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연인 아닌 너를 허락해다오
언제나 함께 밥을 먹던 식당에서 네가 없는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우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 순간 뜬금없이 먹이를 독차지하기 위해 거짓 경보를 한다던 어느 원숭이의 일화가 떠올랐고 사람은 왜 함께 밥을 먹을까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결도 없는 인연의 타래 속에서 사람은 언제나 서로 멀어지기도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연인을 잃는다는 것은 조금은 억울한 일이다. 한 때 사랑하는 연인이자 가까운 친구이며 편안한 가족이고 믿음직한 동료였던 그 모든 관계를 '연인'의 연이 사라지는 순간 곧잘 한꺼번에 잃게 되곤 하니까. 때로는, 그 모든 인연의 추억들도 함께 말이다.
순전히 지나간 인연에 대한 예의로 너의 흔적들을 지우면서도 나는 차마 너의 전화번호는 지우지 못한다. 우리가 함께했던 그 수많은 시간마저 한 번의 손짓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서다. 그러니 바라건대 부디 너는 내게 연인 아닌 너를 허락해다오. 내가 가장 사랑했던 너를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겠지만, 여전히 나는 연정 아닌 애정으로 아직도 너를 지독히 사랑하고 있으니.
그러니까 나는 우리가 때때로 생각나면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이이면 한다. 함께 가던 맛집에 새로운 연인과 함께 찾아가 즐겨먹던 메뉴를 주문할 수 있고, 오랜만에 친구들의 모임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그동안 잘 지냈느냐는 평범한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서로의 모든 기억들을 품고 가지는 않아도, 어느 낯선 삶의 한가운데서 우리가 서로 만나 서로가 있었기에 그 시간들은 조금 더 아름다웠음을 잊지는 않았으면 한다.
아마도 모든 연인들은 이런 헤어짐을 바라고, 또 제각자의 이유로 그럴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산다는 건 참 어려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