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끈 블랙홀
바짝 귀밑으로 짧아진 머리를 하고 있는 나
오늘도 나는 머리를 수없이 묶는다.
집에는 웬만한 종류의 고양이 장난감들이 기본 옵션처럼 준비되어 있지만,
나의 주인님은 옷장 한편을 내어드릴 정도로 가득한 장난감 컬렉션을 마다하며,
'굳이 이것마저 뺏어가야 속이 시원하냐'라는 말이 절로 나올 한 가지 놀이에 빠져 계신다.
까맣고 탄성 좋은 고무줄끈을 물고 빨고 당기고 던지며 이 세상에서 제일 신나게 놀 줄 아는 고양님.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물음표 모양을 한 꼬리를 살랑이며 힝구가 나를 반긴다.
옷을 갈아입고 한숨 돌리며 힝구와 하루종일 못다 한 대화를 하려 할 때, 내 고민은 시작된다.
집사는 아직 충전 중인데, 낮잠으로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나버린 힝구의 반짝이는 저 눈빛, 빨리 나를 즐겁게 하라며 울기시작 하는 애처로운 울음소리, 내가 가는 곳마다 매복하며 언제든지 달려들 준비가 되어있다 온몸으로 말하는 둠칫둠칫 궁둥이와 바짝 올라간 마징가 귀, 내가 애써 모른 척 자리를 잡고 앉자, 힝구가 그 순간 내 어깨 위로 뛰어오르며 내 머리를 헤집어 놓기 시작한다.
'킁킁킁'(부스럭부스럭)
이 녀석은 지금 엄청 진지하다.
진심으로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찾는 것이 없자 앞발로 내 머리카락을 앙칼지게 움켜쥐며 코를 더 깊게, 머리카락 속에 박으며 이곳저곳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다.
'놉! 힝구, 아직이다.'
자신이 원하는 고무줄끈을 찾지 못해 낑낑거리는 힝구 눈앞에 고무줄끈을 장난치듯 흔들자,
앞발로 그 끈을 잡기 위해 난리다.
둠칫둠칫 궁둥이가 신명 나다.
문득, 고양이 집을 샀더니 고양이집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박스에만 들어가 있었다는 웃픈 이야기가 떠오르며, 훗날 내가 그 집사들의 마음에 깊게 공감하게 될 줄이야.
아직 포장도 뜯기지 못한 채 방치된 저 장난감들은 고양님의 눈길조차 받지 못했는데, 굳이 관심을 주지 않아도 될 머리끈은 왜 자꾸 가져가는 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고양이지.
오늘도 고양이에 대해 배우며 아니 내려놓으며 고영님의 텐션에 함께한다.
한창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기에 팔목에 여분으로 남겨둔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으며 글을 쓰려는데, 어디서 촉이라도 왔는지, 잽싸게 달려오며 이 집에 머리끈의 지분은 자신에게 있다는 듯 또다시 내 머리를 헤집어 놓고 머리끈을 '앙' 하고 물어가 버린다.
벌집이 돼버린 내 머리.
그래 우리 힝구 하고 싶은 거 다 해!
지난 새벽 뭐가 그리 신났는지 내 옆에서 한참을 분주히 궁둥이를 움직이던 힝구가 갑자기 내 머리카락으로 관심을 옮긴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새벽녘 잠에서 깨고 말았다.
킁킁킁, 아예 머리카락 속에 코를 박고 앙칼지게 내 머리 여기저기를 잡기 바쁘다.
어딘가 깊이 머리끈이 숨어있기라도 한 듯, 힝구의 손 길(?)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 왜 그래.... 진정..아.. 도움!
잠결에 나는 팔목에 준비해 놓은 머리끈으로 급하게 머리를 묶으며 내 머리를 내어준다.
둠칫둠칫 신난 궁둥이가 내 얼굴에 아른거린다. 나는 그렇게 지쳐 다시 잠이 든다.
하.. 오늘은 힝구 하고 싶은 거 그만해!
마지막으로, 힝구가 가져간 그 수많은 머리끈의 행방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