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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Jan 17. 2022

[쿠바 #10] 혁명사를 자부심으로 기억하는 쿠바

혁명광장과 아바나대학교를 탐방하다

"쿠바사랑"을 알아 볼 사람을 기대하며 오늘을 시작하다

   늦은 아침 호텔 조식으로 식사를 든든히 하고 9시 30분쯤 호텔 로비 앞에서 일행이 모두 모이기로 했다. 호텔 앞에는 어느 곳이나 그렇지만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들이 게양되어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쿠바 국기와 함께 성조기가 나란히 걸려 펄럭이고 있었다. 냉전 시대에 미국에 맞서 혁명을 일으키고 미국의 압박과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를 만들어내려고 했던 지난 수십 년간의 쿠바의 노력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2015년에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미국의 화폐가 환전소에서 거래되기 시작한 지금의 쿠바를 나란히 서 있는 두 나라의 국기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쿠바와 미국의 국기가 나란히 걸려있다. 바뀌어가는 정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일행이 모두 모였고 오늘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의자에 앉아 종이를 꺼내어 글씨를 쓰기로 했다. 한글로 크게 “쿠바사랑, 같이 놀아요” 등등의 문구를 석 장의 종이에 썼다. 오후에 아바나 대학교에 갈 예정인데 그곳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이 문구를 보고 반갑게 맞이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그 종이를 만들었다. 유쾌님이 호탕하게 립스틱을 내어주셔서 붉고 선명하게 글씨를 쓸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종이 석장을 직진님과 반전님, 유쾌님의 등에 붙이고 9시 40분이 조금 넘어 길을 나섰다. 첫 일정을 혁명광장과 혁명기념탑 및 호세 마르티 기념관으로 잡았다.

"쿠바 사랑"이라고 쓴 글씨를 등에 붙이고 이날의 일정을 시작했다.

   우선 이동을 위해 첫날 버스를 탔던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이미 한 번 가봤던 길이라 수월하게 찾아갔다. 슬슬 아바나가 우리 동네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여행지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낯섦과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길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 길이 익숙해지면서 이제 쿠바의 아바나도 점점 친근하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버스 정류장에는 이미 꽤 많은 현지인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은 P1버스를 기다렸는데 우리가 오기 전 지나갔는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정류소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한 아저씨의 손목에는 양쪽으로 모두 빛나는 시계가 둘러져 있었다. 허름해 보이는 외양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이제 이곳도 자본의 맛이 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사실 그 걱정은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하는 여행객들만의 욕심일 수도 있다. 현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할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자본의 힘을 외면해서 살아가기가 힘든 것이 현실일 테니까 말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한 아저씨의 손목에 금붙이들이 둘러져 있다.

   그런 상념에 사로잡힐 즈음 드디어 P1버스가 도착했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버스로 몰려들었고 버스 앞문으로는 당최 탈 수가 없어서 우리 일행은 모두 뒷문을 통해 버스에 올랐다. 총무님이 버스비 계산은 어찌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그렇게 많이 버스에 탔기 때문에 버스 안에서 앞뒤로 이동하는 것은 도무지 가능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책자에서 서술했던 지옥철같은 버스의 느낌을 제대로 체험했다.

두 번째로 타는 아바나의 P1버스. 배차 시간이 느린 만큼 승객이 참 많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또 길을 물었는데 혁명광장은 아직 멀었단다. 걷자! 이번 여행의 모토이자 자유 여행의 최고 가치가 아닌가! ‘쿠바 사랑’을 등에 붙이고 앞서 걸어가는 우리 일행의 모습이 바야흐로 진정한 여행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 꽤 먼 거리를 한참 걸어가고 있는데 비아술 버스 터미널이 보이고 거의 다 도착하지 않았을까 하는 즈음에....

오늘도 힘차게 걷는 우리 일행(왼쪽). 길 건너 파란색 건물이 비아술 버스의 버스터미널이다(오른쪽).

