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1> 9장/ 거짓말쟁이들에 관하여 - 앞부분, 그리고 8장 일부
기억력에 대한 이야기에 끼어들기에 나보다 더 적절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의 다른 능력은 어느 것이라 할 것 없이 모자라거나 남과 비슷하지만, 기억력만은 내가 유별나고 희귀한 경우여서, 그 점에서는 가히 이름을 얻고 명성을 떨칠만하다고 생각한다.
기억력 부족으로 내가 겪는 불편함이 적지 않은 것 말고도, 우리 지방에서는 누군가가 분별력이 없다는 말을 하려면 그 사람의 기억력이 형편없다고 말하는 까닭에, 내가 나 자신의 기억력 부족을 한탄하면 사람들은 나를 나무라며 못 믿겠다고 한다. 내가 나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기억력과 이해력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것이 나를 훨씬 더 불리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부당하다. 경험에 비춰 보면 오히려 빼어난 기억력이 한심한 판단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세상 무엇보다 친구 노릇을 제일 잘하는 나인데, 내 병을 자책하는 바로 그 말을 내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대단히 부당하다.
기억력이 없는 것을 가지고 그들은 내 마음가짐을 비난하며, 타고난 결점을 가지고 양심이 삐뚤어졌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 사람 이런 부탁, 저런 약속을 잊어버렸어"
"그 사람 자기 친구들을 전혀 기억 못 해. 그 사람 나를 위해 이 말하는 걸, 이 일 하는 걸, 이 말하지 말아야 할걸 전혀 생각 못 했어" 하고 그들은 말한다.
나는 확실히 쉽게 잊곤 한다. 그러나 친구가 맡긴 일을 소홀히 하다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가련한 내 처지를 받아 주어야지, 그걸 악의로 여겨서는, 더구나 내 기질과는 상극인 그런 악의로 여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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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로서는 좀 위안되는 것이 있다. 나의 그런 약점 덕에 쉽게 빠져들 수도 있었을 잘못, 즉 야심이라는 더 나쁜 결점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세상 일로 타협과 교섭을 맡게 된 자에게 기억력 부족은 견딜 수 없는 결점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내게 기억력이 희미해져 가는 정도만큼 다른 능력들을 일부러 더 강화해 놓았다.
기억력 덕분에 남들의 착상과 견해가 또렷이 생각났다면, 세상 사람들이 그러듯이, 나 자신의 정신과 판단력이 가진 힘을 써 볼 생각도 않은 채, 다른 사람의 자취를 따라가기만 하면서 내 정신과 판단력은 편히 쉬고 늘어지게 놔두었을 것이다.
기억력이 부족하다 보니 내가 하는 말은 더욱 짧아지는데, 기억의 창고는 생각의 창고보다 늘 물건이 더 많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 기억력이 좋았다면 내 친구 모두를 온갖 수다로 귀가 먹먹하게 만들어 놓았으리라. 이야깃거리를 다루고 써먹는 재주야 타고났으니, 무궁한 소재가 이 재주를 깨어나게 해 내 이야기에 신바람을 불어넣고 이리저리 사방으로 끌고 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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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기억을 더 잘한다는 것은 안된 일이다. 내 가까운 친구 몇몇을 보면 알 수 있다. 기억력 덕분에 무엇인가를 완전하고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으나, 그들은 정작 할 이야기는 너무 뒤쪽으로 돌려놓고 쓸모없는 잔가지들로 채운다.
좋은 이야기일 경우 그 좋은 점을 질식시키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기억력 좋은 그들의 행운을 우리가 저주하게 만들거나 판단력 나쁜 그들의 불운을 저주하게 만드니 말이다.
일단 말문이 터지면 끝내거나 도중에 자르기가 몹시 어렵다. 말의 힘을 알아보는 제일 좋은 방법은 얼마나 정확하고 분명하게 멈출 줄 아는지를 보는 것이다.
평소 요령 있게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야기를 멈추고는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다.
어디서 멈춰야 할지를 찾으면서도 한없이 객설을 늘어놓으며, 마치 기력이 쇠해 쓰러지는 사람처럼 질질 이야기에 끌려가는 것이다.
