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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멍 쉬멍 걸으멍, "조금 느리고 게을러도 괜찮아"

불안하고 두렵지만 그래도 버텨낼 수 있는 용기 줬던 제주 여행



마음이 답답할 때 서울에서 잠깐 시간을 내면 동해나 서해 어디든 바다를 볼 수 있는데 급여라는 굴레에 속박당해 그걸 못 하고, 바다내음 고파 제주까지 다녀왔네요


처음엔 바다 내음이 고파 무작정 바닷가를 찾았는데, 평소에 생각했던 평온하면서도 잔잔한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가 아니었어요. 그 보다 강풍과 악천후 속에 불편하면서도 손이 더 가는 '바닷가 여행'이라 인생여행이 된 것 같아요.


창립기념일을 포함한 3박 4일의 달콤한 나의 제주여행 계획은 떠나기 전날, 회사 대표가 전날 수주했다면서 밤새 브랜드 스터디도 안 했냐는 채근 속에 불안감이 엄습해왔고 항공권을 취소하라는 무언의 압박에 하루 내내 국밥 한 끼도 입에 대는 둥 마는 둥 하고 제주로 날아갔죠.  


비행기 출발 3시간 전까지 한 시간가량 늘어놓는 회사 대표의 잔소리에 40분이면 대중교통 이용해 도착할 수 있는 김포공항을 공항행 택시를 불러 이동 중에 타이핑을 해가면서 겨우 업무를 마감할 수 있었어요.



이렇듯 서울에서 출발하는 날부터 일정이 꼬여서 사전 예약한 숙박 위약금을 감수하고 항공편까지 취소해야 되나 생각하다가 캐리어 하나에 의지해 무작정 떠났던 3박 4일의 제주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녹초가 된 조금은 느리고 게을렀던 여행이었어요.


그동안의 여행이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다녔던 '관광'에 가까웠다면 바다멍, 책멍, 꽃멍, 하늘멍 등 '멍 때리기' 속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던 '힐링여행'이었던 거 같아요


특히, 독립서점을 들르면서 20년 가까이 좋아했던 일이 한순간에 굴욕적으로 해야 하는 노동으로 바뀌는 순간이란 걸 깨달았을 때 이젠 '멈춰야 할 때'라는 각성을 하게 됐던 거 같아요.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계절의 변화조차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을 텐데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다양한 감정을 누르고 불안하고 두렵지만 그래도 버텨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 줬어요.


봄을 알리는 입춘이 지나고 제주에서 만나는 '봄의 시작', 아주 소중하면서도 작은 희망을 발견했던 '놀멍쉬멍걸으멍에 조금은 느리고 게으른 제주여행', 3박 4일 동안의 발자취를 되돌아봅니다.


/ 소셜큐레이터 시크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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