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솔 May 30. 2022

우울증 일기 67. 회귀



눈을 떠보니 눈 앞에 있는건 초록색 칠판이었다. 나는 입가에 묻은 침을 소매에 슥슥 닦아냈다. 나는 소매를 보고 의아했다. 하얀 와이셔츠였다. 내가 앉아 있는 것은 책상이었다. 분명 나는 내 책상에 앉아서 넷플릭스를 보다가 잠들었는데? 그런데 눈앞에 있는 것은 교실의 칠판이고, 내가 있는 곳은 교실이었다. 나는 책상에 펼쳐져 있는 책들을 봤다. 국어 10 … 10이면 고등학교 1학년때 교과서에 적혀 있던 숫자였다. 그렇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내가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던 떄는 2022년.. 그러니까 난 2007년으로 돌아와 있었다.


당혹스러웠다. 2007년이라고?! 내가 내가, 2007년으로 돌아왔다고? 수업 시간 종이 울렸다. 다음 시간은 영어 시간이었다. 영어 교과서를 읽었다. 그때 봤던 것보다 이해하기는 쉬웠다. 당혹스럽긴 했지만 나는 착실하게도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가는 필기 내용을 교과서에 적어내려갔다.


점심시간이 됐다. 점심을 먹지 않은 채 나는 운동장 한켠에 있는 쉼터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20대 시절을 다 보내고 30대를 맞이하고 있는 이 와중에 고등학생으로 회귀했다?! 이런 웹소설 같은 일이!

나는 왜 이떄로 돌아온거지. 나의 우울증이 시작됐던 떄였다. 고등학교 3년을 보내고 대학교에 들어간 나는 죽음을 마음먹고 있었다.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다시 시작할 수 있는걸까? 난, 다시 시작할 수 있는걸까. 나에게 주어진 것은 기회였다.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였다. 지나가던 아이들이 날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는 얼른 눈가의 눈물을 훔치고 교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긴 한데 나는 뭘해야하는걸까?


여기서 학교에 의자에 앉아서 공부만 해야하는걸까? 나는 그렇게 친구도 없고 외롭고 쓸쓸해하는데? 공부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중학교떄 열심히 해놓은 습관이 있어서 설렁설렁 공부해도, 대학교는 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대충 공부하고 성적 맞는대로 들어가면 된다. 친구를 만들자. 살쪄서 친구들이 나를 안좋아할거 같다고? 그럼 살을 뺴자.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사람이 되자. 연예인을 싹 꿰고 드라마도 보고 .

일단 나는 학교 수업시간에는 최대한 집중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것 대신 아이들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처음 말을 걸 때는 무서웠다. 아이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떻게 하나 그런 걱정들이 몰려왔다. 나를 재밌어 했다. 나는그동안 갈고 닦은 너스레를 떨어댔다. 아이들은 원래 내가 이렇게 재밌는 애인줄 몰랐다며 신기해했다. 나는 주말에 친구들과 같이 시내에 놀러 나가기로 했다. 문제는 용돈이었다. 현실적으로 빠듯했다. 일단 엄마에게 사정을 말했다. 내가 이 상황에서 정말 외롭고 쓸쓸하고 친구가 없으니 한번만 도와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원을 갈 시간에 나는 알바를 할 생각을 했다. 그럼 주말에는 같이 놀 수 있을 것이다. 밥은 반공기씩만 먹고 집에 갈때는 걸어서 집에 갔다. 살이 쭉쭉 빠졌다. 아이들의 번호를 묻고 짤을 보냈다. 카톡방에 초대됐다. 방학 때 같이 바다에 놀러가기로 했다. 재밌었다. 영화도 봤다. 재밌었다. 공부하는 시간은 부족했지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이들과 어울렸다. 이것들이 다 나에게 경험이 되어줄 것이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은 사실 관심이 없다. 나는 사람들에게 속하고 싶었고 어울리고 싶었고 같이 지내고 싶었다.


웹소설에 회귀물이 유행이라서 한 번 회귀물 형식을 써봤다. 나는 악몽을 꿀 떄면 고등학교로 돌아간다. 이상하게 몇번이고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미처 다 끝내지 못하고 시험을 치는 상황을 몇 번이고 겪는다. 학점이 모자라서 고등학교 과정을 다시 재수강하는 꿈마저 꿨다. 고등학교의 기억은 나에게 있어서는 실패고 트라우마였나보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달라졌을지 상상해서 써보니까 느낀점은... 딱히 다를 거 없는 삶이겠구나 싶었다. 말이 애들이랑 놀러다니지, 인문계 고등학생이라면 공부를 했어야 하는 거다. 나는 과거로 돌아간다고 한들 똑같이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했을것 같았다. 과거의 내가 잘못된 줄 알았는데, 과거의 난 그래도최선의 선택을 했던것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 안에서.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나를 놓아주자. 넌 최선을 다했어.


작가의 이전글 우울증 일기 66. 노력한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