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장소의 변화 추이'에 대한 분포도 영상을 본 후에, 그리고 다시 웹상 유목 생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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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관계 맺기와 상관관계가 크다. 시간 사용에 대한 각 시대별 분포도 변화는 흥미롭다. 시간 사용에 대한 변화만 보아도 인간의 삶의 방식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물론 미국인의 시간 사용 변화이고 통계적인 기준이겠지만 말이다. 다만 내용 면에서는 우리나라와도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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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에서,
1930년대에서의 시간 사용은 공동체와 밀접하다. 이때는 대공황시대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경기가 호전되는 1920년 끝에 대공황이 찾아왔다. 그리고 1930년 끝 무렵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전반적으로 암흑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가족 중심과 학교와 교회 중심의 지역 공동체 사회였다고 보인다. 어려운 시기였을 것이다. 그때의 우리나라는 말하면 뭣하랴. 일제 강점기 때였으니까, 정말 어려운 시기였다. 어쨌든 우리나라도 마을 공동체 사회였다.
1930년대 사람들의 시간 사용에 따른 장소와 관계의 변화
가족 <- 학교 <- 친구 <- 이웃들 <- 교회 <- 외식과 여가 <- 대학 <- 동료들 <-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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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40~1950년대 에서의 시간 사용 변화 양상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독립하는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도시 외곽 개발을 통해 값싼 집값에 매력을 느낀 미국인이 대도시를 떠나 이사하면서 생긴 것이다." <나무위키 인용>
이때의 미국은 핵가족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외식문화가 부상하였다. 직장동료와 보낸 시간이 늘어났고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던 것인가 보다. 이때는 실리콘 밸리가 태동하던 시기였다.
세계사적으로는 독립과 혁명의 시대였다.
1940년대 사람들의 시간 사용에 따른 장소와 관계의 변화
가족 <- 친구 <- 학교 <- 이웃 <- 외식과 여가 <- 교회(종교) <- 동료들 <- 대학 <- 온라인
1950년대 사람들의 시간 사용에 따른 장소와 관계의 변화
친구 <- 가족 <- 학교 <- 외식과 여가 <- 이웃들 <- 동료들 <- 교회 <- 대학 <-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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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60~1970년대에서의 시간 사용 변화를 보면, 베이붐 시대이자, 경제의 태동 시기, 저항의 시대다.
"1960년대 초반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 참전 이전에 가장 잘 살던 시대였다"
미국은 잔디가 부의 상징이었다. 그러니 부자가 되면 잔디가 있는 집을 사고 잔디를 가꾸었다. 잔디 가꾸고 정원을 가꾸어야만 상류층이라고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가까운 공동체에서는 공동체가 행하는 것을 같이하지 않으면 감시가 들어간다. 이웃이지만 이웃은 잔디 상태를 가늠하며 교양을 측정했던 것이다. 여전히 현재에도 미국의 보편적 집은 잔디가 있는 형태가 많다고 보인다. 잔디 정원 형태의 변화가 별 저항 없이 계속되는 것은 미국 사회의 전통이 그렇게 자리 잡았다는 뜻일 것이다. 건축 구조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여전히 남자들은 마당의 잔디를 깎고 있는 것이니, 소일거리의 변화의 폭 역시 크지 않을 것이다.
