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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름 Jun 17. 2017

안녕하십니까. 오늘 하루도 잘 부탁드립니다

일본 유니클로에서의 2년 2개월



그렇게 시작된 나의 유학 생활.

워킹홀리데이로 니가타에서 보낸 3개월의 시간. 일본어가 들리기 시작할 때,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일본어를 잊고 살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괴로웠다.

잡을 수 없는 꿈 같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 땐 매일 매일을 꾸역꾸역 살아가는게 힘들었던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다시 오사카로 가기까지 걸렸던 2년이란 긴 시간을 난 다시 그 지옥 속에서 죽은 듯이 살았다.

우연처럼 나에게 유학이란 목표가 생기기 전까진.

죽을 용기가 없어 죽지 못하는 삶.

그럼에도 미련할만큼 살고싶다는 강렬한 욕구.

그런 모순적인 감정이 뒤섞여 매일 살아야했던 2년.




평범하게만 살고싶었던 삶이 10년이 넘도록 날 괴롭혔다.

난 왜 항상 이렇게 우울해야할까.

왜 내 인생은 늘 구질구질할까. 매일 일요일 밤마다 난 내일이 오는 것에 절망하여 울었다. 그런 내가 오사카에 가겠다는 목표가 생기며 매일을 쉴 틈 없이 일을 하며 살았다. 그런데도 점점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떠난 유학. 결코 순탄치 않았지만 그래도 매일이 즐거웠다.



YMCA국제전문학교





난 이 학교의 일본어과를 등록했고 학비는 단 3개월치만 납부를 하고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오사카 생활은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아르바이트로 매일매일이 바빴다. 처음 갔을 땐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등록하는 법도 몰라 허둥지둥했고, 등록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걸 몰라서 계속 연락이 오지 않는다며 마냥 기다리기도했다. 그러다 비와코(호수)의 크루즈에서 사진을 찍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소개 받았고, 비와코까지는 집에서 약 한 시간 정도의 거리가 있었기에 주말에도 난 늦잠을 자지 못하고 매일 교토로 출근을 해야했다.



비와코가 있던 오츠역.



이 곳에서도 역시나 외국인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하루는 남자 상사 분이 나에게 뭐라고 하셨는데 내가 일본어가 서툴러 잘 알아 듣지 못하니 혀를 차며 저리로 가라며 살짝 날 밀쳤다. 너무 서러웠지만 울지 않고, 죄송하다는 말을 하곤 밖으로 나왔다.

비와코의 크루즈에서 하는 일은 승선 전에 기념 사진을 찍어주고 인화해서 손님들을 찾아서 사진을 보여주고 판매하는 일이었다.




골든 위크 때의 단기 알바로 시작했기 때문에 골든 위크 내내 늘 손님이 많았고 쿠르즈에 약 3,400명의 손님들이 승선했다. 그 속에서 손님들을 찾아내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몇 주를 비와코 아르바이트를 하며 주말엔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야만 했다.

교토까진 너무 멀었기에,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검색을 했다.



내가 지원할 아르바이트의 조건은

1. 일하는 직원이 많은 곳

2. 학생 혹은 젊은 연령층의 직원이 많은 곳

3. 난바, 우메다와 같은 번화가

4. 외국인 근무자가 있는 곳



이렇게 네 가지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번화가 일수록 손님이 많기에 일본어를 할 기회가 많고 외국인 근무자가 있는 곳은 외국인 채용에 편견이 없다는 점, 그리고 젊은 연령층이 있는 곳은 확실히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단 이유였다.

그렇게 나는 검색을 했고 내 눈을 멈추게 한



UNIQLO(ユニクロ)



유니클로였다.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시급도 꽤 높았고, 무엇보다 난바, 신사이바시, 우메다에 모두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난바의 난바씨티점과 우메다의 다이마루(백화점)점, 요도바시카메라점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세 곳 모두 합격했다.



면접은 어려웠지만, 오사카에 온 지 한 달 밖에 안된 내가 일본어를 꽤나 능숙하게 하는 것에 모두 놀라했다. 다이마루 면접을 먼저 봤고, 그 다음 날 요도바시카메라점과 난바씨티점 면접을 같은 날에 보았다.

요도바시카메라 면접을 마치고 난바씨티점에 가니 긴 머리의 여자 분이 계셔서 면접 때문에 왔다고하니 반갑게 맞아주며 기다리라고 하셨다.

(아직도 기억하는 내가 좋아하는 사카모토상)

그렇게 기다리고 면접 시간이 다가왔고, 안내를 받아 휴게실에 있는 점장실로 들어가게 됐다.




이지마 점장님.



해외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점장님이었고, 유니클로에서도 꽤 등급이 높은 점장님이셨다.

면접이 시작됐고, 이지마 점장님은 형식적인 질문보다는 조금 더 개인적인 질문을 많이 해주셨던 것 같다.

일본어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유니클로는 정말 힘들어서 일본 애들도 그만두는 곳인데 잘 견뎌낼 수 있는지와 같은. 나는 이지마 점장님의 질문에 소신껏 대답했고 갑자기 점장님이 나에게 기다리라고 하더니 밖으로 나가셨다.

1,2분이 흐른 뒤 점장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朴さん。採用します(박상, 채용하겠습니다)



이례적으로 바로 채용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やった!!!!(앗싸!) 라고 외쳤고, 다들 나와 친해진 대행자 분들이 훗날 이 얘기를 계속 하셨을만큼 꽤나 큰 목소리로 좋아했다.

그렇게 나는 채용되었고, 며칠 뒤에 있을 신입 연수에 가게 되었다.






유니클로 채용과 동시에 나는 비와코의 토노이케상에게 전화를 해서, 이젠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그 주를 마지막으로 나는 비와코와 헤어졌다.









이 날의 비와코 근무를 마지막으로 나는 유니클로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나의 유학 생활 2년 2개월을 함께한 유니클로 생활이.







おはようございます。
本日も1日よろ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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