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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y Park Dec 03. 2023

헨리 5세와 문샷 전략

불리한 여건과 환경에서의 경쟁을 이겨내기 위한 역발상 전략

# 본 글은 글로벌 이코노믹에 <헨리 5세와 문샷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경영칼럼의 원문 글입니다. 



불리한 경쟁 상황에서의 비즈니스 전략을 고민할 때, 개인적으로 많이 떠올리는 케이스가 헨리 5세가 이끄는 영국군이 프랑스 영토 내에서 승리한 애쟁코르 전투이다. 이 전투는 영화 <헨리 5세>에 비교적 비중있게 잘 다뤄지고 있는데 들여다 보면 볼수록 흥미로운 전투이다. 


아쟁쿠르 전투(Battle of Agincourt)는 영국과 프랑스간의 백년 전쟁 중에 있었던 전투 중 하나로 1415년에 헨리 5세가 영국군을 이끌고 프랑스에서 벌인 전투다. 헨리 5세 자신의 군사적, 정치적 입지를 입증했을 뿐만 아니라 중세 전쟁사에서 기존 중장갑 기병 중심의 전투 방식에 의문이 제기된 전환점을 제공한 전투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전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모든 측면에서 불리했던 영국군이 주어진 내외부 환경을 적절하게 역이용했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 망나니처럼 살았던 헨리 5세는 갑자기 부친이 사망하면서 얼떨결에 왕위를 이어 받았다. 왕이 되기 위한 수업보다 궁 밖에서 주색잡기로 시간을 보냈던 헨리 5세였기에 주변에서는 왕으로서의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시선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뛰어난 전투 실력을 발휘하면서 점차 왕으로서의 리더십을 인정받게 되었다. 반면, 영국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프랑스는 헨리 5세의 왕위 계승을 탐탁치 않아 했으며 심지어 헨리 5세의 암살을 시도하기까지 하였다. 이에 헨리 5세는 이전 역사에서 약속된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약 12,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를 침공하였다. 


하지만, 영국군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환경 속에서 다소 무모한 전투를 치뤄야 했다. 우선 전투 자체가 프랑스의 홈 그라운드에서 벌어졌다. 그리고, 당시 전장 지형을 보면 프랑스군이 경사진 언덕 위에 진을 치고, 영국군은 경사지 아래 쪽에 위치해 있었다. 경사지 양측은 숲으로 덮여 있어 정면 대결 외에는 다른 전략을 구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애쟁코르 전투 현장의 지형과 양측의 진영 배치도
당시의 전장 환경을 보여주는 영화 <헨리 5세>의 전투 장면


병력 구성 측면에서도 프랑스군이 1만2천~3만6천명 수준으로 영국군보다 2-3배 많았고, 프랑스군이 중장갑 기병 중심이었던 것에 반해 영국군은 중장갑 보병 중심이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전투 전날 비가 많이 내려 전장이 모두 질퍽한 진흙탕으로 변해 있었다.


경쟁이 기본인 비즈니스에서 ‘어디에서 싸우느냐’는 무척 중요하다. 특히, 신규 사업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려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전략적으로 전쟁터(battle field)를 어디로 잡느냐가 경쟁에서의 성공 여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애쟁코르 전투에서 영국군은 일단 자신들에게 유리한 전쟁터를 선점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국군 입장에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이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퇴각하기 위해 영국과 가장 가까운 칼레 지역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는데 이를 프랑스가 눈치 채고 재빠르게 길목을 막아 선 것이었다. 


영국군의 프랑스 침공 여정을 보여주는 지도

 

그럼, 헨리 5세가 이끄는 영국군은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어떻게 우세한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


전날 비가 내려 땅이 질퍽해질 것을 예상한 헨리 5세는 이런 환경을 영국군에게 유리하게 전환시켜 활용하였다. 헨리 5세는 다음 날 전장이 진흙탕으로 변할 것으로 예상하고 주력 보병 부대인 중보병 대신 갑옷을 줄인 경보병으로 승부를 내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당시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싼 갑옷은 현대의 군 보병들이 행군시 메는 군장과 비슷한 무게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육중한 갑옷을 입고 진흙탕에서 싸우게 되면 민첩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은 프랑스의 주력 부대인 중무장 기병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었다. 


영국군은 육중한 갑옷을 감싼 중보병은 소수 인원만 맨 앞에 선발로 내세우고 나머지 보병들은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갑옷을 줄인 경보병으로 양쪽 숲 속에 매복을 시켰다. 프랑스군은 예상대로 초반부터 기세를 잡기 위해 주력 부대인 중장갑 기병을 먼저 앞세웠다. 영화 <헨리 5세>를 보면 중무장한 기마병이 경사진 비탈길을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내려와 영국군의 진영을 훼파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영국군 입장에서는 간담이 서늘할만한 상황이었다.  


영국군은 선발로 나선 중보병들이 프랑스 중기병들과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기병들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교착 상태에 빠지자 숲 속에 매복해 있었던 경보병들이 투입되어 진흙탕에 빠진 프랑스의 주력 중기병들을 압살했다. 이 과정에서 육중한 장갑을 입은 채 상대 기마병들을 진흙탕으로 끌어들인 소규모 중보병들의 희생이 있었다. 


프랑스의 중기병과 영국의 중보병이 진흙탕에서 뒤엉켜 싸우는 영화 <헨리 5세>의 한 장면


책 <문샷>에는 로켓 재료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거꾸로 사이버트럭 ‘엑소스켈레톤’ 제작을 결정한 일론 머스크의 사례가 나온다. 로켓 부품의 80% 정도를 내부에서 생산하여 가격과 품질을 둘 다 잡은 부분도 크지만, 우주선용 합판 생산을 위한 천문학적인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역발상을 통해 사이버 트럭을 양산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불리한 상황과 환경을 뒤집은 문샷 전략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영토 내 불리한 지형 환경에서 대규모 프랑스군과 맞붙은 영국군들은 아마 대부분 속으로 집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어쩌면 양국 군사들에게 똑같이 어려운 진흙탕 환경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헨리 5세는 이 가운데에서도 양국 군사들의 장단점을 토대로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전략적 사고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 이런 기조가 1-2년 이상 갈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들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비즈니스 환경이 좋지 않을수록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큰 기업들보다는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게 어려운 시간이 될 것이다. 어쩌면 내가 속한 조직은 방어력이 약한 경보병으로 경쟁자들과 맞서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동일한 시장 환경을 역이용하는 창발적 사고가 필요할 것이다. 


내가 싸우고 있는 전쟁터의 어려운 환경(진흙탕)에 주목하고, 이 장애물을 역이용할 수 있는 아군의 자원(경보병)을 십분 활용하는 전략을 모색해 볼 때이다. 물론, 승리를 위해서는 헨리 5세와 같은 리더와 그를 따르고 헌신하는 핵심 인력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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