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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크한 유니씨 Jul 04. 2020

<기다릴 수 있다면>

-하도리에 가 보았어요

                                                                       

겨울에 스키 타려고 여름에 다리 운동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뭐래. 처음엔 실소가 새어 나왔다. 좀 미련 맞은 거 아냐? 꼴랑 한 두 달 스키 타자고 그래, 나머지 계절을 잡힌다고? 살수록 공감하며 나도 잘 쓰는 말인데,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오지 않았으니 애오라지 오늘, 지금, 현재를 즐기고 살아낼 일이라고. 그런데 그 다리 운동 한다는 스키어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깡그리 저당 잡히는 꼴, 다시오지 않을 오늘을 소모하는 일이잖아 싶었다, 첨엔 나도.


하지만 곰곰 곱씹으며 생각해 보았다. 

'나는 스키를 탈 몸이니까 내몸에 힘을 기르는 등 관리하겠다→ 내 즐거움은 조금 멀리 겨울에 있지만 지금 이 여름도 그 겨울에 닿을 거다→하루하루 채워나가는 시간은 지루할 수 있어도 날마다 커지는 설렘은 그날까지 간다.'

어쩐지 얘기가 꽤 멋지게 해석되었다. 스키어는 그 ‘때’를 기다리며 매일을 얼마나 기쁘게 유지할까,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비슷한 경험들이 있다. 여행을 앞두고 주로 이런 마음이 드는데 농담처럼 말해도 진심으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부디 가는 날까지 조신하게 몸 사리자,고. 가령, 어디 가서 시비 붙거나 쌈박질 하지 말고 웬만하면 너른 아량으로 넘어가고, 아무거나 막 줏어 먹고 토사곽란 유발하지 말 것이며, 해 떨어지면 귀가하고 늘 먹던 세 끼 잘 챙겨 먹자. 왜냐고? 내 몸은 곧 떠나야 할 임무를 앞두고 있으니까.

2018 0813 서울->제주      


‘떠남’을 위한 자세를잡는 첫 번 째 방법은 늘 살던 일상을 지키는 일 아니던가. 일상을 일상이게 하려면 일상 이상의 일상을 일상적으로 살아내야 한다(꼭 이런 식으로 글을 써야겠니). 그런게 평범 속의 비범, 반복적인 루틴의 저력이자 견고함이겠다.


스키어의 겨울도, 나의 여행도 결국 지켜내야 할 일상 그 다음에 있다. ‘떠남’에, ‘스키’에 방점을 찍었다면 그에 반하는 일들로 발목 잡히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의무와 책임을 다 할 필요가 있다. 그 정도 노력으로 지켜낼 하루하루가 없다면 스키나 여행이 다 무슨 소용일까. 잘 두고 산뜻하게 떠날 수 있는 자신의 일상을 다져놓아야 한다. 


그러니까 사실 저 스키어가 다지는 것은 다리 근육만은 아닌 것이다. 꾸준한 하루하루, 그렇게 지켜낸 시간일 것이며 결코, 겨울을 위해 저당 잡힌 오늘 또한 아닐 것이다. 


기다림은 어쩌면 다가감이다. 내 앞에 뚝, 기다린다고 떨어지는 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내가 그 거리를 좁히는 것. 설레는 마음을 부풀리고 촘촘히 버텨낸 시간을 기울여 마침내 그 때를 마주하게 되는 것 말이다. 그래서 말해두고싶다. 다가가는 기다림은 헛되지 않다고. 


스키어의 봄, 여름, 가을이 알차게 들어차 겨울에 닿기를, 멋진 하강을 이루어 내기를. 

나의 오늘 내일이 떠나는 그 날에 닿기를, 다시 돌아올 테지만 또 다시 기다림을 다져 떠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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