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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름 Oct 09. 2018

돌아가는 길에 매일을 울었다.

유니클로에서의 3개월.


그렇게 나는 유니클로 난바 씨티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 이틀 동안 연수를 받았지만, 일본으로 진행되는 연수를 전부 다 이해할리 없었다.

게다가 오사카는 우리나라 부산과 같은 지역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투리를 사용한다.

외국인인 나에게는그냥 일본어 자체도 어려운데 사투리라니.

다시 오사카로 돌아갔을 때, 기본 적으로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것들은 대부분 무리없이 전달할 수 있는 상태였고따로 공부를 하지 않고 일본어능력시험 1급을 고득점으로 합격할 수 있을 정도로 일본어는 안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오사카벤(오사카 사투리)은 또다른 언어처럼 나에게 느껴졌고,

특히 일본의 예능 프로그램에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오사카벤은 너무나 큰 벽이었다.


동기들, 선배들이 외국인인 나에게 다정하게 먼저 이야기를 걸어줄 때가 많았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느려서 이야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특히 억양이 굉장히 쎈 오사카벤은 조금만 혼이 나도 너무나도 날 주눅들게 만들었다.



유니클로에서의 일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특히 일본에서도 서비스 레벨에서 굉장히 좋다는 이미지를 가진 기업이기 때문에, 선배들의 교육이 정말 엄격했다. 무엇보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 말투, 표정을 굉장히 많이 지적 받았는데 그게 외국인인 나라고 해서 특별히 이해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중, 상사 중 한 분이 굉장히 날 싫어하셨다.

남자 상사분이셨는데 원래부터 외국인에게 편견을 갖고 계셨던 분이었다.

내가 하는 인사는 대부분 무시하는 일관스러운 태도를 보이셨고,

하루는 내가 마이크 방송을 하는데 나에게 다가와

"미안한데, 연습 좀 하고 읽을래? 손님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를 것 같아."

라고 하셨다.



마이크 방송 전, 나는 사실 나의 일본어가 걱정되었기에 선배들에게도 몇 번이나 확인을 받았고 혼자서도 몇 십번을 집에서 연습을 했었다.

그런 노력이 산산 조각난 기분이 들었다. 치욕스러웠고 울고 싶었다.

아마 워킹홀리데이 스물 둘,셋의 나였다면 아무 말도 못하고 또 눈물만 뚝뚝 흘렸겠지.

하지만, 시간은 알게 모르게 날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죄송합니다. 제 나름대로 연습을 많이 했는데. 집에 가서 다시 연습하겠습니다."

라고 웃으며 대답을 했다.



그런 나의 태도에도 그 분은 끝까지 좋지 않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계셨다.



유니클로에 입사 후, 2개월 쯤 지났을 때 나는 체중이 6킬로가 넘게 빠져있었다.

매일 집에 가서 학교 숙제, 그리고 유니클로의 매뉴얼을 외우기 바빴고

더불어 오사카벤과 경어 공부를 같이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항상 울었고, 집에 가서는 헛구역질을 참아내며 공부를 했다.



유니클로 알바를 하며 나의 하루는

6시 30분부터 시작되었다.


6:30 기상

8:30 학교 도착 (자습)

9:00-15:00 수업

16:30-22:15 유니클로

23:00 집 도착


그 후, 씻고 집안 일을 하고 도시락을 만들고 청소를 하면 대부분 새벽 2시가 되어 잠에 들 수 있었다.


매일매일이 지치고 힘들었다.

하지만, 그토록 원했던 일본어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


학교에서도 어느새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생겼고,

유니클로에서도 이야기를 하게 되는 사람들이 늘었고,

나를 조금씩 인정해주는 선배들이 생겨난 것.



그런 것들이 날 버티게 해주었다.



그리고 장학금을 받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내년에 있을 스피치 대회 준비.


나에게는 지쳐서는 안될 목표가 생겼다.

그렇게 방학이 되기 전까지 매일을 버텼다.

방학이 되며 나는 또 하나의 일을 하게 되었다.

방학이 되면 조금은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생활비는 매일 부족했고,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리고 싶었고,

매달 내야하는 학비도 큰 스트레스였다.

유니클로의 급여만으로는 아무리 절약을 해도 생활이 벅찼다.

그래서 나는 유학 비자임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일을 하기로 했다.




두번째 내가 선택한 일은 번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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