'올리버 샘'에 의하면 미국 주택의 잔디는 '아메리칸드림'의 상징 같은 것이라고 한다. 부자인 것을 과시하는 상징으로서의 잔디인 것. 그러니 잔디가 노랗게 죽으면 체면이 손상된다. 너무 웃자란 잔디는 게으르거나 실력이 없는 것이 된다. 체면을 유지하려면 항상 잔디가 적당한 크기로 일정하게 잘린 상태로 있어야 하며 표면에 굴곡이 없어야 한다. 이러한 잔디문화가 미국에 전반적으로 퍼진 것이다. 그리고 잔디 가꾸기는 미국인의 일상이 되었다. 잔디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이웃들과 파티를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체면이 손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한 마디씩 다 할 텐데 그것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현재에서 보자면, 한편으로 과거의 시간 사용과 현재의 시간 사용의 외적인 분포도는 달라졌을지라도, 다른 한편으로 내적인 공동체 양상은 또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도시 주택과 지역 주택의 차이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나 공동체가 변화하는 주된 요인은 건축물 구조에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집의 형태는 변화하였어도 전통적인 방식을 완전히 폐기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김장을 담아 먹는다. 어쩌면 '김장 담그기'는 가정집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공동체 유산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잔디 가꾸기'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1960년대 사람들의 시간 사용에 따른 장소와 관계의 변화
친구 <- 가족 <- 학교 <- 외식과 여가 <- 동료들 <- 이웃들 <- 대학 <- 교회 <- 온라인
1970년대 사람들의 시간 사용에 따른 장소와 관계의 변화
친구 <- 가족 <- 외식과 여가 <- 동료들 <- 학교 <- 이웃들 <- 대학 <- 교회 <-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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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리고 외식과 여가로부터 비롯된 변화가 증폭한 시기는 1970~1980년대이다. 이를 기반으로 1980년대부터는 이웃 공동체보다는 친구와 동료들이 중요해졌다. 마을을 벗어난 세대가 많아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리콘밸리 신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때는 1940년 대의 증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과 도시산업 단지로의 이동에서는 친구와 동료가 우선순위일 수밖에 없다. 협업할 대상이 친구와 동료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대가 만들어 낸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여기에서 이웃은 너무 먼 존재일들일 수밖에 없다. 냉전시대였으나 1980년대는 경제는 호황이었고 문화적으로 성장한 시기다. 우리나라는 민주화 운동 시대였다.
1980년대 사람들의 시간 사용에 따른 장소와 관계의 변화
친구 <- 동료들 <- 외식과 여가 <- 가족 <- 학교 <- 대학 <- 이웃들 <- 교회 <-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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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990년대에는 마침내 인터넷이 등장한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의 시간 패턴은 1980년대와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세기말적 어떤 변화가 잠재적으로 태동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이때 외환위기도 겪었다. 인터넷 기반이 조성되었다.
1990년대 사람들의 시간 사용에 따른 장소와 관계의 변화
친구 <- 동료들 <- 외식과 여가 <- 가족 <- 학교 <- 대학 <- 이웃들 <- 교회 <-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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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우리나라는 2000년 대가 되면서 점차로 인터넷 기반이 광폭적으로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인터넷은 2005년에서 2010년 사이에 비약적 변화가 있었다. 인터넷 기반 Social Media(소셜 미디어)는 대인관계 중심의 사회에서 비대면 온라인 관계로 옮겨간다.
페이스북이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이 완성되었다. 비교적 다른 sns 보다는 페이스북은 기존의 대면관계성을 잠재적으로 포섭하고 있었고 비대면을 충족시켰다. 물론 주커버그의 처음 목적은 친구와 동료들을 위한 관계망 이어서, 자신을 인증하는 얼굴사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얼굴책이 모든 사람의 비대면 얼굴책이 된 것이다. 새로운 소셜 미디어가 기존의 가치인 가족, 이웃과 학교를 넘어서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외식과 여가(카페 문화 추가)는 한번 부상한 이래로 그 중심에서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생활을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사회에서 교회는 일부 특정 지역에서는 여전히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모든 시간을 장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동체 사회에 항상 붙어 있다. 어쨌든 종교는 일상의 한 부분이지 사람의 시간 사용의 우선순위가 될 수는 없다. 대학은 우선 시간 사용 순위로 점차 상승했으나 현재로 올수록 우선순위가 밀려났다. 대학 자체의 기능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직업의 통로로서의 대학 기능이 더 부각되고 있을 뿐이어서 시간 사용을 더 빼내가지 못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대학을 대체하는 지적 방식들이 다양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다변화와 수요를 기존 대학 기능이 충족하기에는 이미 한계를 넘어서 버렸다.
2000년대 사람들의 시간 사용에 따른 장소와 관계의 변화
친구 <- 동료들 <- 외식과 여가 <- 가족 <- 대학 <- 학교 <- 이웃들 <- 온라인 <- 교회
2010년, 사람들의 시간 사용에 따른 장소와 관계의 변화
친구 <- 온라인 <- 동료들 <- 외식과 여가 <- 가족 <- 대학 <- 학교 <- 교회 <-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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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 모든 시간 사용 방식을 빨아들인 것은 역시 온라인이다. 요즘은 어떤 방식으로든 온라인에 적을 두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앞으로의 세상은 또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시간이 모이는 곳에 사람의 관심도 있다. 시간의 추이를 보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지도. 사람은 어떤 시간을 따라 모여드는가. 시간을 그저 허비만 하려고 모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시간이 그 자신에게 유의미할 때 사람은 시간을 사용한다. 그러니 여기에는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동시에 공존한다. 동시에 공존하는 그 유의미성을 붙잡으려고 사람들은 거대한 조류에 합류한다.
