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지함과 나의 열정도 견뎌낼 수 있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문제에 냉혹할 정도로 정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와 민족 이기주의의 천박한 시대적 헛소리를 자기의 발아래의 것으로 내려다보는 법을 익히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 어느 누구도 물어볼 용기가 없는 문제들을 선호하는 강건함 ; 금지된 것에 대한 용기 ; 미궁으로 향하는 예정된 운명.
일곱 가지 고독에 의한 한 가지 경험. 새로운 음악을 위한 새로운 귀. 가장 멀리 있는 것을 위한 새로운 눈. 이제껏 침묵하고 있던 진리들에 대한 새로운 양심. 그리고 위대한 양식의 경제성을 추구하려는 의지 : 그 힘과 열광을 흩어지지 않게 한데 모으려는 의지...... 자신에 대한 존경 : 자신에 대한 사랑 :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 자유......
자! 이런 자들만이 나의 독자이고, 나의 정당한 독자이며, 예정된 나의 독자이다 : 그 나머지는 뭐가 중요한가? ㅡ 그 나머지는 한갓 인간일 뿐인데. ㅡ 우리는 인간을 능가해야 한다. 힘과 영혼의 높이에 의해서 ㅡ 경멸에 의해서......
_ 안티크리스트 '서문' 중에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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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갓 인간, 인간을 능가하는 사람, 경멸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 자리를 떠날 수 있겠는가.
힘과 영혼의 높이에 의한 상승, 내려다볼 수 있어야 한다.
전환으로서의 조망권 확보, 거시적인 것은 희미하게 보인다. 먼 산의 윤곽, 지평선의 윤곽이 희미해지면서 오히려 경계를 드러내듯이, 오히려 그럴 때 전체의 형태를 조망할 수 있다.
가까이서는 너무 미시적이어서 전부를 볼 수 없다. 확대된 것에 오히려 묻힐 뿐. 멀리서 산에서 정상에서 전모를 볼 수 있을 뿐이다.
내려다볼 때 굽이치는 요동의 지형은 어디로 흐르는지를 알 수 있다.
인공위성이나 혹은 보이저호에서나 그때의 지구와 태양계는 얼마나 고독해 보이는가.
거리와 시선에 따라서 관점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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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형이상학 낭독회는 내 사정상(ㅎㅎㅋㅋ) 하루 쉬었다. 덩달아서 다경님과 연수님도 같이 낭독작파했다. 이건 내 생각이지만, 누가 사정상 쉰다고 말하면 괜히 안 아프던 몸도 따라서 아프거나 또는 어떤 일이 생긴 것 같아서 같이 쉬고 싶어 진다. 때로는 그것마저도 협력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같이 쉴 때는 오히려 편한 것인지도. 어떨 때는 낭독에 혹여 누군가 늦게 들어온다고 하면, 오히려 그때는 더 이야기를 자제하거나 말을 안 하고 책을 바로 낭독하게 된다. 늦게 들어온 이는 그만큼 안 읽은 분량이 많아지게 된다. 경험상 이렇게 안 읽은 부분을 혼자서 읽기를 채우기는 무리였다고 여긴다. 낭독으로 읽는 것과 혼자서 읽는 시간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말을 줄이고 책을 읽는 게 오히려 협력인 경우가 더 크다. 그것은 그 시간을 묵묵하게 연장하며 지키고 있다는 의미니까. 일장일단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다만 그럴 때 본래의 의도와 목적을 부여했던 의미가 더 크게 드러나는 것 같다. 계절이 바뀌고 신체는 다음 계절을 받아들이는 준비모드에 돌입한다.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벌써 성큼 다가와 있는 것 같다. 하얀 눈에 덮일 세상과 침잠을 몸은 기억한다. 기억을 끌어와서 몸은 미래의 계절을 사유하는 것이다.
니체의 원고에 있는 <안티크리스트>의 최종 표지. 니체가 지워버린 두 번째 줄에는 '모든 가치의 전도'라고 씌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