옛일의 기억은 남아 있지만 자기가 그 이야기를 몇 번 했는지는 기억 못 하는 노인들은 특히 위험하다.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어떤 영주의 입을 통해 몹시 지겨운 이야기로 바뀌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듣고 있는 사람 모두가 수십 번은 들은 이야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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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내가 위안을 느끼는 것은, 저 옛사람이 이야기했듯, 내가 받은 모욕을 실제보다 덜 기억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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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과 같이 몽테뉴의 말을 종합해 보면, 몽테뉴는 약간의 안면인식 장애, 즉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또한 몽테뉴는 수다스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다스러운 사람들이 판단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자기에게 바로바로 기억나는 것을 마구 말하느라 두서도 없고 말을 마무리하지도 못하여, 길게만 이야기하여 듣는 이가 질식하도록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반면 그 자신은 그런 기억력이 없어 말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이야깃거리를 다루는 구성 능력은 있어서 - (글을 쓴다는 의미일 것이다) - 그 자신을 이리저리 사방으로 끌고 다니지는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몽테뉴 자신이 말한 바를 종합하자면, 몽테뉴는 아주 약간의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었던 듯하다. 몽테뉴는 스스로 유쾌한 것이 좋지, 정념 상태에 머무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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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8장 '무위'편에서 탑을 3층을 서재로 꾸민 후, 몽테뉴 성에서 완전한 여가를 보낼 때, 온통 정념에 점령당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여가가 정신을 사방으로 흩트려, 고삐 풀린 말이 된 정신은 남을 위해 쓰이던 때보다 백배나 잡다한 상념거리를 제게 주어 내달리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정신에는 "굴레를 씌워 강제로 어떤 주제에 몰두하지 않으면 모호한 상상력의 벌판에서, 절도 없이, 여기저기로 마구 튄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렇게 동요할 때면 어리석은 생각이건 망상이건 정신이 못 만들어 내는 것이 없으니, "라고도 말하고 있다.
그리고 "확고한 목표가 없는 영혼은 길을 잃고 만다. 사람들이 말하듯 도처에 있다는 것은 아무 데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어찌나 많은 악몽과 환상적인 괴물들을 낳아 두서도 목적도 없이 이것저것 쌓아 올리던지, 나는 정신의 어리석음과 기이함을 내 마음대로 관찰하려고 그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정신 스스로 그것들을 부끄러워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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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는 이렇게 푸념하듯 말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몽테뉴가 그것을 발견했는지는 더 읽어 가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몽테뉴는 퇴직 후 완전한 여가를 보냈지만, 거기에는 그 자신이 할 일에 대한 구체적인 것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탑의 서재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일 것이다.
분명 모두 에세이지만, 8장의 글은 다른 장들의 글과는 성격이 다르다. 다른 장들은 역사적 사례들로 예시를 들어가며 그 자신이 생각하는 개념 및 도덕 관습들에 대해서 그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글들은 그 자신이 사전에 암기되어 있는 형태가 아니라면 서적들을 읽고 참고하여 써야 하는 글이다. 쓰는데 시간도 많이 걸린다.
반면에 8장과 같은 글은 단번에 써 내려가는 직관적 형태의 글이다. 여기서 몽테뉴는 직관적 글쓰기에 대해서 알았을 것이다. '시'처럼. 또한 직관적 글쓰기에 한가한 여가적 생활은 멍 때리는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몽테뉴가 애초에 목가적 생활에 대한 목적을 여기에 두지 않았다고 해도 몽테뉴는 그 자신을 기록하면서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8장과 다른 이외의 에세들은 몽테뉴에게 책상에 앉아서 글쓰기를 하는 데에 규칙적인 어느 정도의 시간을 부여해 주었을 것이다. 몽테뉴가 그 자신의 기억력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독서를 하지 않았을 리도 없고, 자신이 원하는 예화들을 찾기 위해서라도 그는 책을 읽어야 했을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시도해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다. 또한 수다가 싫으면 글로 표현하면 된다. 말로 하지 못한 것들을 글로 말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시대에서 보아도 '영주의 입을 통해 몹시 지겨운 이야기로 바뀌는 것을 본 적도 있다'라는 말은, 대놓고 하기에는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몽테뉴는 자기 글에 이렇게 써놓고 있다. 그 영주가 아마도 몽테뉴 글을 보았다면 몹시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이렇게 따지면 몽테뉴의 솔직한 글쓰기에서 보듯이 몽테뉴가 어느 정도의 직설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몽테뉴는 세인들이 자기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이 거슬렸고, 일정 부분은 인정하지만 또 다른 부분에서는 그 자신을 스스로 변론하고 있다. 글 안에서만은 몽테뉴 자신이 재판관이고 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 자신이 받은 모욕을 실제보다 덜 기억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몽테뉴는 '모멸감을 견디는 힘'으로서 이미 망각을 스스로 잘 터득한 것인지 모른다. 안 좋은 것은 빨리 잊어버리는 것. 그리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자기의 기억력 뒤로 숨어서 모른 척해버릴 수도 있다. 지키고 싶지 않은 약속 역시 기억력 뒤로 숨어 버릴 수도 있다. 그 자신이 만나서 좋은 관계만 그리고 지키고 싶은 약속만 기억하는 선별 기억 방법도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몽테뉴는 이러한 것에 대해서 아니라고 그 자신을 변론하니, 나는 요즘 식으로 말하는 아주 소량의 '아스퍼거'증후군이 살짝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