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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Jan 05. 2022

당신의 에이전시

사회 구조와 개인의 에이전시에 대하여

밴쿠버 퀸 엘리자베스 파크


새해다. 해를 보러 동네 공원을 찾았다. 구름이 잔뜩 껴서 해를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두 손 모아 소원을 빌었다. 새해에는 좋은 날이 좋지 않은 날보다 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아무리 복을 많이 받아도 살면서 좋지 않은 날들을 마주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니까. 한 해에 좋은 날이 반을 넘으면 그게 복을 좀 받은 경우고, 나머지 좋지 않은 날들을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않고 잘 타 넘었다면 그건 정말 복 많은 한해라고 생각하는 나는 복에 너무 인색한 사람인가.


나쁜 날들에 있을 때마다 나 자신을 탓하는 게 익숙했다. 아빠가 술을 진탕 마시고 집에 오는 날에는 우울한 술주정이 질색이었던 만큼 그걸 막을 수 없는 내가 싫었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을 때는 나의 멍청함을 욕했고, 다이어트에 실패할 때마다 내 의지박약을 원망했다. 오랜 시간 내 자신을 탓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시크릿'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우주를 향해 마음을 기울여 기원하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었다. 믿지 않고는 현재하는 우울과 불행을 견딜 수가 없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새해에는 좋은 날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해봤자 새해에도 어김없이 예상치 못한 폭탄들이 곳곳에 깔려 있었다. 폭탄이 터질 때마다 내 몸과 마음에 덕지덕지 붙는 못난 것들도 함께 터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소원했다. 충분히 예쁘지 못한 못남, 충분히 똑똑하지 못한 못남. 행복이랑 너무 먼 못남 같은 것들 말이다. 못남의 쓰나미가 찾아올 때마다 나는 한바탕 울고 나서, 다음날엔, 다음날에 회복하지 못한다면, 그다음 날에라도 비빈 눈을 다시 뜨고 열심히 살자고 다짐해야 했다. 다짐의 뒷면에서는 여전히 못난 사람일 수밖에 없었지만.    


제대로 질문한 적이 없었다. 아빠는 왜 우울한 술주정뱅이가 됐을까. 나는 왜 그 대학에 가고 싶었던 걸까. 나는 왜 살을 빼지 않는 나를 괴물이라고 느꼈을까. 묻지 않으니까 세상이 이미 정해놓은 정답들이 나를 가르쳤다. 그래도 너희 아빠니까 네가 이해하고 참아야 한다, 그래도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해야 한다, 그래도 여자로서 잘 사려면 이쁜 게 장땡이다, 식의 정답들이 위로인 척 나를 달랬다. 사람들이 말하는 정답을 잘 주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오래도록 시달렸다. 답답함은 나를 찌르는 자기혐오가 되거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시 가득한 말로 되돌아갔다. 질문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나는 질문하는 힘도 잃어갔다. 자꾸만 작아지는 나를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도망쳤다.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고 느끼던 어느 날 한국을 떠났다.


한국이 아닌 곳을 떠돌아 살면서 한국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속했던 곳을 벗어나 그 밖에서 그것을 쳐다보는 시선만으로도 오랫동안 앓았던 답답함이 씻겼다. 비난의 대상이 더는 나 자신이 아니게 되었다. 나는 내가 살던 사회를 쳐다보고 있었다.


1964년에 밥을 굶어야 할 만큼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아빠가 겪었을 굶주림과 폭력의 역사, 동시에 그가 겪을 수 없었던 교육, 행복, 자존감, 경제력 같은 것은 아빠의 알코올 중독과 전혀 무관할까. 1992년에 지방의 노동자 출신 부모 아래에서 태어나 공부가 출세라고 배우며 남보다 앞서야 하는 경쟁을 체화한 내가 무조건적으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가치를 내면화한 것은 연관성이 없을까. 남자가 가장으로 길러지는 동안 여성은 예쁜 인형으로 값 매겨지는 길고 긴 성차별의 역사는 내가 나를 괴물로 인식하는 일과 상관없을까. 아빠가 처했던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 모두가 폭력적인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나와 같은 배경에서 자라난 사람 모두가 스스로를 자학하며 경쟁밖에 모르는 인간으로 자라나는 것도 아니며, 어떤 여성들은 외모가 어떻든 굳건히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을 운 좋게 터득할지도 모른다. 우리 아빠와 나는 그런 예외적인 사람들이 아니었고, 나는 아무래도 아빠와 나처럼 자신들이 태어난 사회를 답습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회를 흡수하는 정도의 차이나 방식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출처: Blackwell's


사회학자 밀(Mill)은 사회적 상상력( sociological imagination)이 개인에게 가져다주는 해방감에 대해 말한다. 사회적 상상력이란 어떤 문제 앞에서 고립된 채 자신을 비난해야 했던 개인이 자신 앞에 자신만을 비추는 거울을 쳐다보는 대신 그가 속해 있는 더 큰 사회를 감각하려고 애쓰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개인의 문제가 개인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시스템이 개인들에게 내던져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그 개인이 스스로에 대한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게 내가 이해한 사회적 상상력의 요지다.


