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101
(우선 이 글은 통역사와 한 번이라도 함께 일해본적이 있는 사람들, 직장에 통역사가 상주하는 경우, 통역사를 채용할 일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글임을 밝힌다.)
통역사: 통역할 자격을 가진 사람.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사전적 정의는 그러한데... 실제로 통역사는 무슨 일을 할까?
이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 전에 우선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사실 통역사라는 거대한 집합은 이분법으로 나뉠 수 있는 잣대가 여러 개 존재한다.
1. 동시통역이 가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2. 통대(즉 통번역대학원)를 나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3. 기업에 소속되어 근무 중인 통역사와 그렇지 않은, 즉 프리랜서인 사람.
4. 통역을 하는 사람과 번역을 하는 사람.
1번과 2번은 사실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면 통번역대학원에서 동시통역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통번역대학원은 언어 기반의 주간 대학원이다. 조금 특이한 점이라고 볼 수 있는 점은, 이 대학원을 가기 위해 n 수를 하는 사람들이 숱하게 많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영어 좀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시험에서 낙방한다. 한마디로 완벽에 가까운 바이링구얼이 통역/번역(이하 통번역) 스킬을 배우고자 한다면 도전해 볼 만한 곳이다.
국내에 다양한 통번역대학원이 있지만 업계에서는 한국외대, 이대, 중앙대, 서울외대 출신 정도가 자주 거론된다. 학교마다 커리큘럼과 운영방식이 상이하겠지만 공통점은 아마 모두 동시통역을 가르친다는 점일 것이다. 기본 석사 2년 과정에서 거의 3개 학기를 동시통역에 할애할 정도로 단기간에 습득하기 어려운 기술이다. 연사가 한 문장이든 1분이든 발언을 다 하고 나서 바로 통역을 시작하는 것이 순차통역이라고 한다면, 동시통역은 연사의 말을 1~2초 간격으로 바짝 쫓아가면서 통역이 이루어진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는 차치하고 일단 오랜 기간 동안 수련이 필요한 과정이기에 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통번역대학원을 나오지 않고 동시통역을 할 수 있다는 사람이 나온다면 1) 나도 그분을 수소문해 어떻게 가능한지 묻고 싶고 2) 순차 통역을 동시통역으로 잘못 알고 있거나 하는 이유일 거 같다.
3의 경우에서, 우선 한 기업에 소속되어 그 내부에서 벌어지는 회의 등을 통역하는 사람을 인하우스 통역사라고 부른다. 일반 직장인과 같지만 하는 업무가 조금 많이 고립되어 있고 분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기업에 소속되지 않고 누군가의 수주를 받아 통역을 지원하는 사람은 프리랜서인데, 보통 이러한 프리랜서는 여느 프리랜서처럼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에이전시를 통해서 수주를 받거나 개인적인 인맥으로 의뢰를 받는다.
4번의 경우 통역사는 통역을, 번역사는 번역을 주로 하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전자의 경우 번역도 같이 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 편이다. 후자가 통역을 병행하는 경우는 사실 잘 들어보지는 못했다.
여기까지 서론이 참 길었는데, 내가 다수의 기업에서 통역사로 근무해 본 결과 사람들이 주로 혼동하는 부분이 있어 언젠가 글로 정리하고 싶었다.
1. 통역과 번역이 다르지만 통역을 번역이라고 하고 번역을 통역이라고 할 때가 많다. 통역은 말로 하는 것으로 번역은 글로 하는 것이라 시간과 시기에서 그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2. 통역사는 찔러도 바로 통역이 나올 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통역사는 수련 기간 동안 정말 방대한 영역을 가장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법을 마스터한다. 결론적으로 통역사도 자료가 필요하다! 어떤 회의든 어떤 자리이든 그와 관련된 언제 어디서 왜라는 배경 설명과 회의에 쓰일 자료는 필수이다.
3. 통역사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통역을 지원받는 사람 입장에서 통역사가 해당 영역의 전문가도 아니고 당연히 자신보다 그 영역을 모를 거라고 생각해서 무시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어쩌면 그 통역사는 더 많은 분야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으며 그저 언어에 특화된 자기 역할을 잘하는 사람일 수 있다.
4. 통역사를 비서라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사실 어느 통역사든 임원을 지원하는 포지션이라면 다소 업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마치 의사한테 간호사 업무를 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지만 다만 자신의 업무가 아닌 것이다.
매년 통역사가 배출되고 있지만 사회에서 통역사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좀처럼 보이지 않고 인식되지 않는 것을 오히려 미덕으로 여기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직군. 지금 이 시각에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활동하는 모든 통역사들의 건투를 빌며, 통대를 준비하던 시절 큰 울림을 전한 뉴욕타임스 기고글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https://www.nytimes.com/2019/11/22/well/move/the-zen-of-weight-lifting.html?smid=nytcore-ios-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