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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햇님 Sep 20. 2021

계절을 기대하는 생활

여름다웠던 여름을 추억하며

나무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가 갈망하는 것은 오로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다. _ 헤르만 헤세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


가을이 되고 하늘색이 짙푸르게 변했다. 거기에 하얗고 몽글한 구름이 몇 개 걸리면 어김없이 산책이 하고 싶어 진다. 오늘도 조금 불편하지만,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옆 동네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골목골목을 걸었다. 네 살 아이는 이제 걷는 일이 시시해진 것처럼 더 자주 안아달라 보챈다. 그 덕에 애 아빠는 늦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를 매달고 다녔다.



나무나 풀을 기르는 데 아직은 소질 미달인 나도 느리게, 천천히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기대치가 있다. 헤세의 글처럼 나무의 속삭임, 밤바람 소리, 풀벌레 울음을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가 말한 것처럼 나는 이제 다른 누군가와 경쟁하지 않고 내가 오로지 나답게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나름대로 간직하고 있는 계절의 기억도 있다. 오늘만 해도 남편과 어릴 적 명절 풍경을 이야기하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끄집어냈다. 7남매 중 다섯째이지만 아들 중에는 셋째인 우리 아빠, 바로 손아래 넷째 작은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시내버스를 운전했다. 명절에도 쉬지 못하고 운행을 해야 하는 대중들의 버스. 예닐곱 정도 되는 사촌 남매들은 추석 당일에 무얼 했냐. 큰어머니가 3층짜리 찬합 도시락을 싸 주시면 그걸 들고 우르르 나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작은아버지가 몰고 오는 버스에 올랐다. 손님들이 다 내리고 종점에 다다르면 우리는 작은아버지와 그 도시락을 까먹고 근처 들판에서 뛰놀았다. 버스 기사 휴식 시간은 길어봤자 1시간 정도였을 테지만, 어린 나이에는 그 시간이 한나절처럼 길고 웃음 가득했다.

소도시에서 변두리 종점까지 나갔다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 버스를 전세 낸 듯한 이 꼬맹이들은 지칠 줄 모르고 놀았다. 다시 큰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뒤쪽에 나란히 앉아 고개를 떨어뜨리며 졸았다. 지금 와 생각하면 버스를 탈 때 누가 정류장에 데려다주긴 했는지, 깜빡 잠이 든 우리를 깨워 내리게 한 건 누군지 같은 상세한 기억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물고랑을 따라 달리던 기억, 찬합 뚜껑이 열릴 때 “와아~” 하며 손뼉 치던 기억만 드문드문 남아 있다.  




귀촌을 결정할 때 아이에게 주택의 기억, 시골길 풍경 같은 것들을 추억으로 쌓게 해 주고픈 마음이 가장 컸다. 지방 소도시 2층짜리 상가 건물에서 태어나 스물이 될 때까지 그 집에만 살았던 나는, 낡고 허름한 우리 집을 마냥 좋아하지는 않았다. 내 키가 자랄수록 집이 좁다는 걸 알았고, 아파트나 새로 지은 주택에 사는 친구네에 다녀오면 부족한 것만 보였으니까. 나무로 짠 문 사이로는 바깥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집, 상가 주택 2층을 개조한 집은 그저 벽을 세워 방과 방을 구분한 어설픈 구조였다. 가정집도, 그렇다고 상가나 사무실도 아닌 애매한 집 구조 때문에, 친한 친구 몇몇을 제외하고는 누군가를 초대하기도 머쓱했다. 1층 엄마 가게 옆 한 편이 주방이었는데, 밥을 먹는 도중 손님이 오면 숨죽여 식사했다. 누덕누덕한 헝겊이 된 듯 마음이 구겨지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추억하는 멋진 장면은 이런 것들이다. 중학생 무렵 옥상에 올린 옥탑방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되었다. 주말이면 라디오 주파를 맞춰 밤늦도록 스타들의 목소리와 노래를 들었다. 고등학생 때 천문 동아리에 가입하고서는 그 골방에서 엎드려 천문학 교양서를 읽다가 계절별 별자리를 확인하러 자주 옥상으로 나가곤 했다. 눈이 오면 옥상에 소복이 쌓인 그 눈을 내가 가장 먼저 밟았다. 그리고 무더운 여름이면 가족들 모두 옥상에 올라가 텐트를 펼치고 잠이 들었다. 이런 장면들은 나중에 조금 더 자란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을 만큼 보드랍고 순수하다. 서글프고 모자랐던 순간까지도 희미하게 떠올리면 다 예쁜 추억이다. 그때 그 결핍이 있었기에 내가 나를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면 그건 감사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사 온 시골집에서 나는 오랜만에 여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올여름 아이에게 만들어준 첫 번째 추억은 마당 풀장이었다. 때마침 친구가 아이를 데리고 서울에서 먼 길을 달려와 더 왁자한 날로 각인되었다. 마당 풀에서 아이들은 어설픈 수영을 하다가 잠깐씩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삶은 옥수수와 수박을 얻어먹고 들어갔다. 우리는 바로 옆 평상에 앉아 아이스커피와 갖은 여름 과일을 먹으며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마당에 피운 나선형 모기향이 고요히 타들어 가는 동안, 아이들 웃음소리도 계속되었다.



시골의 여름이 언제까지나 낭만적일 리는 없다. 내 아이도 자라면서 불만을 품는 날이 올 것이다. 사춘기가 찾아오면 마당에 나가면 모기 물린다고 제 방에 콕 박혀 나오려 하지도 않으려나. 허술한 방충망과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옆집 불 때는 냄새가 지긋지긋해 몸서리칠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시골 낡은 집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련의 장면들이 아이가 컸을 때 아련히 떠올랐으면 한다. 다 큰 어른이 되어 집을 추억할 때 ‘그래도 좋았었지’ 할 수 있다면, 그 감정이 아이의 방황하고픈 마음을 어느 정도 잡아줄 수도 있을 거라 기대한다. 내 유년 시절의 기쁨과 슬픔이 어느 순간 호환해, 흐느끼던 이십 대의 나를 다독였던 것처럼 말이다.  

 

살다 보면 어렵고 슬픈 일들이 많지만, 그래도 때때로 충만함과 만족감을 주는 행복한 일이 생긴다. 그런 행복은 오래가지 않아도 괜찮다. 잠깐이지만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  


 글도 처음 소개한 책에 실린 헤세의 문장이다. 헤세가   땅을 갖게 되었을 , 그것들을 가꾸며 느끼는 희열과 감동이 고스란히 적힌 작품이다. 그렇다고 끝까지 행복한 정원 생활만을 노래하지는 않는다. 고난과 절망, 냉소와 혼란도 글로 적었다. 책을 읽는 동안 사색가 헤세와 괴팍한 은둔자 헤세를 번갈아 마주하며 그의 굴곡진 인생을 상상했다. 계절을 기다리는 사람은 때때로 변화에 순응하며 고독 앞에서 솔직하다. 헤세가   땅과 평생 함께하지는 못했던 것처럼 우리  가족의 늙은 시골집과 여름다운 여름도 짧은 순간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기억이 훗날 미소를 가져다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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