밀이 말한 것처럼 시스템에 주목했을 때 내 숨통도 트였다. 세상에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과 내 주변에 산재한 나쁜 날들이 온전히 내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이 위로가 됐다. 내가 속한 시스템을 인식하자 내가 나에게 '못남' 딱지를 붙이며 스스로를 비난했던 대부분의 일들이 시스템이 내게 물려줬던 유산임을 알게 됐다. 나쁜 날들에 자기혐오가 습관처럼 스멀스멀 올라올 때마다 내가 처한 어려움이 나의 개인적인 문제인지, 시스템의 문제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판가름하려고 애쓰게 되었다. 개인에게 향해 있었던 비난의 화살표를 사회를 향해 틀었을 때 나는 훨씬 덜 자기 파괴적인 인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비난의 화살표를 틀었다고 해서 트인 숨통이 뻥 뚫리지는 않았다. 사회를 비난하는 일의 아이러니는 어쨌거나 내가 살아남아야 하는 곳도 그 사회라는 데에 있다. 비판은 문제를 인식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개인은 개인을 비판하는 개인보다 분명 큰 그림을 보고 있지만 여전히 그림을 감상할 뿐이다. 비판이 비판으로 끝나게 될 때마다 내가 속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가부장적이고 경쟁에 미친 한국 사회를 욕하면서 캐나다로 이민 왔지만 캐나다라고 유토피아였던 것은 아니다. 이곳에 오래 살다 보면 또 이곳 시스템의 흠집들이 보인다. 공통적으로 내가 여행하고 살아본 어느 나라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남성 중심적이고 인종차별적이며 신자유주의적인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사람이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내게는 도망치거나 비판하는 일 말고 다른 프레임이 필요했다.    


출처: Docsity

사회학 수업 시간에 에이전시(agency)라는 단어를 배웠다. 에이전시란 개인이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한국어 사전에 에이전시를 검색하면 대리인 정도로 밖에는 해석을 못한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에이전시의 의미는 그 반대다. 대리인이 필요 없는 한 개인이 온전한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그것을 행사할 때 우리는 그를 에이전시가 가득한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


10년 전의 나는 열심히 살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고 믿었고 몇 년 전까지 나는 폭력 쟁이 세상이 싫다며 이러다 세상 하나 망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젠 두 극단 어느 것에도 동의하기가 힘들다. 열심히 살아도 이룰 수 없는 게 있고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볼 마음조차 들지 않는 시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온갖 나쁜 일들이 벌어지지만 그것만큼 혹은 그것보다 더 많은 좋은 일들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누군가는 좋을 일들을 계속 만들어나갈 거란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물론 세상이 별로일 때가 너무 많지만 그래도 우리가 뭔가 해볼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존슨(Allan G. Johnson)이 "가부장제, 그 시스템(Patricarchy, the System)"에서 말한 것처럼 사회 구조란 원래부터 존재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낸 유동적인 시스템이다. 시스템이란 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함께 지은 성이고, 그들이 성 곳곳에 쳐놓은 거미줄과 같다. 개개인들의 에이전시가 없었다면 애초에 거미줄이든 성이든 사회든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스템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사회에서 태어난 개인은 그 사회의 시스템 밖으로 완전히 벗어나 살 수 없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스템에 속한 개인들은 언제든 그것을 부수고 새로지울 수 있다. 그러므로 존슨이 "시스템 안에 있는 우리 안에 있는 시스템(The system in us in the system)"이라고 말할 때 그 말의 의미는 내가 의도하지 않은 시스템 안에 놓인 게 내 존재이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내가 해볼 수 있는 게 있고 그것을 해낼 힘도 내게 있다는 것을 인식하자는 제안이다. 자기혐오의 울타리를 넘을 때, 세상에 대한 비관도 넘을 때, 그래서 개인들이 부릴 수 있는 작은 힘들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때 견고해 보이던 가부장제도 학벌주의도 신자유주의도 언젠가 무너질지 모른다. 좀 더 나은 일들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새해다. 좋은 날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어쩔 수 없는 나쁜 날들은 잘 다독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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