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잠시 흔들렸던 일상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길들여진 아주 보통의 이런 하루 시작이 마음 한켠의 평화이다.
아침산책을 하고 9시, 주방 싱크대장 밑에 얹혀있는 과묵했던 라디오를 켠다. 김정원의 느긋한 목소리와 함께 느릿한 음악이 흐른다. 클래식을 좋아하기로 마음먹고 아침마다 듣는 방송인데 아직 곡이 귀에 쏙 담기진 않는다. 그래도 좋다. 2시간 동안 울퉁불퉁했던 마음도, 구겨졌던 생각도 말끔히 다려주는 나긋함이 있으니.
냉장고를 열어 며칠째 방치된 두부를 썰어 후루룩 데친 후 프라이팬에 부친다. 그 곁에 닭가슴 살도 하나 썰어 얌전히 뉘었다.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아침마다 단백질 강박이 생긴다. '오늘은 무엇으로 근육을 채울까?' 두부와 닭가슴살, 삶은 검은콩과 치즈까지 썰어 접시에 담으니 뿌듯하다.
썰은 상추와 양배추, 파프리카, 블루베리를 올리면 큰 접시에 한가득이다. 당근도 모둠 샐러드의 주연인데 미쳐 사놓지 못해 오늘은 불참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올리브오일과 발사믹을 두어 바퀴 돌려 마무리한다.
거실 창엔 가을 하늘이 지나고 있다. 바깥 풍경을 마주하고 천천히 아침을 먹는다.
빈접시에 남은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소스는 빵을 찍어먹어 없앤다.
다 먹고 나면 스님들 발우공양 후 무잔반처럼 깨끗해진 접시가 기름기를 거두고 해맑게 웃고 있다.
좋아하는 케냐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신 후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 먹는 두 끼 중 첫끼 브런치는 이처럼 모든 걸 때려 넣는 샐러드로 시작한다. 몸에 좋다는 재료가 많은데 챙겨 먹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린치는 운동 다녀와 5~6시쯤 밥을 먹는다.
이 하찮은 루틴이 퇴임 후에야 가능해졌다. 떡하나, 빵하나와 커피로 대신하던 아침에 비하면 왕후의 조찬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내 몸보다 무엇이 그리 중요했나?' 따질 일이다.
박진영처럼 100퍼센트 유기농에 도시락까지는 아니지만 늦게나마 나를 돌보는 소중한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