   오 마이 갓! 갑작스레 비가 내렸다. 우선 대충 비를 피해야 했다. 터미널 건너편 꽤 큰 건물이 있어 그 건물 로비 앞에서 비를 피했다. 열대의 스콜처럼 비는 순식간에 쏟아져 내렸고 꽤나 세차게 비를 뿌려댔다. 이렇게 느닷없이 비가 내리는 일이 흔한지 우리가 비를 피한 그 건물 아래에는 현지인들도 여럿이 모여 있었고 우리와 함께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는 한 10분여를 그렇게 쏟아붓고는 다시 슬슬 자취를 감추어 갔다. 빗줄기가 꽤 많이 약해지자 비옷과 우산 등을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느닷없이 내리는 비. 적도 부근이라 아마 열대지방의 스콜 비슷한 게 아닐까 싶었다.


혁명의 주역들에게 둘러싸이다~!

   다시 출발~! 직진님은 그 건물에 있는 계단을 내리고 오르며 반대편으로 나가려 했는데 출구 쪽에서 군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길을 막았다. 출입이 금지되어 있으니 되돌아가라는 것이었다. 다시 되돌아와 건물을 끼고 돌아 나섰다. 그런데 그 순간! 알고 봤더니 우리가 비를 피한 그 건물이 혁명광장에서 바라 보이는 두 혁명 영웅 중 한 명인 까밀로 씨엔푸에고스의 조형물이 있는 바로 그 통신부 건물이었던 것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를 코 앞에 두고도 모르고 비 그치면 또 언제 가나 하는 푸념들을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혁명광장에 들어섰다.

우리가 비를 피했던 바로 그 건물. 아바나의 통신부 건물이었다.

   쿠바의 ‘혁명 광장(Plaza de la Revolución)’은 그 면적이 상당히 넓었다. 과거 우리의 여의도 광장보다도 더 넓어 보이는 공간이었다. 광장을 가운데로 두고 한쪽 편으로는 두 혁명 영웅의 조형물이 건물 벽에 조성되어 있다. 우리 일행이 비를 피했던 그 통신부 건물 한쪽 벽에는 ‘Vamos bien Fidel(잘 지내 피델)’이라는 문구와 함께 까밀로 씨엔푸에고스(Camilo Cienfuegos)의 형상이 있고, 그 왼편 내무부성 건물 벽에는 ‘Hasta la victoria Siempre(승리의 그날까지 영원히) ’라는 작별 편지의 문구와 함께 체 게바라의 형상이 있다. 비바람의 흔적 때문에 눈으로 보기에도 체 게바라의 조형물이 씨엔푸에고스보다는 먼저 만들어졌는지 오래되어 보였다. 오히려 그 시간의 흔적이 역사를 더욱 잘 드러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쿠바의 현대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의 형상이 혁명 광장을 지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씨엔푸에고스(왼쪽)와 체 게바라(오른쪽)의 형상. 건물 전체 높이에 벽을 치고 철제로 만들었다.

   조형물 앞으로 난 도로에는 관광객을 태운 투어버스(대부분의 여행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깔끔한 외관의 2층 버스였다)와 올드카들이 무심히 지나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두 영웅의 형상 아래로 무수히 많은 여행객들과 현지인들이 나름의 삶의 현장들을 펼쳐내고 있는데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과연 지금의 쿠바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에 여행 책자를 보면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그 공간에서 그런 풍경을 만나니 사뭇 궁금해지기도 하고 이런 생각이 과연 맞는 것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씨엔푸에고스의 앞을 지나는 아바나 투어 버스의 모습.


