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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Jan 24. 2023

0.5평의 피난처

회피형 인간이 숨을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동굴, 요가매트 위.

  나는 회피형 인간이다.

연인이나 친한 친구로 삼기에 적합하지 않은 유형의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세 손가락 안에 반드시 드는, 흔히 말해 '문제가 생기면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이다. 즉, 나는 언제나 마주 하기보다는 도망치는 것을 택하는 사람이다. 갈등 상황이 너무나 두려워서 남들이 원하는 것이 곧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세뇌시켜서 갈등을 피한다. 감당하기 어려울 만한 문제발생가능성이 있는 관계는 애써서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깊은 관계와 애착을 형성하는 데에 실패한다. 시도조차 못하는 실패. 그러다가 문제가 기어이 내 코앞에 나타날라 치면 어떤 수를 써서든지 도망쳐 버리는 사람이다.



 내가 도망치는 동굴은 크게 3군데다. 하나는 잠. 입시 스트레스와 친구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미묘한 권력관계에서 오는 불안함에서 종종 도망쳐야 했던 학창 시절, 나는 생각도 하기 싫은 문제가 생기면 커텐을 치고 이불을 깔고 누워서 잠을 청했다. 꿈도 꾸지 않는 잠 속으로 줄행랑을 쳤다. 주말이나 시험을 마치고 집에 일찍 돌아온 평일에는 대낮에도 6-8시간을 내리 자고 나서 밤에 또 잤다. 잠을 자고 일어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풀어야 하는 문제집 분량과 성적표에 찍힌 숫자는 그대로이고 학교에 가서 얼굴을 마주 해야 하는 친구들도 그대로였다. 그래도 괴로운 마음을 끌어안고 고민하며 끙끙대는 시간 자체를 몇 시간이라도 줄이고 싶었던 것 같다.


'~ 것 같다'라고 쓰는 것은 긴 잠이 나에게는 도피처였다는 사실을 내가 회피형 인간임을 깨달은 이후에 알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내가 요를 깔고 눈을 감는 대신에 괴롭더라도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더라면, 그렇게 해서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게 되고 나의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을 체득했더라면 나는 두 번째 동굴까지는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 Unsplash의 Annie Spratt



 잠에 이어서 내가 찾은 피난처이자 동굴은 술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처음 마신 술은 나에게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술에 취하면 평소의 부끄럼도 사라지고 유쾌한 말도 시원스럽게 내뱉을 수 있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취하면 머릿속이 비로소 고요해졌기 때문에 나는 술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술에 대한 나의 애정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대학이나 학과 선택 수준이 아니라 인생의 모양새를 잡아 나가야 하는 진짜 '진로'에 대한 고민을 바로 마주해야 했던 20대 초반, 나는 내적 갈등이 몰려들 때마다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다가 선택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에는 적당히 남들이 하는 대로 하면서 상황을 모면해 나갔다. 부끄럽지만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렇게 술로 도망칠 때에는 주로 나 자신과 풀어야 할 문제가 있을 때였다.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해서 지금 이렇게 괴로운 건지에 대해서 맨 정신으로 치열하게 고민했더라면 지금 나는 회피형 인간이라는 점 이외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잘 설명하는 현명함을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술을 이용해서 스스로 머리와 마음을 마비시킨 다음에 적당히 어물쩍 넘겨 버린 문제들이자 그 시절 중요했을 화두들이 얼마나 많은지, 문제들과 제대로 마주한 적 조차 없기 때문에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술은 나의 일상적인 피난처다. 30대 직장인이 된 지금, 20대에 비하면 주량이 줄었지만 빈도는 오히려 늘었다. 여전히 마음의 문제 혹은 나 스스로와의 갈등이 생기면 일단 그 문제 상황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 알코올로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성을 무디게 만든다. 그렇게 지금도 계속, 거의 매일 도망치고 있다. 맥주의 홉아와 와인의 포도로 지어진, 술 익은 냄새 풍기는 나만의 동굴.

사진: Unsplash의 John Torcasio



 잠과 술은 그다지 권할 만한 피난처는 아니다. 신체에 백해무익한 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모든 행위가 단절되어 버리는 잠 역시 그럭저럭 일반적인 삶을 살아내려고 노력하는 회피형 인간이 쉽게 도망칠 수 있는 동굴은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은 잠이건 술이건 그 어떤 피난처를 권하는 대신에 문제와 맞서세요!,라고 말하는 것이겠지만- 여전히 일단 숨을 곳을 찾아놓아야 마음이 안심되는 나로서는 그런 말을 할 처지가 못 된다. 나도 아직 회피형 인간이 아닌 인간으로 사는 법을 완전히 익히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권할 수 있는, 그리고 나름 남에게 큰 피해는 입히지 않는 회피형 인간으로 사는 데에 도움이 되는 동굴이 있으니

바로 요가다.

0.5평, 신장 170cm인 내 한 몸 하나 뉘이고 나면 끝인 좁은 요가 매트 위에 서서 수련을 하고 있으면 마치 소주 한 병은 마신 것처럼 그 어떤 생각도 끼어들지 않고 머릿속이 고요해진다. 한 시간 남짓 수련을 마치고 나면 마치 긴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처럼 시간의 속도가 바뀌어 있다.

사진: Unsplash의 Jinny Rose Stewart

 흔히 명상을 요가와 연관 지어 생각하곤 한다. 실제로 비슷한 시퀀스를 반복하는 빈야사 요가는 '움직이는 명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나에게 요가를 통한 명상은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어떤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 아니다. 그저 정해진 구령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근육과 호흡에 집중함으로써 삶의 다른 문제들 혹은 고민들에서 벗어나는 것, 그게 내가 요가를 통해 하고 있는 명상이다.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나는 그냥 요가를 하는 회피형 인간이다. 혹은 요가 수련 덕분에 조금은 작아진 죄책감을 가지고 맥주도 마시는 회피형 인간이다. 이렇게 나는 그저 조금 더 유연하고, 남들에게 내세울 수 있을 만큼 그럴듯한 취미가 있는 회피형 인간이 되었을 뿐, 요가 매트 바깥에 문제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내 의식의 흐름을 일부러 단절시켜서 피하고 싶은 문제들을 일시적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묘술을 부리는 잠과 술과 달리, 의식을 여전히 유지한 채로 수련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가진 문제의 본질에 나도 모르게 다가가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화두를 가지고 매트 위에 섰던 것도 아닌데 마음의 매듭이 스르르 풀리는 일들이 일어난다. 수련을 리드하는 요가 강사님의 말 한마디 덕분일 수도 있고, 정말로 몸과 마음은 우리가 과학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더 깊고 신비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내 몸이 새로운 아사나(asana, 자세)를 익힐 때마다 이전과는 다른 마음의 근육도 생겨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요가 수련을 하면서 애써 피하고 피해온 문제들을 나도 깨닫지 못한 사이에 직면해 온 경험을 정리를 해두지 않는다면 내가 요가 매트 바깥에서 삶을 제대로 살아내는 데에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최근에 들었다. 어쩌다 겪는 운 좋은 일이 아니라, 내가 요가 매트 바깥에서도 문제를 직시하고 나 자신에게 최선인 선택을 앞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틈 나는 대로 내가 요가라는 동굴에 도망쳐서 해온 수련들을 기록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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