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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름 Mar 14. 2020

나는 우리가 만난 그 날을

첫 데이트라고 말할래


한국을 다녀오니 나는 스물 일곱이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유니클로에 가려고하니 어째서인지 조금 긴장이 되었다. 오랜 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하는 첫 등굣길 같은 묘한 긴장감과 설레임을 느끼며 유니클로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나를 반겨준 건 그였다.

데님 셔츠 위에, 흰색 스웨드 셔츠를 입고 셀비지진을 입은 그.


하필이면 이 긴장되는 순간에 그가 있을 줄이야.


한껏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억누르며, 조금은 어색해진 탓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는 존댓말로


“おはようございます(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니, 그가 나를 보며 웃어준다.

그리고는

“お帰り(잘 다녀왔어. 어서와.)” 라고 인사를 해준다.


근사한 웃음과 함께.


쌍꺼풀이 없이 눈꼬리가 올라간 탓에 웃지 않으면, 말을 건네기가 망설여졌던 사람인데.

이제는 눈이 마주치면 웃음부터 나오는 사람.


또다시 긴장한 탓에, 서둘러 그를 지나쳐 명찰을 하고 매장으로 돌아갔다.

그 날은 피팅룸 업무였는데, 자꾸만 그가 피팅룸에 와서 나에게 장난을 친다.

피팅룸이 매장 가운데에 있어서 그가 멀리서부터 나를 향해 걸어오는 순간,


그의 발 한 걸음마다, 심장이 두근 두근 하고 속도를 낸다,


말수가 적은 그가, 나에게 다가와 시덥잖은 장난을 치고 별 것 아닌 이야기를 건네고 돌아서 갈 때면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벅차오르는 행복감을 억눌렀다.


퇴근 길, 함께 역까지 걸어가다 인사를 나누고 지하철을 타서 바로 그에게 연락을 했다.


"우리 언제 만날까?"

라고.


우리가 만난 그 날은 아직도 잊지 못할 1월 6일.


그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다영이와 함께 옷을 사러 우메다로 갔었던 것이 기억난다.

아마, 그의 취향은 아니었을 굉장히 여성스러운 치마와 니트를 입었다.


그리고 약속 장소였던 신사이바시의 다이마루에서 그를 기다렸다.


수업이 끝났지만, 이력서 제출 때문에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을 나도 학교 수업 중에서 받았기 때문에, 학교가 끝난 후 교실에 남아 숙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숙제를 하면서도 늘어난 그 기다림의 시간이 나를 더욱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가 왔다.


"お疲れ(수고했어)"

라고.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 내가 그 당시 좋아했던 아메리칸 어패럴에 가러 아메무라로 향했다.

아메무라로 가면서 그와 학교 얘기를 하고, 아르바이트 얘기를 하며 걸었다.

아메리카 어패럴을 둘러보다 그 곳에 마침 그의 친구가 일을 한다기에 인사를 했다.

어쩌면 별 의미 없을 그 인사가 나는 참 좋았다.


저녁은 그가 데려가 준 작은 이탈리안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뭐 먹을래 라고 묻는 그의 말에 나는 일본어 메뉴가 제일 어려워. 라고 했고

그가 하나하나 메뉴를 보며 설명을 해주며, 다름이가 먹고싶은 걸로 먹자 라고 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피클과, 피자와 파스타를 시켰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맥주를, 나는 진저에일을.


그 작은 가게에 우리 둘 뿐이라, 더 특별한 저녁 식사처럼 느껴지면서도 긴장이 풀렸다.


그 곳에서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왔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한층 더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원래는 정말 잘 먹는 나인데도, 긴장한 탓에 음식이 잘 먹히질 않았다.

결국 파스타를 남겼는데 그가 갑자기 자신의 앞으로 내 접시를 가져가며 "내가 먹을게." 먹기 시작했다.

내가 먹던 파스타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그가, 

제법 마른 몸을 하고도 너무나도 잘 먹는 그가 나는 정말 좋았다.


밥을 다 먹고 난바역으로 걸어가며 

"오늘은 플랫 슈즈네?" 라던 그.


"나 의외로 키가 커서 낮은 신발 밖에 안 신어. 

사람들이 자꾸 이미지만 보고 158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나 생각보다 키가 커"


라고 하니,

"165정도 되지 않아?" 라며 나의 키를 맞추던 그.


술은 그가 마셨는데, 내가 취한 듯 

"아, 지금 너무 행복해. 너무 좋다." 라고 속마음을 다 내뱉고마는 나.

스물 여섯이나하고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웃음을 감출 줄도 모르고

좋아하는만큼 티내기 바빴던 나는, 어쩌면 매력적일지도 어쩌면 시시한 여자였을지도 모른다.


그가 미도스지선 앞까지 나를 배웅해줬고, 지하철을 타니 처음으로 그에게서 먼저 라인이 와 있었다.


"오늘 즐거웠어! 다음에는 혼마치에 카레 먹으러 가자!"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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