기존의 체계들이 모두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다. 다만 그것은 그냥 명맥만 유지하게 된다. 온라인 안에서도 유의미한 변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의 SNS 사이에서도 유행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페이스북은 스레드에 비해서 구시대 유물이 되어버린 느낌이지만, 스레드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를 병행하면서 드는 생각은 이곳들도 익숙한 느낌과 낯선 느낌의 경계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SNS Nomad 생활도 고되기는 마찬가지다. 캠핑할 때 짐 풀었다 다시 쌀 때처럼, 설렘과 피곤이 왔다 갔다 할 때처럼, 이 웹상 유목 생활도 그렇다. 그럼에도 아마 우리는 생명 다 하는 날까지 유목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시대의 조류이니까. 재밌는 것과 세상 소식은 유목 세계에 다 있으니까.
온라인 없는 세상은 아마도 앞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얼굴을 직접 보지 않는 비대면 온라인은 코비드 19 사태 이후 줌을 통하여 간접 대면 온라인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무엇이든 알게 모르게 조금씩은 변화해 간다. 보여줄 것은 없지만, 보여 줄 것을 생산한 십여 년이 넘는 나의 페이스북 생활은 나에게 유의미했다고 생각한다. 페이스북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지만, 나에게 페이스북은 해방구였다. 글을 쓰면 기분이 좋아지고 무엇인가를 생산한 기쁨을 주었다. 아마도 인터넷은 나에게 그런 기쁨을 준 장소라고! 나는 늘 기억하게 될 것이다.
유목할 장소가 여러 곳이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정주할 생각 같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게 현대인의 본모습이 아니겠는가. 웹상에서의 유목민 생활도 이제 조금씩 안착되는 것일 거다. 집이 있으면 별장도 여러 군데 있어야 하고, 집보다는 별장에서가 더 편하면 별장들을 왔다 갔다 하며 생활하면 될 것이다. 때로는 그곳에서 또는 다른 곳에서 칩거를 하기도 할 것이다. 사람이 늘 보여주고만 살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꼬리는 길어지기 마련이다. 흔적은 축적되고 그 흔적에 책임지고 스스로 검증하도록 철학잭도 읽지만 유목 생활은 온전히 개인으로 소급된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 모두는 그러니 또 아슬아슬 곡예를 하는 시간들이기도 하다. 시간은 어느덧 이렇게 흘렀다. 페이스북이 낯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낯설어! 낯설어를 반복하다가 어느 사이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었다. 그것을 페이스북의 '과거의 오늘'을 상기할 때 더 실감 나게 느끼곤 한다. 평면이던 타임라인이 그때 두터운 심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토록 매끄러운 타임라인은 그토록 또 두꺼운 것이었다. 무수한 사람들의 기억을 보관하고 있는 페이스북의 심층. 단지 서버일 뿐일지라도 지금 나에게 타임라인의 그 매끄러움은 무지막지한 두께로 다가온다. 그러니 타임라임은 아마도 바다인가 보다.
이 영상은 뒤늦게 보았는데, 가록 할만하다 싶어서, 영상 캡처 한 후 글을 썼다. 캡처한 자료 사진을 보고, 검색도 하고 기억도 동원하며 글을 써봤는데, 시대의 변화를 간략하게 정돈한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캡처 영상은 각 연대별로 특정하게 무작위로 한 컷씩만 표본으로 잘랐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렇게 생각을 풀어보았다.
2022년, 사람들의 시간 사용에 따른 장소와 관계의 변화
온라인 <- 친구 <- 동료들 <- 가족 <- 외식과 여가 <- 학교 <- 이웃들 <- 교회 <- 대학
2024년 현재 사람들의 시간 사용에 따른 장소와 관계의 변화
온라인 <- 친구 <- 동료들 <- 외식과 여가 <- 가족 <- 학교 <- 교회 <- 이웃들 <- 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