    광장을 가로질러 혁명기념탑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것은 혁명기념탑, 즉 ‘호세 마르티 기념탑과 기념관(Memorial José Martí & Museo José Martí)’이었다. 그 높이가 109m나 될 만큼 우뚝 솟아 넓은 광장에 어울릴 만했다.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탑 바로 아래까지 갔더니 하얀색 호세 마르티의 동상이 그윽하게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탑과 동상의 규모는 이 나라 사람들이 스페인에 대항해 순국하며 쿠바 독립운동의 상징이 된 호세 마르티를 얼마나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탑의 기단부에는 기념관 입구가 있다. 기념관에는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호세 마르티와 관련한 각종 전시물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우리 일행은 그 앞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광장을 내려다보며 우리를 쳐다보는 쿠바 혁명의 두 영웅과 눈을 맞췄다. 그러고 보니 광장을 사이에 두고 쿠바의 독립 영웅과 혁명 영웅이 서로 눈을 맞추고 있는 지세였고 그 모습은 광장을 지나다니는, 혹은 행사 때 광장을 가득 채우는 이곳 사람들을 그 영웅들이 내려다보는 형세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세 영웅의 품 안에 안겨 일상을 살아가는 현재의 쿠바 사람들을 표현해내려 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호세 마르티 기념관과 탑(왼쪽), 기념관에서 내려다 본 혁명광장(오른쪽)

   다시 광장으로 내려오려는데 기념관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군인이 몇몇 사람들에게 호루라기를 불며 가지 말라고 제지를 하고 있었다. 괜히 주눅이 들어 우리에게 그러는 것인가 헷갈리기도 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아니라 기념관과 기념탑 뒤로 난 길로 들어가려는 다른 여행자들에게 출입을 금지하고 되돌아가라는 의미의 경고를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뒤편에는 현재 정부 청사와 대통령 집무실이 있어 근위대의 경비가 매우 삼엄하다고 했다. 아마 그런 이유로 기념관에서부터 그런 제지를 하는 것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씨엔푸에고스 옆으로 광장에 진입했던 우리는 체 게바라 옆으로 난 길을 통해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혹시나 싶어 체 게바라의 형상이 걸려 있는 건물 밑으로 가 보았는데 역시 군인 하나가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길 가던 한 남자가 무언가를 그 군인에게 묻는데 군인은 참으로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으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사실 아바나 시내에서 군인이나 경찰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것은 되려 이곳의 치안이 꽤 괜찮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며칠 전 해가 진 저녁 비바람에 말레꽁 너머로 바닷물이 넘치던 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교차로마다 경찰들이 있어 안전 통제를 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일이었다.

체 게바라의 형상이 있는 내무부 건물을 지키는 군인. 괜히 주눅이 들기도 했다.


아바나대학교를 향해 걷다~

  그 풍경을 뒤로하고 다시 20여분동안 길을 걸었다. 아바나 대학교를 찾아가는 길이다. 아침부터 준비해서 등에 붙여 놓았던 “쿠바사랑”이 빛을 발하기를 기대하며 걸었다. 아무래도 자유여행의 설렘 중 하나는 예상 못한 우연을 만나는 것인데 그 하이라이트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비는 거의 잦아들고 있었고 비 온 뒤의 후텁지근함이 슬슬 밀려오기 시작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길을 걷는데 열대 우림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큰 나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단 몇 그루만으로도 숲을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나무였고 기둥 줄기에는 여러 잔 줄기들이 중력을 이기지 못해 흘러내린 모습이 아마존 정글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저 정도의 크기라면 아바나에서 일어났던 근현대사의 역동을 이 나무는 모두 겪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바나 대학교로 가는 길에 만난 엄청난 크기의 나무

   그 나무를 시작으로 길 양 옆으로는 아바나 도심에서 흔히 만나는 낡은 주택가가 아닌 숲이 시작되고 있었고 몇 개의 꽤 큼직큼직한 건물들이 보였다. 그중 하나가 눈을 끌었다. 병원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인지라 쿠바는 무상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사실 그동안 아바나 시내를 꽤 많이 걸으면서 병원을 몇 번 보기도 했다. 사람들 눈에 잘 띄게 외벽 페인트도 잘 칠해놓고 간판 글씨도 다른 일반적인 건물들과 달리 잘 보일 만큼 크게 써놓았다. 의료 시스템이 잘 되어 있으리란 추측이 가능할 만했다. 물론 의료 수준이 우리만큼 잘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아팠을 때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치료를 못 받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사람을 우선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아바나 대학교 가는 길에 만난 병원의 외관

