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글루틴 11기
글루틴 11기가 시작되었고, 글루틴은 이제 슬기로운 나의 글 생활을 위한 내 루틴이 되었다. 10월에도 내 글루틴이 멈추지 않기를, 이번 달에는 100% 인증을 위해서 더욱 부지런히 글을 쓰자고 다짐해 본다.
매일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양한 글감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고양이, 힝구는 내 글의 기본값이고 거기에 +α가 될 값이 필요하다. 오늘의 힝구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며, 오늘은 고양이의 어떤 이야기를 쓸지를 언제나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고양이와의 일상에서는 굳이 찾아 헤맬 필요 없이, 함께하기만 해도, 바라보기만 해도, 하루하루가 절대 같을 수 없는 변수의 연속이다. 예상할 수 없는 매일, 내가 지루할 틈 없이 때론 정신을 쏙 빼놓고, 거기에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일상의 루틴까지 더해지니 퇴사 생활이 알차다. 글루틴만큼 육묘의 삶 역시,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재취업 전까지 글루틴과 육묘일상에 충실히 임하기만 하더라도, 제법 괜찮은 퇴사 생활을 보낼 거로 생각하며, 오늘도 나는 육묘한 하루를 일기로 남긴다.
며칠 동안 힝구가 화장실에 가기만 하면, 울기 바쁘다. 혹시 화장실 위생 상태가 맘에 들지 않아서일까, 부지런히 화장실 청소를 마친다. 그럼에도 힝구의 울음이 멈추지 않는다. 어제도 힝구가 맛똥산을 생산하지 못했는데, 혹시 힝구에게 변비가 찾아온 것일까. 나는 급히 락토페린을 급여했다. *락토페린은 고양이 장 내에 건강한 박테리아를 촉진해 장 기능 개선을 통한 변비 해결에 도움을 주는 영양제로 그 밖에도 다양한 효능이 있으며, 어렸을 때, 허피스 진단을 받은 힝구의 면역력 강화를 위한 필수영양제 중 하나다. 다행히 며칠 전까지 염소똥 같던 힝구의 맛똥산이 어마어마해졌다. 읍! 그래도 흐뭇한 힝구의 배변 활동에 화장실 청소가 힘들지 않다.
2주 만에 제주도를 떠나, 서울에 도착하던 날,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마장동 본가로 향했다. 오빠는 힝구와의 2주가 쉽지 않았든지 오늘은 본가에서 자고 갈까, 고민하던 나를 문정동으로 데려다준다고 바삐 일어났다. 힝구도 집에 갈 걸 눈치챘는지, 센스 있게 차에 타기 전 화장실로 달려갔다.
힝구의 눈빛이 야릇하게 변했고, 궁둥이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더욱 엉거주춤해진 자세로 힝구의 맛똥산 생산이 시작되었다. 바로 앞에서 대견하게 바라보던 나보다도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던 오빠가 먼저 힝구의 똥 냄새를 맡고 말았다. 자기는 이제 더 이상 맛똥산을 치울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을 때, 나는 의아했다. 나에게는 도대체 왜 힝구의 덩 냄새가 나지 않는 건지, 비염이 심해졌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힝구의 궁둥이가 의기양양해질 정도로 힝구를 칭찬하며, 맛똥산을 처리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끝까지 힝구의 그 냄새를 맡지 못했다. 이것은 나의 문제인가, 힝구 맛똥산의 문제인가. 아마도 2주간, 힝구에 대한 그리움이 내 코를 마비시켰나 보다. 화장실 청소가 내 삶의 주 업무가 된 듯, 가장 강렬함을 남기는 루틴이 되었지만, 이마저도 힝구의 건강함에 감사하다. 치울 수 없을 때의 그 걱정을 담은 수많은 생각들보다 더 힘든 시간은 없기 때문이다.
오늘 배변과 관련된 단어를 너무 많이 사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것이 육묘의 실생활이기에 가감 없이 그 순간을 육묘일기로 남기기로 했다. 내일도 계속될 육묘일기는 언제나 힝구의 일상을 생생하게 담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