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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체사유 2

신체에서 신체로 잇는 삶의 전수

그리운 것은 다 내 안에 있는 것들...

by 아란도


이번 김장을 담그며 드는 생각

왼쪽 목 부위가 불편해서

김장 담기 힘드네, 그러다 문득 우리 엄마는 김장을 담그고 싶어도 이제 못 담네! 자기 몸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시던 분이 이것저것에서 다 손 놓고 집안에서만 사네, 이번 김장을 담그며 드는 생각은 인간의 신체 움직임이란 무엇인가?이었다.


사람은 늙거나 신체가 노쇠해지면 그 자신이 평생 몸에 익은 일마저 못하게 된다. 무엇 때문에 평생 움직이며 살았나, 다 먹고살려고 그랬지, 움직여야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평생 몸에 익힌 것들이 다 무용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모든 것을 응축한 신체를 떠나야 하는 순간도 온다.


무엇이 더 허무한가? 평생 익힌 것을 사용할 수 없는 그 순간이 허무한가? 이미 무용해진 신체를 떠나는 그 순간이 허무한가?

사람은 신체로 익힌 재능은 가지고 떠날 수 없다. 신체는 땅으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는 그 순간에 의해 신체를 삶에 적합하게 연마하는 일 역시 사는 순간만을 위해서이다.

아무리 좋은 재능이라도 그 신체와 함께 이별해야 하는 것이다.

사는 동안 움직일 수 있고 타깃에 맞게 해낼 수 있는 신체능력은 사는 동안을 위한 것이다. 생존하기 위해서다.


나는 지금 차를 우리고 있다. 이것도 내가 사는 동안이겠지. 그러니 더 한 잔의 차가 소중하게 다가온다.

엄마와 통화하면서

"감기 안 들게 조심하고... 힘들겠네" 하시니,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고,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엄마는 김장 담고 싶어도 이제 못 담그잖아. 나는 담을 수 있으니 힘들다 생각 말고 감사하게 생각하자!, 그러니 기분이 나아졌어. 어깨 쑤심이야 김장하고 나서 쉬면 되지 뭐"

"우리 딸 착하네..."

"데헷~"


이렇게 마무리했다. 엄마한테 착하다는 말 듣는 것은 암만 생각해도 반반이다. 항상 그 말에 낚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엄마의 생을 김장을 통해 되돌아보며 그 움직임의 생에 대해 애도해 보는 시간이었다. 내가 그러자고 의식적으로 마음먹어서가 아니라 그냥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장배추 절여서 제시간에 뒤적이고 다시 시간 맞춰 절임배추를 씻고 하는 것에서부터 김장에 필요한 재료들과 일의 순서를 맞춰하는 일은 나 혼자 명상하듯이 나만의 침묵 속에서 진행되었다. 귀로는 계속 음악이며 영상이며 방송을 듣지만, 내 안은 침묵 상태에서 김장배추 담는 일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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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비치는 것들을 씁니다. 글쓰기에 진심입니다. 이제 봄이고 오늘은 비가 오고 차를 한 잔 마시고 내 안에서 꿈툴대는 언어들을 옮깁니다. 좋은 날이 그대와 나에게도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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