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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Jul 01. 2022

우울증 일기 74.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의 사랑하는 여자가 사고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졌다. 사고를 당하고 의식을 잃는 순간이 클라이막스가 될 것이다. 결국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고 있는 동안 여자는 기적적으로 눈을 뜰 것이며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그래서,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면 해피엔딩인줄 알았지.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10년동안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보니 모든 것이 정리된 줄 알았는데 이제 시작이었다. 10여년 동안 내 생활은 엉망이었고 이제는 새로운 규칙이 필요했다. 과거 매일 같이 규칙적으로 학교를 다니며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집에 와서 학원 가고 갔다 와서, 학원 숙제했다. 공부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만의 노는 시간도 만들어서 만화나 드라마를 보며 혼자 놀았다. 그런 일을 매일 같이 반복했고 별다른 것 없던 삶이었는데도 난 만족했다. 잘 살았었다. 그 엄청난 통제력을 가지고 있던 내가, 최근까지…많이 먹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고 무기력하고 열정 없고 삶을 포기해버린 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충격이었다. 


정리를 해야 한다. 일단 과거에 나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현재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를 알아야 한다. 현재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다가 첫 번째 혼란스러움이다. 두 번째로는 그렇다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남겨야 할 내 모습은 무엇이고 버려야할 내 모습은 무엇인가. 중고등학교때는 선택지는 굉장히 좁았다. 그냥 5지선다였다. 답이 뭔지 알았다. 그냥 체크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주관식 서술형이고 너무나 많은 길이 있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심지어 문제 수도 많다. 아니 문제가 나왔는데 뭐라 적혀 있는지 읽을 수조차 없는 것도 있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첫 여름방학을 맞이한 기분이다. 뭘 해야할 지는 막상 모르겠는, 내 꿈은 무엇이었고 꿈이 중요한 것인지 돈벌이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상황. 무언가 열심히 하고 싶어서 성과를 만들고 싶은데, 그 방향을 모르겠는 상황. 


16실의 나는, 32살에 내가 글을 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글 쓰는 것이 밥을 제대로 벌어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잘 쓰는 사람이야 돈을 많이 벌겠지만 나는 잘쓴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단편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제대로 마무리 되지 않는 걸 보면서, 나는 글쓰는 재주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글은 취미일 뿐이다. 그러다 난 갑작스레 사고를 당해버렸고,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내가 한 일은 오직 글쓰는 일 뿐이었다. 그래서 남은 게 수두룩한 일기뿐이더라.


나는 이제 내가 가야할 길과 인생에 대한 목표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정해야한다. 누구를 만나고 어떤 사람들과 교류하고, 얼마나 교류할 것인지 등등 이제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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