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1년과 그 후
2014년 무렵 대학교 3학년 때,
독일 바이로이트(Bayreuth)에서 약 1년간 교환학생으로 지냈다. 당시 나는 평화로움과 조급함이 함께 머리속을 돌아다니며 혼란스러웠다.
캠퍼스에 비숑만한 토끼가 뛰어다니고 풀밭에선 고슴도치가 뒤뚱거렸다. 밤이면 수풀 사이로 반딧불이가, 하늘에는 쏟아질듯한 별들이 가득했다. 여름엔 머리 맞대고 누워서 별똥별 보고 소원을 빌었고 겨울엔 온 동네가 따뜻한 와인 냄새로 가득했던 곳.
너무 한가로운 바이로이트에서, 수업 마치고 뭐 먹지? 장 보러 레베(REWE) 갈까 리들(LIDL) 갈까, 귀찮지만 조금 더 멀고 큰 레알(REAL) 갈까?라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면 이따금씩, 한국에서 어학, 자격증 공부와 온갖 대외활동을 하는 친구들과 나를 계속 비교하게 되었다. 1년 후 돌아갔을 때 너무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이 들었고, 여유롭게 지내는 것이 불안했다. 평화로움이 두려워서 혼자 매일 고민거리를 찾아내곤 했는데, 요즘은 그때가 좀 그립다.
하루 종일 자전거만 타기도 하고, 오리들 밥 주면서 멍 때리기도 하고, 슈퍼 아주머니, 길가는 할머니들과 수다 떨고 놀기도 했다. 어느 날은 머릿속에 쇼핑 생각밖에 없어서, 언니들이랑 수업을 어떻게 빠져서 옆 도시로 쇼핑 원정 갈지 궁리하다가, 우리 다 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무하기도 했다.
한편 독일에서 파는 모든 초콜릿, 빵, 요거트 먹고 갈 거라는 목표로 푸드파이터가 되어 6kg가 쪘다. 또 그래 놓고 살 뺀다고 요가, 줌바, 스텝앤스타일, 스키김나스틱, 유도, 주짓수 등 온갖 운동 다하면서 진짜 파이터가 됐다.
이 파티 저 파티 다니면서 가져간 한국요리 칭찬에 으쓱하기도 하고, 어색해 죽겠는 파티에서 억지로 불려 나가서 익숙한 척도 했다.
빵 굽는 것을 좋아하는 호경 언니네 집에서 먹고 자고만 반복하면서 사육도 당하고, 술 문화를 깨우쳐준 다영 언니와 수빈 언니와 함께 보드카와 주스를 타 먹으면서 밤새 수다 떨기도 했다.
또, 독일 전통 음식 레스토랑에서 4개월간 일하면서 학센, 슈니쩰, 파스타, 소시지 요리 등 다양한 독일 음식을 배웠고 또 호구처럼 일하다가 외국인 노동자라고 시급도 떼였다. 종종 다영 언니와 수빈 언니와 미희 언니의 고급 댄스 레슨을 받으며 공장(정식 명칭 'Fabrik', 한국어로 공장인 클럽)도 갔는데, 파닥거리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벨기에 · 네덜란드 · 체코 · 오스트리아 · 영국 · 이탈리아 · 프랑스,
그리고 독일의 뮌헨 · 라이프치히 · 베를린 · 밤베르크 · 뉘른베르크 · 슈투트가르트 · 프라이부르크 · 뷔르츠부르크 · 포텐 슈타인 · 함부르크 · 로텐베르크 · 쾰른 · 프랑크푸르트 등
총 100여 일 의 시간 동안 여행을 다녔는데, 여행은 무조건 옳을 줄 알았지만, 반반이었다. 유럽의 아름답다는 명소를 다닐수록 난 한국이 더 생각났다.
나는 꽤 무모했다.
발목이 말을 안들을 때까지 종종 걸었다. 3만보를 찍는 것은 일상이었다. 혼자 영화 노팅힐 주인공이 된 마냥 노팅힐에서 컵케잌을 먹으며 지도 없이 무작정 걷다, 휴대폰 배터리가 꺼지고 길을 잃었다. 뉘른베르크에서는 주먹만 한 우박이 쏟아지는 와중에, 40kg짜리 짐과 함께 오지 않는 기차를 10시간이 넘도록 기다리기도 했다.
파리 공항에서 혼자 노숙을 하고 베를린 지하철에서 도둑질을 당하기도 했다. 어느 비 오던 암스테르담에서는 마약에 취한 두 사람이 흰자만 보이는 채로 내 우산 속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한편, 나는 꽤 운이 좋았다.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서 무릎에 피가 철철 나고 있는 나를 기숙사에 데려가 치료해준 천사 같은 친구를 만났다. 정말 끔찍하게 좁고 흔들리고 더러웠던 파리 지하철에서 중심 못 잡고 넘어지는 내 허리를 감싸 안아준 로맨틱한 파리지앵도 만났다.
당시 댄싱 9 보고 무용수들에 빠져있던 때, 파리 한인 숙소에서 LDP 무용단의 유명 현대 무용가가 한 방을 쓰며 성덕이 됐고, 도예가, 사업가, 회사원, 학생 등 다양한 직업과 개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아무 조건 없이 친절을 베풀고 진심으로 대해주던 순수한 사람들을 만났고, 친절을 가장하고 무언가를 원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매일 온갖 인연들과 사건들을 만나면서,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나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내가 정말 작고 부족한 존재임을 느끼면서 동시에 그래서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가서 뭐했어? 1년 동안 어땠어? 얘기좀 해봐"
다들 묻지만,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매번 ‘그냥 지냈지 뭐’라는 대답만 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너무도 꿈같고 망상 같은 추억들이라 어떤 대답이 옳은지 모르겠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때는 바쁘지 않은 삶이 불안했지만, 또 막상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너무 그립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라는 것과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고 또 지나면 그리울 한 때라는 것. 그게 나의 지난 독일과 유럽 나라들에서의 1년에 대한 결론이다.
교환학생 가기 전, 먼저 다녀온 한 선배가 그랬다.
"독일에 가있는 동안이 네 인생 최고 호시기일 거야. 잘 쉬고 즐기다 와." 호시기라는 말을 쓰는게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데, 그 말이 맞다. 그래서 요즘같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땐, 독일에서의 생각이 종종 난다.
독일에 돌아가 브이로그 찍으면 어떨까... 독일에서 아우스빌둥(Ausbildung, 독일 직업학교)해볼까...
하지만 한가롭고 평화로웠던 그때는 그 자유가 불안하고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을 다시 또 즐겨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