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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솔 Jun 18. 2022

우울증 일기 70. 삶을 사랑하자

그동안 나는 삶을 비관해왔다. 

생각해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좋은 부모 밑에서 유복한 생활을 하고 싶고 좋은 친구들과 재밌게 놀고, 멋진 남자에게 사랑 받으며 좋아하거나 멋지다고 평가받는 일을 하는 삶을 꿈꿨다 (참고로 나는 예쁜 외모를 가져야했다) 그거였다.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너무 큰 이상향이었나? 살아보니 내가 바라던 삶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난 내 삶을 미워한 것 같다. 사실 누구나 다 문제를 갖고 있다. 문제 없는 사람이 어딨냐. 외모가 다 예쁘고 멋지겠냐. 성적이나 과업이 다 잘 되겠냐. 그런거 아니다. 그런 삶을 살면 행복하고 그렇지 않은 삶은 불행한가.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삶이 아니면 비하하고 모자란 삶이라고 생각이 든다. 불행한 삶이다. 아니,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든 살려고, 어떻게든 살고 싶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을 저주하고 미워하고 지금의 내 모습까지도 비관할 때가 많았다. 멋지지 않았다. 잘나지도 않았다. 별거 없었다. 지금하고 있는 일도 어떨 때는 “내가 할 줄 아는 건 이런거 밖에 없네.”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러면 급속도로 우울해진다. 


자기 삶을 사랑하지 못하면 우울증에 걸린다라는 법칙은 없다. 확률이 높아질 수는 있을지도. 어쨌거나 확실한 건 여지껏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자기 삶을 사랑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우울증 때문에 내가 내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인지, 내가 내 삶을 사랑하지 못해서 우울증에 걸린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현재 난 내 삶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반문해보자. 나와 같은 삶을 살았던 제 3자를 우연히 알게됐다고 하자. 나는 그 사람을 불쌍한 삶이라고 할 것인가. 불행한 사람이라고 할 것인가. 그 사람의 노력, 그 사람의 고민, 그 사람의 업적,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 이 모든 것들을 다 무시하며 그 사람의 삶이 가치 없다고 할 것인가. 제 3자에 대해서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말하지 못하면서, 그 어느 누구도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면서. 스스로에 대해서는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난 이제 더 이상 내 삶을 비관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걸어온 길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내가 설정한 이상적인 삶은 판타지였다는 사실을 꺠닫자. 물론 어떤 이는 그런 삶을 살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삶이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혼란스러워했던 나를 사랑한다. 가난한 형편에 돈을 아껴쓰려고 했던 나를 사랑한다. 중학교 때 혼자고군분투 하며 공부하고, 좋은 성적을 받았던 나의 모습을 사랑한다. 졸업식때 사진 하나 같이 찍을 사람 없던 내 모습도 사랑한다. 홀로 그 쓸쓸함을 이겨냈으니까. 방황하면서 몇 시간을 무작정 걸었던 내 모습도 사랑한다. 남들에게 사랑 받기 위해 싫은 소리 못하고 배려하며 자기 자신을 낮췄던 내 모습도 사랑하자. 내 나름의 전략이었다.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이 세상에 적응하려는 나를 사랑하자. 늘 열심히 했던 나를 사랑하자. 우걱우걱 음식을 입에 집어넣으며 밀려 오는 공허함과 우울감에서 도망치려 했던 나를 사랑하자.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우울했지만 꾸역꾸역 살아갔던 나를 사랑하자.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막연한 희망과 기대를 품으며 참아왔던 나를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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