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안 우울합니다만] 책을 발행한 날, 2022년 10월 25일
그러니까 이제 막 3년을 앞두고 있다.
이건 단순히 책을 낸 지 3년이 지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책을 낸 것 자체는, 나 스스로 '우울증에서 벗어났다'라고 선언하고, 이걸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알리며, '우울증은 나을 수 있다'라는 말을 내뱉는 행위다. 책으로 낸다는 건, 단순히 블로그 같은 사적 공간에 일기 쓰듯이 하는 게 아니라 대중에게 내 뜻을 표현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표현의 자유와 함께 말의 책임과 무게까지도 있다는 말이다.
그 글을 쓸 때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내 책이 서점에 걸려 있고 도서관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본 순간 그 무게를 깨달았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깊은 고려 없이 에세이 류의 책을 쓰는 건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급성 우울증이 아니라 만성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도 나처럼 나을 수 있다'라는 희망을 주고 싶었다. 희망을 주는 것의 무게 또한 무겁다는 걸. 그리고 섣부르게 희망을 주는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왜 의사 선생님들이 말을 조심하는지, 쉽게 위로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씁쓸하게도 그 깨달음은, 다시 한번 우울증 증상이 시작되면서 온 것이다.
차라리 책을 내지 말 걸.
나는 그렇게 후회하기도 했다.
내 모습이 우스웠다. 다시금 깊은 우울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서 눈물을 흘리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의사 선생님은 새로운 의사 선생님이었던지라 초반에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그리고 나에 대한 히스토리, 병력, 나의 상처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참고하시라고 책을 건넸다. 그분은 작가인 나에게 책을 직접 받아 영광이라면서 말했다. 그는 고마워했고 그게 나를 조금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난 내가 완치됐다고 생각한 이후로 한 번도 우울한 적 없다고.
우울증을 겪었던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고 힘차고 현재 제2의 인생을 살아간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기도 했다.
나도 인생 역전 스토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내가 제일 그렇게 쓰고 싶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환경. 단칸방 하나에서 네 식구가 모여서 살고 학원 갈 돈도 없고, 새벽 우유 배달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면서도 밤새 코피 쏟아가면서 공부한 덕분에 SKY 계열 대학에 가서 의사나 변호사 같은 'ㅡ사'자 붙은 전문 직업을 갖게 된 인생 역전 스토리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난 '인생 여전'에 가깝다. 내면이 조금 단단해지고,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더 이상 막연하게 슬픔이 찾아오지 않은 건 확실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렇게 평온한 감정 상태를 유지하는 거구나 그런 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편안한 상태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불안하거나 불편하지 않을 것이고 대인관계도 보다 자연스럽고 안정적이며,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어서 업무 성과나 전문성을 기르는 것에도 좋은 작용을 할 것이다.
대인관계가 좋은 사람, 직업적으로 유능한 사람이 되어가면서 자신의 삶의 만족도를 높일 가능성이 크겠지. 그런 면에서 나는 뒤처져 있었고, 한가하게 걸으면서 갈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빨리 달려서, 쉬지 않고 달려서, 보통사람들이 간 길을 조금이라도 뒤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조급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마인드세팅을 했다. '난 사회 초년생 시작을 아무런 빚 없이 시작하는 사람도 아니고, 골드 미스도 아니다. 밀린 학자금 대출이 있어서 월급을 받더라도 전부 저금하지 못하고 학자금 대출 빚을 갚는데 써야 하는, 그런 사회초년생이다'라고 여겼다. 내 나이 또래 여자를 볼 때, 대학을 바로 졸업하고 취업했다고 친다면 10년 정도를 일을 해왔을 것이다. 한 회사에 계속 오래 다녔다면 신입사원에서 주임이나 과장급으로 진급도 했을 터.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신입이었다.
지금 도전하는 직종에 대해서 공부를 7개월 가까이했고, 관련성이 조금 있는 직장에 다닌 지 1년 하고도 4개월이 지났다. 해당 직종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내가 되고 싶은 그 직군이라고 당당히 말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래서 의기소침해 있었다. 해당 직군으로 취업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았다.
'비전공자, 나이 많은 여자, 관련 경험 전무'
내가 채용 담당자라고 해도 거를 것 같았다. 그동안의 이력도 해당 직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력들. 면접관 입장에서는 아무 상관없는 알바나 다름없는 경력들이었다. 나도 그걸 잘 알기에, 점점 실망으로 번져갔다.
늦깎이 30대 중반의 여자가 새로운 걸 배우고, 새로운 직종으로 도전하는 데 성공할 수 없을까? 나는 그런 성공 스토리를 쓰고 싶었는데...
지원서를 100군데를 넣었는데 2군데에서 면접을 보라고 연락이 왔다.
한 곳에서는 전문 지식인을 뽑는 것 같아서 내가 들어가기엔 어려웠다.
나머지 다른 한 곳, 거기서 면접을 보는데 대표가 내 이력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어린데 왜 이렇게 이것저것 많이 했어요?"
부정적인 뜻이라기보다는, 어린 나이에 여러 가지 사회경험을 해봤다는 뜻으로 긍정적으로 말한 것이었다.
일단 지금 내 나이는 늘 '많다'라고만 들어왔고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더. 그래서 오히려 내가 되물었다.
"35살은 많은 나이 아니에요?"
"글쎄요. 그렇게 많은 나이 아니에요."
대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네요. 공부도 많이 하고 노력을 많이 하셨네."
"다른 것보다, 열정이 느껴져요. 이렇게 열정 있는 청년 만나는 것도 오래간만이네요."
대표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멍하니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면접을 보고 나오는 길에 그 말만 곱씹고 곱씹었다.
처음으로 나의 노력을, 내가 고군분투한 걸 의미 있게 봐준 사람이었다. (의사는 제외)
0에서 무언가를 어떻게든 쌓으려는 노력을,
나의 이력서라는 종이에서, 내가 회사 다니면서 딴 자격증에서,
업무 하면서도 만든 포트폴리오에서 내 노력을 알아봐 준 사람이었다.
뭉클했다. 조금 조급했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래, 더 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겠지.
그런 희망이 다시금 피어올랐다.
0에서 무언가를 쌓아 올리려는 노력.
무너졌던 삶을 재건하려는 나의 계획.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