톡은 오후가 되기까지 알림 하나 울리지 않았다.


그날 제주에서 맞은 겨울바람은 강했고 시렸다.


가고 싶던 카페에 앉아 제주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셨다. 생일이 별거 있나, 이제 나이 먹을 만큼 먹었으니 조용히 바다나 실컷 보고 가자며 애써 시선을 앞을 향하게 하려고 했다. 그 자리에서 조용히 글을 썼다.


생일 선물로 바다를 보며 인생 가치를 깨닫는 선물 받고 싶다고 적었었다.


그 카페가 유명한 이유는 노을 때문이었다. 해지는 시간이 되자 카페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노을을 찍기 위해서 핸드폰 화면을 열었어야 했는데 알림이 하나도 안 떠 있을 것 같아 그러고 싶지 않았다.


후에 친한 언니한테서 문자 하나가 왔다. 생일 잘 보내고 있냐고 생일 축하한다고 했다. 그리고 친한 친구한테도 문자가 왔다. 그 날 온종일 내가 받은 문자 두 개이기도 했다. 카톡 생일 알림에 나 안 떴냐고 슬쩍 그 친구한테 물어봤다. 알고 보니 내가 카톡 계정에 생일을 등록하지 않아서 알림이 안 떴다고 한다.


그날 구름이 가려져서 노을을 볼 수 없었다. 동생과 나는 근처 흙돼지 먹으러 움직였다. 흙돼지 먹으면서 해외에 사는 부모님께 보낼 인증샷을 찍기 위해 힘없이 쳐진 입꼬리를 최대한 올렸다. 밤에 호텔에서 부모님께 인증샷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그날 생각했다. 나는 왜 매년 달력을 사서 스티커를 붙여가며, 옆에 작은 케이크 그림까지 그려가며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한 지인들 생일을 따로 표시했을까. 수면 위로 드러난 나의 위태로운 인간관계를 마주했다.


처음으로 인간관계에 대해 곰곰하게 생각하게 됐다.





작가의 이전글 내 곁에 누가 없어도 괜찮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