   대학교가 가까워질수록 대학생으로 보이는 각양각색의 젊은이들이 보였다. 흘끗흘끗 우리 일행을 쳐다보기도 하고 몇몇은 등에 붙은 종이를 신기한 듯 쳐다보기도 했다. 유쾌님은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 몇 청년에게 호기롭게 말을 걸었다. 영어로 Cuba Love라는 뜻이며 한국어로는 '쿠바사랑'이다라며 한국어 발음 설명을 했고 청년들은 신통하게도 알아들으며 따라해보기도 하였다. 아프리카에서 유학을 온 청년과 그 종이를 두고 유쾌한 대화도 하고 포옹으로 인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에 맞는 한글을 알아보는 청년을 만날 수는 없었다.

아바나 대학교의 입구. 건물이 먼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숲이 먼저 반겼다. 언뜻 보면 대학 입구인지 알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캠퍼스 투어 - 아바나대학교

   그 상태로 아바나 대학교에 도착을 했다. 피델 카스트로가 법학과를 졸업한 학교이기도 한 이곳은 1728년에 건립된 대학교로 중남미 지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다만, 처음의 대학은 다른 곳에 있었고 1902년 이곳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숲으로 들어가는 듯한 입구(정문은 따로 있다)를 지나면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안내판을 보니 캠퍼스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겠구나 정도만 알 수가 있었고 스페인어만 잔뜩 적혀 있어서 각각의 건물들이 어떤 공부를 하는 애들이 있는 곳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휴대폰으로 번역기를 돌려 알아보면 될 일이지만 쿠바는 휴대폰이 잘 안된다. 특히 와이파이를 쓰려면 따로 돈을 내고 이용권을 구입해야 하고 이용권이 비싸기도 하려니와 그것마저도 전화국이나 우체국 등 주요 관공서 근처에서만 작동한다. 안내 표지판을 지나 조금 걸어가자 비를 맞아 더욱 깔끔해 보이는 유럽풍의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건물 주변으로는 녹지공간이 꽤 조성되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탱크가 떠억하니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 1958년 혁명 당시 혁명군이 노획한 탱크라고 하는데 그게 왜 이 대학 한복판에 있는지는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굳이 추측하자면 쿠바 혁명에 대한 쿠바 사람들의 자긍심의 발로가 아닐까 싶었다. 사실 소소한 일상에 묻혀 사는 사람들에게 혁명가는 그 명칭만으로도 존경심이 들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지성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독립을 위해, 외세와 맞서 싸우기 위해 혁명에 나선다는 것은 위대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아쉬운 것은 과연 우리는 쿠바만큼 그 그 위대한 일을 한 분들을 충분히 존경하며 대우하고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대학교 안내 표지판(왼쪽). 대학교 내에 탱크가 하나 전시되어 있었다(오른쪽). 이채로운 모습이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 자그마한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꽤 커 보이는 건물들이 여럿 나타났다. 아마도 우리로 치면 각 단과대학들이 사용하는 건물들이 아닐까 싶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대학인 만큼 곳곳에 작은 공원이나 작은 광장이 있고 그 주위로 이런 건물들이 큰 나무들과 어울려 고풍스런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높은 석조 기둥들 여러 개가 뻗어 있는 모습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아바나 대학교의 건물들. 그리스나 로마에서 보임직한 형태의 건물들이 오래된 나무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반전님과 유쾌님은 등에 붙여놓은 '쿠바사랑'을 혹여 누가 알아보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보았지만 한글을 아는 학생은 아무도 없어 보였고 그저 무심하게 자기들끼리의 대화에만 집중을 했다. 우리를 그렇게 특별히 신기해하거나 하는 것도 없었다. 물론 그도 그럴 것이 쿠바는 워낙 다양한 인종들과 혼혈민들이 섞여 함께 어우러져 사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같은 동양인이라고 해서 특별한 관심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구경꾼일 뿐이었고, 그들은 우리를 딱히 경계하지도 않았다.

