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영혼과 우주
#한_가지_드는_의문은 인간은 진화적 개체인데, 지구 진화 역사에서 보자면, 공룡 시대나 구석기 이전 시대에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여도 그때는 인간 종이 출현하기 전이고, 또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기 전에는 사람이란 것 자체가 없으니 다 동물로 밖에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
인간은 아주 작은 포유류에서 진화하면서 갈라져 나온 종이고 보면,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이야기는 교배 관점에서 보아도 종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이고 만약 인간 의식이 불교에서 말하는 '재생연결'될 때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나무로 태어날 수 있을까?
인간 종이 출현한 이후에는, 태어날 선택지가 인간 종이 포함되었으니 선택지가 더 넓어졌다고 본다면, 앞으로 인간 종의 변화(진화)에 따라서 더 선택의 폭은 넓어진 거라고 보이는데, 다만 변화된 종의 그 숫자가 소수라면 경쟁률은 치열해진 것이다.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경쟁률은 치열해진 셈.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의식체계를 가진 인간 종으로의 재생연결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영혼의 세계도 요즘 현실과 다르지 않다. 영혼의 경쟁력은 더 고차원적 세계를 지향하므로,
인간이란 종 그 자체의 하드웨어 기능이 우수해야 한다. 그 안의 소프트웨어가 그 모든 기능에서 받아들인 것을 해독하고 해석해야 하니까 말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인간은 신적 세계로 근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육체의 진화와 더불어 소프트웨어(뇌) 진화도 촉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인간 종의 진화는 그 사회의 분위기와 환경에 표준을 맞출 수밖에 없다고 보인다. 사람의 기능은 그대로인데 과거의 한국인과 현재의 한국인의 신체 하드웨어는 많이 달라져 있는 것처럼.
인간 종의 진화는 이미 한 세대에서 미래 세대의 질을 결정하는 것 같다. 미리 환경에 대한 진단이 내려진 것과 같은데 정작 본인들은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신체가 앞서 내린 미래 형태를 사람은 모른다. 그것은 데이터 분석이 신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그렇게 결정하기 때문인 것이라고 보인다. 그런데 인간은 그것이 자신의 의지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인간은 그저 우주 안의 무수한 별처럼, 하나의 조약돌이자 먼지다. 즉 역할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잘 의식하지 못하면서 산다.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자기 의지대로 산다고 생각한다. 일면은 맞는 말이다. 인간 종의 역할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자주 우리가 의식하고 살겠는가? 그러면 피곤해서 못 살 것이다. 다만 아주 간혹 틈 사이로 빛을 보듯이 그런 실재를 문득 우연하게 조우할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에서와 지구 안에서의 시간에 대한 개념을 달리해야 하듯이, 지구 안에서 사는 인간은 지구 안의 룰(지구 안의 생태 환경)에 맞춰 번화하는 존재일 뿐이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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