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움직이려면 기름이 필요하다.
사람의 육체가 살려면 물과 밥이 필요하다.
물과 밥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물과 밥만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물을 마시고 밥을 먹고 기본적인 신체 활동을 충분히 한다면, 몸의 기능에 문제가 없다면 잘 살 것이다. 걸을 수 있을 것이고 뛸 수 있을 것이다.
걷는데 필요한 에너지와 뛰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다를 것이다. 걷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1이라면 뛰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10일것이다. 10배가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많이 필요할 거란 소리다.
그런데 나는 움직임이 둔해졌다. 밥을 적게 먹었냐고? 아니 오히려 많이 먹었다. 신체적인 에너지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차고 넘치는 쪽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움직임이 느려졌다.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밖에 나가기도 싫었다. 햇빛을 쐬기도, 음악을 듣는 것도,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도, 노는 것도,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다 하기 싫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힘이 없었다. 왜일까? 나는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잠을 자는데 말이다. 뇌에는 충분한 산소가 공급되고 있을것이고 혈류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아, 호르몬. 호르몬이 있었구나. 현대 과학은 호르몬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사람이 느려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우울해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럼 신체적인 반응이 느려지고, 우울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에게 호르몬 작용을 도와줄 약을 투입하면 나아지겠구나.
그렇게 약을 먹은지도 수년이 흘렀다.
의사는 내게 건넨 약이 최대치라고 했다. 식욕억제제도, 불안을 잠재우는 약도 최대치 복용량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해서 폭식을 하고 구토를 한다. 잠을 제대로 못잔다. 밤이 되면 계속 슬프고 공허하다. 외로움이 밀려온다.
이렇다보니 나는 또 하나를 전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체말고도 다른게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구나!
그건 사람의 정신, 혹은 마음이라 불리는 그것이겠지.
그런데 정신이 뇌가 만들어내는 어떠한 작용이라면 약을 먹고 있는 나의 뇌는 제대로 작동하여서 더 이상 우울감을 느끼게 하지 않아야하고 불안하지 않아야하고, 적어도 일반인의 정상적인 마음 상태로 돌아와야 하는거 아닐까?
그래서 나는 사람의 마음이 뇌에 영향을 받지만 곧 일치한다고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뇌가 곧 정신이고 대뇌가 파괴되면 정신이 파괴된다는 것이 맞는 말일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대뇌 = 정신? 이게 맞냐는 게 나의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