   일단 우리 일행은 각자 흩어져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마침 점심시간인지 건물 안팎으로는 학생들, 교수들이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도란도란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건물 난간에 기대어 점심 후의 휴식을 즐기는 교수와 대학생들. 여유가 한껏 묻어난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왔다. 하늘도 어둡긴 했지만 건물 안은 꽤 어두운 편이었다. 학교는 그래도 조명을 잘 해서 밝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시험기간인지 강의실에는 듬성듬성 앉은 학생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고 칠판 앞에는 교수와 조교로 보이는 사람들이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학생들 시험본다고 엄청 조용히 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이 아니고 자기들 할 얘기를 목소리를 크게 낮추지도 않고 열심히 무언가 말을 주고받고 있었고, 학생들도 그런 풍경이 익숙한지 크게 개의치 않고 자기들의 시험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 대학이나 다 비슷하겠지만 강의실 밖에는 시험을 먼저 끝낸 친구들이 시험 얘기를 하는지 연애 얘기를 하는지 실컷 떠들면서 강의실에서 자기 친구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로 자유로운 분위기의 시험 풍경이었다.  

시험을 보고 있는 강의실의 모습. 시험 감독관(왼쪽)과 시험보는 학생들(오른쪽)


낯선 곳에서 만난 반가운 인연~^^

   그런 풍경들을 아슬아슬하게 카메라에 담고 다시 1층 정원으로 내려왔더니 일행들 일부가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한국말로~! 찾았다!! 한글을 읽을 수 있는 학생!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국적으로 생긴 한 남학생이 너무나도 유창한 한국말을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쿠바로 유학 온 지 이제 겨우 일주일쯤 된 한국 청년이었다. 서초동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갔고 그곳에서 쿠바로 스페인어 공부를 하러 유학을 왔다는 것이었다. 외모로만 봐서는 한국인 아닌 줄 알았는데 토종 한국인이었다. 이 친구는 어릴 때부터 그런 오해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어렵게 만난 한국 청년. 한글을 보니 반갑기도 했지만 이 아저씨들이 왜 이러나 싶어 살짝 창피하기도 했다고 했다 ^^;;

   반갑게 한참을 이야기하고 준비해 갔던 포스트잇, 수첩 등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대박님이 챙겨 왔던 신라면 5개들이 번들도 줬는데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어제는 그렇게 삼겹살이 먹고 싶었다며 오늘 그 그리움을 라면으로 달래 보겠다고 했다. 오랜 외국 생활의 고단함, 고국의 음식과 문화에 대한 향수가 조금은 느껴졌다. 강의시간이 다 되어 수업을 들어가야 한다는 말에 아쉬움을 남기고 그 친구를 보냈다. 그리고는 아바나 대학교를 조금 더 서성거리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역시 중간중간 우리의 유쾌여사님은 ‘쿠바사랑’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에게 재미나게 설명을 해주면서 유쾌한 인사를 나누었다.

대학생들과 '쿠바사랑'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우리 일행. 꽤나 유쾌한 대화들이 이어졌다.

   학교 이곳저곳을 돌다 보니 어느덧 학교 바깥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선 꽤나 많은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한참을 내려가다 뒤돌아 보니 대학 본관(?) 건물이 떠억 하니 자리잡고 있는 게 보였다. 역시 꽤나 높은 석조 기둥 위에는 UNIVERSIDAD DE LA HAVANA라는 글씨가 멋드러지게 새겨져 있었고 그 앞으로는 동상 하나가 세상 모든 이를 품을 듯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동상 기단부에는 ALMA MATER라고 쓰여 있었는데 라틴어로 '모교'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 계단을 다 내려오면 도로가 나오고 까사 등이 많은 일반 거리고 바로 이어진다. 사실 정문이라고 할 만한 어떤 문은 없고 계단 자체가 대학으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생각하면 될 듯했다.

