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팠다.
몸이 아팠다.
만성피로라고 생각했다.
'조금 쉬면 괜찮겠지'
한 달을 아무것도 안 했다.(출근은 했다.)
은둔형 외톨이 마냥 집에만 있었다.
계속 쉬는데 계속 피곤했다.
'좀 더 쉬어야 하나보다.'
스스로 이상함을 느낀 건 3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무기력에 무가치감이 더해졌다.
'40년 살아보니 별거 없는데
굳이 40년 더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저 사람들은 왜 살아갈 수 있을까?'
타인의 삶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성범죄자 관련 뉴스를 보며
그릇된 욕망에서 나오는 그 에너지마저
부럽다고 느꼈을 때
남미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죽기 전에 마지막 버킷이라고 생각했다.)
사직서를 내고
비행기티켓을 끊는 등 힘을 내 보았지만
여행준비는 진척이 없었다.
그냥 가지 말까? 아님 동남아 시골에서 그냥 쉬다 올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5개월쯤 되었을 때 주변인들이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우울증 약을 먹으라고 했다.
'난 우울하지 않아.'
정신과에서만 13년을 일한 간호사인데.
중이 제 머리를 깍지는 못하는 게 확실하다.
출근하는 길이 지옥 같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직장을 포기했다면
정말 큰일 낼 수도 있었겠구나 싶다.
퇴사 전 직장인 검진을 받았다.
운동부족으로 체중이 불었고.
간수치가 높게 나왔다.
재검을 받으면서 초음파도 찍었고
담석이 있었다. 아주 커다란 놈이.
처방된 간장약을 먹고
수술도 받고.
오래만에 바쁘게 움직였다.
움직이다 보니 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고.
하나씩 처리하기 시작했다.
여행계획도 다시 잡고.
여행시작 전 급하게 이사도 해야 해서 바쁘게
움직였다.
토레스델파이네 트레킹을 위해
등산도 다시 시작했다.
간이 좋아져서 피로감이 사라진 걸까?
아니면 몸을 움직이다 보니 우울감이 해소된 걸까?
늙었다고 여겨지던 40 나이가 갑자기 젊게 느껴졌다.
몸에 힘이 붙으니 어두운 미래가 전혀 두렵지 않다.
장그래에게 체력을 기르라던 스승님의 말씀이,
체력이 빠져보니 감사함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