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름 Aug 09. 2016

말 수가 적고 요상한 파마머리를 한 남자

너와 나는 만났다, 그 겨울에


내가 일했던 곳은 스키장이었고 각자 맡은 담당이 있는데 나는 1층 레스토랑에서 메인으로 일했고, 날 괴롭혔던 언니 중 한 명은 2층 레스토랑에서 일했고, 또 다른 언니 한 명은 매점에서 일을 했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언니는 층은 달라도 거의 같은 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언니와 출근 일이 겹치는 날이면 하루종일 식욕이 없고 긴장감에 일을 하기가 두려웠다.

내가 사람들과 사이 좋게 웃고 장난을 치거나하면 언니는 늘 불편한 시선으로 날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무렵부턴 이미 나를 향한 언니들의 미움과 괴롭힘을 일본 친구들도 눈치채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그 중, 유독 사이가 좋은 남자 친구가 있었다.

한국에 관심이 많고 나와 취미가 곧잘 맞아 자주 메일을 주고 받았던 M.

그는 나를 알기 전에 나이가 동갑이었던 매점에서 근무했던 언니와 친했었고, 난 한국 언니의 소개로 그와 알게 되었다.

M은 리프트 담당이어서 다른 남자친구들을 우리에게

소개해주었고 생각보다 굉장히 빨리 가까워지고 항상

함께 지냈다.

스노우보드를 타본 적이 없는 나에게 스노우보드를 하나하나 모두 알려주고, 일본어가 서툰 나에게 일본어를 알려주고, 모두가 여동생처럼 날 잘 챙겨주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조용하고 말 수가 적어서 늘 내 시선을 머물게 한 그.

그는 늘 구석에서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조용히 웃거나 혼자 술을 마셨다. 처음에는 내가 일본어를 못해서 날 피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해서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난 요상한 파마 머리를 하고 혼자 술을 마시는 그가 못견디게 궁금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물었다.


"スノーボードえてもらえますか?"

(스노우 보드 알려줄 수 있어요?)


라고.



그는 의외라는 듯 나를 보곤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いいよ。明日行こうか"

(좋아. 내일 갈까)


흔쾌히 가자고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너무나 흔쾌히도 수락한 그에게 내가 더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밤이 늦도록 술을 마시며 서툰 나의 일본어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나의 서툰 말에 조급해하지 않으며 나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俺には敬語使わなくていいよ"

(나한텐 존댓말 안해도 돼)


라고 말해주었다.

그 때까지만해도 일본어가 어려워서 경어밖에 할 줄 몰랐던 나였기 때문에 반말을 잘 못한다고하자, 그럼 본인에게  반말하면서 연습하자고 말해주었다.


나보다 여섯살이나 많았던 그는 내가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呼び捨て(요비스떼: 이름 뒤에 존칭을 쓰지 않고 이름만 부르는 것)를 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방으로 돌아와서도 잠들때까지 메일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에게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おはよう!めっちゃ天いいよ!滑りに行こうか!"

(안녕! 낡씨 엄청 좋아! 보드 타러 갈까!)



막상 가려고하니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떤 얼굴로 인사를 해야할지, 모든 것이 다 걱정되어 그와의 약속이 망설여졌다.



하지만 그와 가까워진 그 날 밤.

그 때의 나는 너무나 외로웠고, 기댈 곳이 필요했고, 그가 너무나 다정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망설이다 나는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응응 갈래! 그럼 오늘 하루 잘 부탁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매일매일 방에선 불을 끄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