아바나대학교 정문에서 보이는 본관 건물


흥이 넘치는 쿠바를 담은 유쾌한 식당

   어느덧 시간은 오후 1시 30분을 향해 가고 있었고 배가 고파왔다. 우리 일행의 오늘 점심 메뉴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바로 랍스터~! 아바나 대학교 정문을 빠져나와 여행책자에 나와 있는 빠창게라(Pachangueras)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자에 나와 있는 주소를 통해 아무리 찾으려 해도 식당 비슷해 보이는 것조차 찾기가 힘들었다. 주소에 나와 있는 거리를 몇 번을 왔다갔다 하고 지나는 현지의 한 아주머니에게 물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책자에 나온 사진을 보고 같은 건물을 찾긴 찾았는데 그곳은 까사였을 뿐 음식을 팔고 있진 않았다. 책자 수정 요청을 해야할 듯...

아바나대학교를 빠져나오면 바로 만나게 되는 멜라 광장. 그저 평화로워 보일 뿐 우리가 찾는 식당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동네 아주머니에게 애타게 길을 물어보지만(왼쪽), 도통 알 수가 없고 현지의 일상(오른쪽)은 그들의 시간표대로 움직이고만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랍스터 식당을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보았던 로꼬스 뽀르 쿠바(Locos por Cuba)라는 곳을 선택했다. 이곳 역시 저렴한 현지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라고 여행책자에도 나와 있는 곳이었다. 식당은 2층에 있었고 올라가 보니 넓지 않은 면적에 테이블도 몇 개 없는 식당이었다. 테라스가 있었고 그 테라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식사를 할 수도 있었다.

테라스에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여종업원들은 쿠바 국기 문양이 있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그 종업원들과 함께 찍은 여행객들의 사진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쪽 벽으로는 아프리카 문양과 조각품들이 걸려 있었는데 멀지 않은 곳에 아멜거리가 있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날이 더워 시원한 맥주, 생수 등과 함께 닭고기 요리, 생선요리 등을 주문했다. 요리가 나오기 전 친절한 종업원에게 볼펜, 수첩 등 약간의 선물을 건넸더니 역시 무척이나 기뻐했다. 종업원은 우리에게도 사진을 요청했고 우리는 흔쾌히 응했다. 아마 나중에 그곳에 우리 일행의 사진도 걸릴 텐데 한국인들로 보이는 사진이 없었던 탓에 우리 일행의 사진이 첫 한국 여행객들의 사진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 역시 종업원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밝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종업원의 미소가 사진 속에서 여전히 웃고 있다.

뒤편의 많은 사진들 속에 우리의 사진도 걸리리라. 쿠바에서의 식사도 추억이 될 수 있는 식당이었다.
식당에서 나온 요리들. 특히 부카네로 맥주는 더운 날씨에 식당을 찾으며 고생했던 마음까지 시원하게 날려주기에 충분했다.

   식사가 나왔다. 역시 부카네로 맥주는 맛있었다. 요리도 우리 입맛에 대략 맞았고 더운 지방이라 약간 짠 듯했지만 충분히 먹을 만했다. 땀을 많이 흘릴 수밖에 없는 날씨인지라 몸 속에 염분과 열량을 함께 채우기에는 적당했다. 오후에 또 그만큼의 땀을 흘려야 할지도 모르기에 우리는 배가 두둑해질 정도로 잘 먹고 오후 일정을 준비했다.


   혁명광장과 아바나대학교를 둘러보며 혁명에 대한 쿠바인들의 자부심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독립과 혁명을 통해 지금의 쿠바를 만들어왔고 침탈의 역사와 강대국의 압박에 대한 저항의 기억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려는 이들의 역사의식을 오늘뿐만 아니라 그간의 쿠바 여행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시대에 맞게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도 뒤쳐져서는 안 되겠지만 과거의 역사가 남긴 교훈을 절대 잊지 않고 자신들의 새로운 역사를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바쳐 저항하고 투쟁한 이들을 기억하고 추앙하며 존경심을 갖는 것은 우리에게도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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