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연락이 끊긴 한 선배는 어린 시절 술만 마시면 괴물처럼 변하는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다가 슬리퍼만 겨우 찾아 신고 도망을 쳤다. 그가 아홉 살 때 동네 제일 꼭대기에 있는 언덕에 올라갔던 것은 모든 것을 잊고 뛰어내리고 싶어서였다. 단지 아버지와 같은 어른이 되기 싫어서였다. 아홉 살이 되기까지 너무 많은 고통과 슬픔을 견디고 보아 온 까닭이었다.
그림책 <아빠의 술친구>에는 선배처럼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에게 학대받는 아이가 나온다. 매일 술을 마시고 엄마와 자신을 때리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치고 싶지만, 엄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아이는 집 안에서의 폭력을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간다. 하지만 엄마가 먼저 집을 나가자 혼자 남은 아이에게 돌아온 것은, 더 큰 분노로 일그러진 아빠의 주먹뿐.
가정폭력을 날것 그대로 직설적으로 그려서 오히려 담담한 그림책 <아빠의 술친구>는 아이의 짓눌린 두려움과 분노를 거칠고 투박한 뭉텅이와도 같은 그림으로 보여준다. 눈, 코, 입이 없는 얼굴로,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고개를 수그린 아이의 모습은, 술 취한 아빠의 주먹을 견디며 매 순간 생존해야 했던 아이의 삶을 아프도록 선명히 보여준다.
그림책을 보며 머릿속에서 내내 맴 돈 것은 아빠의 술친구가 아빠의 주먹과 혀라는 사실이었다. ‘ 아빠의 주먹은 술을 마신다.’ ‘술 취한 혓바닥이 우리를 부른다.’ 와 같은 문장은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가 아닌, 폭력을 휘두르는 ‘주먹’과 욕설을 퍼붓는 ‘혓바닥’ 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폭력 가해자로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학대 아동들의 마음도 엿볼 수 있었다. 아빠의 주먹이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두른 것이지, 아빠가 그런 것은 아닌 거다. 술만 마시면 괴물처럼 변하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아이가 원래 알고 있는 살가운 아빠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말이다.
부모에게 정서적, 물리적으로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폭력을 휘두른 부모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양가감정(兩價感情)상태이기 쉽다. 또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에게 공격성을 표출하기도 하는데, 이는 자신도 모르게 폭력 가해자인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해버린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학대받은 아이가 자신이 받았던 폭력을 다시 재현하는 것을 ‘반복강박’ 이라 부른다. 해결되지 못한 과거의 상처를 다시 되풀이함으로써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을 터.
그림책 <아빠의 술친구>에서 이 반복강박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한 아이를 만난다. 이제 어른이 된 아이는, 나이를 먹어 약해진 아빠의 주먹이 더는 무섭지 않지만, 자신에게도 아빠와 똑같은 주먹이 생긴 것을 알지만, 아빠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아빠가 죽고 난 후 아빠의 주먹과 혓바닥을 떠올리며, 동시에 나의 주먹과 나의 혓바닥이 담기길 기다리는 빈 술통을 떠올리는 마지막 장면은, 서늘하기만 하다. 가정폭력이 대물림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림책 <앵그리맨>에서는 이러한 폭력의 대물림이 분노 감정이라는 좀 더 구체적인 맥락의 서사로 나타난다. 주인공 소년 보이의 아버지는 기분이 좋을 때는 노란 접시에 담긴 건포도만큼 기분 좋지만, 기분이 안 좋으면 활화산처럼 단숨에 분노를 터뜨리는 앵그리맨으로 변한다.
그 순간 분명 아빠가 화를 내고 있지만, 또 분명 아빠가 아니다. 아빠 목소리 너머 지하실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 몸속의 계단을 타고 지하실에서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빠의 등을 타고 목을 넘어 앵그리맨이 나오려고 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보이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빈다.
“ 아빠, 제발 앵그리맨이 못 나오게 해 주세요. 못 오게 해 주세요. 착해질게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요. 숨도 안 쉴게요.”
한바탕 앵그리맨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 다시는 화 내지 않을게.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을 거야. 약속 하마.’ 말하며 괴로워하는, 불쌍하고 작은 아빠가 있다. 거대한 괴물처럼 분노를 토해내는 앵그리맨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앵그리맨이 되어 집안을 초토화시킨 것이 미안했던 걸까? 저녁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주려고 주스와 사탕을 사 갖고 집에 와 아들을 안으려 하지만, 보이는 불안하기만 하다. 언제, 앵그리맨이 아빠의 등을 타고 튀어나올지 모르기 에.
그런 보이가 ‘ 아빠가 때립니다. 제 잘못인가요? ’ 세상에 처음으로 질문을 던지는 순간, 집안을 옥죄듯 휘감고 있던 분노의 사슬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한다.
앵그리맨 뒤에 또 다른 앵그리맨이 존재함을 알게 된 보이. 오래전부터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대물림되어온 폭력, 앵그리맨 뒤에서 울고 있는 상처 받은 어린아이가 있다는 걸 가족들은 발견하게 된다.
그림책 워크숍에서 만났던 열 살의 J 역시 분노조절을 못하는 아버지의 강압적인 훈육으로 늘 주눅 든 채 매사 불안해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그동안 억누르고 회피하기만 했던 마음 깊은 곳의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을 바라보며, ‘ 마음이 힘들어요.’ ‘ 마음이 아파요.’ 솔직하게 고백하기 시작하자, J는 아버지의 정서적인 학대에 맞설 힘을 키울 수 있었다.
동시에 J의 아버지 역시 부모 상담을 받으며 오래전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학대로 울고 있는 ‘내 안의 아이’ 를 보듬어주기 시작했고, 이것은 J의 가족이 함께 치유의 여정 길에 오를 수 있는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 주었다. 이 모두가 자신 안의 두려움을 직면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괴물처럼 느껴지던 어둠 속으로 아이와 아빠가 함께 성큼 걸어 들어가 빛을 만들어내는 지난한 과정이었던 셈이다.
아직도 그 여정은 진행 중이지만, 상처 속에 똬리 틀고 있던 두려움이란 감정을 직면하여 용기 있게 걸어 나온 것만으로, 아이와 아빠는 삶의 커다란 진화의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요즘 들어 뉴스에서 자주 만나는 아동학대, 가정폭력 사건들은 지금에서야 수면 위로 올라온 것뿐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이 폭력이라 이름짓지 않은 폭력들을 우리는 무수히 보아왔고, 또 그 지난한 과거의 시간들을 우리는 살아오지 않았나.
그런 연유로, 그림책 <아빠의 술친구>와 <앵그리맨>은 단지 어둠만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 아니다. 어쩌면 '어둠 속에서 빛을 내밀하게 만들어가는 여행'을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다.
울고 싶지만 울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울어주고, 눈과 귀를 깊이 열어 세상 어딘가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울음을 조용히 듣는 일. 또 그 어둠을, 세상에서 밝히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